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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신행정수도건설과 관련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 집행은 중단의 운명을 맞았다.

16대 국회 말기 여소야대의 의회상황에서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어 통과된 법률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국정의 혼란은 그 전개상황을 예측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헌법재판소가 이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수도의 설정과 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고,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 새로운 수도 설정의 헌법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효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므로, 수도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또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은 후,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정된 특별법은 헌법에 위반한다고 본 것이다.

"헌재 위헌 이유, 헌법학자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론"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밝힌 위헌 이유는 헌법학자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론이다. 수도의 위치가 기본적 헌법사항이라는 이론은 한 마디로 궤변이다. 그렇게 중요한 헌법사항을 왜 세계 대부분의 국가의 헌법은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수도의 위치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헌법에 둘 것인가 여부는 헌법필연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정책의 문제에 불과하다. 심지어 국가의 영토를 헌법에 규정해 놓지 않은 국가들이 많은데, 이 경우 영토의 변경에 헌법개정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헌법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도의 위치 변경에 관한 국가정책을 집행하기에 앞서 정부는 법률안을 마련하여 국회의 심의에 회부하였고, 국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수도의 위치를 헌법에 규정할 것인가 여부는 헌법정책의 문제라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서, 국회에서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킬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헌법재판소 판례가 거듭 밝혀온 것처럼, 입법정책의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헌법재판관들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는 근거를 관습헌법에서 찾았다. 관습헌법은 불문헌법의 하나이다. 불문헌법 속에는 관습헌법과 함께 판례헌법이라는 것이 있다. 관습헌법이란 헌법전에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불문의 헌법으로서 대다수의 국민이 헌법적 규범력을 가지는 것으로 오랫동안 여겨온 것을 말하고, 판례헌법이란 법원의 판례를 통해서 형성되어 헌법적 규범력을 갖는 것을 말한다. 관습헌법의 헌법이론적 기능은 성문헌법국가와 불문헌법국가에서 차이가 있다. 영국과 같은 불문헌법국가에서 관습헌법은 그 성립범위가 상대적으로 넓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판례를 통해서 형성되는 헌법규범이 관습헌법을 통해서 형성되는 헌법규범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영국에서조차 관습헌법이 성립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좁다는 뜻이다.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에 속하는 성문헌법국가이다. 헌법적 중요성을 가지는 대부분의 조항들을 성문헌법에 규정해 놓는 국가에 속하는 것이다. 성문헌법에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않는 경우는 지금 당장 성문헌법으로 확정해 두는 것보다는 미래세대의 정치발전에 맡겨 두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개방해 두는 것이다(헌법규범의 개방성).

"관습헌법, 성문헌법 조항을 해석하는 보충적 기능만 수행"

실제로 우리나라 학계에서 그 동안 관습헌법의 개념은 인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경우 무엇이 관습헌법에 속하느냐에 대해서는 특별히 들 수 있는 예가 없었다. 기껏 하나의 예로 들었던 것이 외교관특권이다. 외교관특권은 헌법이 규정하는 국제법존중주의에 입각하여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다라도 당연히 인정된다는 정도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이 관습헌법인가에 관하여는 전혀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수도의 위치가 차지하는 헌법적 중요성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결국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헌법국가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조항을 해석하는 보충적 기능만을 수행한다. 성문헌법에 명문규정이 없으면 관습헌법이 성립할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헌법재판관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도가 서울이라는 학설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이러한 학설은 우리 학계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비로소 형성된 극히 소수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을 할 때 따라야 하는 학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배적 견해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헌법재판의 기능 때문이다. 헌법재판의 결과는 정치영역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크다. 이를 가리켜 헌법재판의 정치형성적 기능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의 결과는 기존의 정치질서를 크게 뒤흔들어서는 안 되고, 도리어 그것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헌법재판관, 단 한편의 헌법논문 쓴 사실 없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체로 소수의 견해가 아니라 다수의 견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의 판례와 학설을 보더라도 수도의 위치가 성문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헌법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수도의 위치를 변경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사례는 전혀 없다. 한 마디로 이번 사건에서 헌법재판관들은 헌법재판을 한 것이 아니라 한 편의 3류 단편소설을 쓴 것이다.

그 동안 국가보안법 등 수많은 사건에서 수구적인 결정들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결국 그 정체를 확연하게 드러낸 것이 이번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 사건이다. 사실 이번 사건은 이미 예고된 대형사고였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1988년에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이래 헌법전문가가 헌법재판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헌법을 해석․적용하는 데 누구보다도 고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할 헌법재판관들이 비(非)헌법전문가들이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는 그 순간까지 제대로 된 단 한 편의 헌법논문도 쓴 사실이 없다. 그것은 헌법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수 있는 자를 ‘법관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자’로 규정하고, 법원조직법은 법관의 자격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자’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평생 헌법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헌법전문가들이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법원조직법이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린 것이다.

"신행정수도, 고도의 정책적 판단 사안"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성격의 사안에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외국의 대체적 경향이다. 그러한 고도의 정책적 판단은 정치영역에 맡겨 두어야지 사법기관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의식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헌법재판관들은 자신들의 위치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마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인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의 이번 결정이 헌법재판소를 대대적으로 수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김 승 환 / 전북대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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