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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이 막을 내린 후, 한나라당의 저명한(?) 한 국회의원이 모 방송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상도 지역의 싹쓸이만 보지 말고, 전라도 지역의 싹쓸이도 보라. 그래야지, 경상도 지역의 문제만을 가지고 지역주의의 부활이라고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자리를 차지했다. 전라도 지역에 한나라당이 자리를 차지한 일이 있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불공정하다. 지역주의의 부활이라는 것은 양쪽 진영을 같이 봐야 한다.”

우선 잘못 알고 있는 점에 대해 시정해주고 싶다. 전라도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자리를 차지한 일이 없다고 했는데, 지난 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강현욱 후보( 현 전라북도 지사)가 호남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적이 있었다. 지역주의가 판쳤던 당시,그때만해도 한나라당 강현욱후보의 당선은 그 상징하는 의미가 컸었다. 호남은 이렇게, 인물이 되면 국회의원에 당선시킨다.

두번째, 호남이 싹슬이를 하니, 영남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싹쓸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하나만 내세우고 둘은 감추려는 비뚤어진 생각이다. 호남의 의석수를 모두 합해도 영남 의석수와는 비교도 안된다. 특히, 전북 전체 의석수(11)는 대구(12)보다 한석이 적고, 호남과 영남의 전체 의석수는 30대 67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이번 17대 총선의 경우, 전북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겨우 한명뿐였다. 전북도민 대다수는 한나라 후보를 찍을내야 찍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산과 대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대부분 2위를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후보를 내면서 지지를 호소했지만, 대부분 2위에 그쳤고 4석만 열린우리당이 차지했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호남지역에 후보조차 내지 않았다. 이때문에 전북에서의 제2당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민주노동당이 됐다.

후보도 내지 않은 정당이 특정지역에서 특정 당의 후보가 모두 당선됐다면서 이를 싹쓸이했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후보를 내도 당선되지 않으니까,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다는 변명을 할 수 도 있다. 물론, 탄핵정국과 더불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지레 불출마를 선언하고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도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당하게 자신들의 정책과 노선을 설명하면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후보를 내고 드디어는 비례대표 의원수가, DJ정권때 집권 여당였고 노무현 정부까지 탄생시켰으나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보다 많아져 드디어 제3당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싹쓸이도 그 지역에 후보를 냈을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전북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는, 원내 제1당의 위용을 한껏 자랑하던 한나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후보를 내봐야 특정당이 싹쓸이할게 뻔하니 내지 않았다는 변명은 정당으로서 정당인으로서 할 말도 아니며, 정말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그래서 '영남에서만 지역주의가 부활했다고 보는 시각이 잘못됐으며 싹쓸이는 영남이나 호남이나 '오십보 백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정말 좋은 후보를 냈는데도 지긋지긋한 지역주의때문에 떨어졌다면, 지역주의를 얘기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다. 박정희와 김대중으로인해 생겨난 것이 영남과 호남을 갈라 놓은 망국적인 지역주의라면, 그들이 사라진 현실에서는 어떻게 그 문제를 봐야하는가? 박정희가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 김대중은 대통령이 됐었다. 그런데, 호남 출신 DJ가 미워서 DJ당 소속 정치인까지 무조건 싫어 한다면, 노무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새천년 민주당이 호남출신 정치인들이 주류를 차지했었지만, 결국 분당의 길을 걸었고, 영남출신 노무현 대통령이 정신적 지주가 되는 열린우리당이 총선을 앞두고 출범했다. 지역적으로 열린 우리당은 호남당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주장하는 자체 역시 무리다.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입당을 전제로, 노무현 대통령을 정신적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열린우리당은 정서적으로 영남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영남에서 푸대접을 받았다. 지난 대선에서 호남은 영남 출신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적극 지지했었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고향 영남에서 푸대접을 받았다.

사실, 그동안 이런 식의 극단적으로 드러난 '묻지마식 지역주의'는 분명 청산돼야 할 정치인, 정치세력에 의해서 더욱더 부추겨져 왔으며, 고질화 돼왔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미래지향적인 정치발전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라 30여년전, 아침 거리마다 울려 퍼졌던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를 불러 가면서 옛 향수를 불러오는 선거운동을 했다. 심지어, 18년을 군사독재 대통령으로 장기집권하다 간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선거운동원을 등장시키면서 그때 그 지역주의로 뭉칠 것을 선동하기도 했다.

결국, 지역주의는 특정 정치인, 정치세력에 의해 조장되며, 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고도의 계산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용당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정치개혁에 대한 희망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지지를 얻지 못했었다. 단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말 실수와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표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그나마 17대 국회에서 제2당의 위치를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정황을 덧붙였지만, 지역주의를 좀더 명쾌하게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17대 총선의 화두는 정치개혁였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호남의 싹슬이와 영남의 싹쓸이는 분명 그 내용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는 싹쓸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누구의, 어느 편의 책임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없다.

앞으로는, 호남이든 영남에서든 한 특정 정당의 싹쓸이는 아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17대 총선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 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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