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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지만 한나라당과 일부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소아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슬한 것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명칭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열우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우리당이라고 불러달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당이라고 부르던지 그게 싫으면 열린우리당으로 불러야 맞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자신감 부족이 자꾸 명칭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소아병

예를 들어 한나라당을 한나당이라고 부른다던지 또는 새천년민주당을 새민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공적인 호칭에서는 할 일이 아니다. 정쟁을 벗어난 상호존중에서 경쟁을 하려면 상대방에 예의를 지키는 것이 먼저 해야할 일이다.

나야 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공적인 인물이 아니니까 조금 센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별 문제는 없겠지만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는 명칭으로 부르면서도 당당하게 경쟁할 많은 것들이 있다.

열린우리당 생각보다 약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열린우리당이 무서워 명칭조차 자꾸 열우당이라고 하니 나에게는 한나라당이 스스로 엄청 약체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당의 딜레마

나는 <열린전북> 4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의 상황에도 맞는 것으로 생각되어 길더라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보수파 한나라당, (중도)우파 우리당, 중도좌파 민주노동당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즉, 상대적으로 이념적 색채가 드러나지 않은 우리당의 이념적 성향도 앞으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중도우파가 될지 아니면 우파가 될지는 아직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지도자들의 성향으로 보아서 중도파보다는 우파에 가까운 성향이 우리당에서 주도적인 성향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이념지향에서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에 가까운 성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새로운 17대 국회에서는 정책적으로 노무현대통령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우리당이 싸우는 기본형태가 나타나겠지만, 이념이 확실한 사안에서는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과 우리당을 공격하는 양상이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선거에서 10석 정도의 강력한 입지를 확보한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낀 고약한 입지를 우리당이 차지하게될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정책적 실수들이 나타나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좌우 양쪽으로부터 심각하게 비판받아 지지자를 양쪽으로 빼앗기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로 17대 국회가 지역보다 이념으로 분화되는 정당상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구체적인 정책이 자신의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한국이 어떠한 이념적 지향을 가진 사회가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이동할 것이다.

좌로는 민주노동당, 우로는 한나라당이 위치하고 있어 열린우리당은 당의 위치에 대하여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하면 지지자들을 좌우양쪽으로 계속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미 상당수 지지자들을 민주노동당에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좌에 아무런 정당이 없어, 마음놓고 우로 또는 공화당 공약을 취사선택하여 중도잡탕 정당으로 가더라도 좌로부터의 도전이 없지만,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정동영의장을 비롯한 당권파들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당을 미국의 민주당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미국과 크게 다르다.

두가지 점에서 미국과 다르다. 첫째로 많은 제3세계에서 진보당의 지지집단의 크기는 상당히 크다. 한국은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으로 미국보다 제3세계에 가깝다. 한국에서 잠재적인 진보집단 그리고 민주노동당 지지집단의 크기는 정동영의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들은 우리당이 조금만 잘못하면 민주노동당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은 우리당을 계속 비판할 가능성이 더 높지, 우리당과 손잡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데 집중할 가능성은 작다. 한나라당이 집권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정당투표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소선거구제만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뽑히지 않으면 그 당은 살아남지 못한다. 오로지 최대의 대중정당만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에는 전국비례대표인 정당투표가 있다. 유럽에서 이들이 가져온 효과는 놀랍다. 진보세력에 커다란 발언권을 선사했다. 한국도 그렇게 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우리당을 쥐고 흔들 수도 있는 상황이 17대 국회말이나 18대 국회에서 전개될 수 있다.

즉, 한국의 근본적인 지형이 미국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우리당 지도부는 명심해야 한다. 그 점을 무시하고 미국의 민주당 흉내를 내서는 안된다. 우리당보다 좌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미국의 민주당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용주의 정당?

실용주의가 당노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처음 봤다.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노선이 아니라 실천성향으로 방법론적인 것이지 지향성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노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참 엉터리 주장이다. 공산주의 노선에서도 실용주의가 가능하고 나찌즘에서도 실용주의가 가능하다. 즉, 어떠한 목표라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실용주의적 태도란, 목표나 지향에 따라 성취수단을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 정도로 볼 수 있다.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행동, 경험, 탐구를 통해 보다 나은 방법으로 실천하겠다는 정도로 볼 수 있다. 즉, 실용주의란 수단의 다양화와 유연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떤 목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목표를 결정해주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하듯이 공산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또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실용주의란 단순히 교조주의적이지 않고 다양한 현장경험과 수단을 유연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개념이다. 극우, 극좌, 좌, 우,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당이 실용주의를 노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당의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일뿐이다. 그만큼 사회적 지향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뜻을 의미한다. 대세의 흐름에 적당히 따라가겠다는 뜻처럼 보인다. 결국 지도부의 보수적 지향을 적당히 가리겠다는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정당이란 대세를 따라가기도 하지만 대세를 선도하기도 해야 한다. 이 이중적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들에게 많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당의 실용주의 강조는 대세를 따라가겠다는 쪽에 주안점이 주어져 있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가라는 미래에의 기대를 주기에는 너무 부족한 개념이다.

실용주의를 노선이라고 강변하면서 이것이 국민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고 강변하면 큰 오산이다. 목표가 아닌 방법론으로 어떻게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겠는가? 여당이 미래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지가 불명확한 데 어떻게 국민이 신뢰와 안정감을 느끼겠는가? 신뢰와 안정감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에 동참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노선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 야 그 길로 가면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신뢰하며 운전대를 맡길 수 있는 것 아닌가? 방향도 모른 채, 운전대를 맡기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개혁은 어떻게 하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노무현대통령의 말은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아마 2003년 가벼운 말로 문제를 일으키고 여러 가지 실수한 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도로 들린다. 여하튼 개혁은 힘이 있을 때, 체계적인 전체 개혁의 지도를 그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면서 순서대로 집행해야 한다.

그 방향성이 현 여당의 파당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이라는 점을 절대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설득할 수 없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론의 절대적 지지없이는 한나라당이 나 민노당이 일으킬 파당적 정쟁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정쟁이 강화되면 여당도 여기에 커다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포퓰리즘은 적당히 활용되어야 한다. 서울대 임현진교수나 송호근교수는 의회주의를 따라야 한다며 포퓰리즘을 비판하였는 데 나는 그들이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회주의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의회가 그러한 역할을 할 때만이다. 의회가 탄핵처럼 국민 기대를 배반할 때는, 포률리즘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의회가 아니라 국민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회가 민의를 배반하면 국민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대의제는 바로 일반선거에 기반하고 있다. 일반선거가 바로 포퓰리즘의 결정판이다. 따라서 포퓰리즘과 의회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의회주의가 대의를 제대로 하면 포퓰리즘이 바로 의회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포퓰리즘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인 포퓰리즘과 장기적인 포률리즘이 있다. 전자도 적절히 활용되어야 하지만 너무 단기적인 여론에 집착해 장기적으로 여론지지를 놓치면 안된다. 여론이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여론을 얻을 수 있는 장기적 포퓰리즘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때로는 단기적인 포퓰리즘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장기적인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질서있는 그리고 여론의 지지가 있을 때, 신속하게 수행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국민의 절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나 행정조직에서도 개혁해야할 분야가 많고, 족벌언론, 기업구조, 지방분권의 문제 등 시급한 개혁과제들이 많이 있다. 17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가능한 핵심분야에 집중해 빠르게 개혁을 성취해야 한다. 일단 핵심 개혁에 성공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는 체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개혁 로드맵을 빨리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03년 노무현정권이 취임하고 나서야 개혁로드맵을 만든다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문제제기와 토론만 계속되어 혼란스럽게 보였던 적이 있다. 그러한 실수를 이번에는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지도부의 성향이나 능력으로 보아서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 지나치게 타협적으로 그러다가 어떻게 개혁을 할 것인지 모르겠다. 개혁을 하지 않고 2007년 그리고 2008년 어떤 명목으로 국민에게 다시 개혁하겠다며 표를 달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마 국민 중 중도파가 가장 많고, 경제살리기에 성공하면 다른 것들은 국민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가능성이 더 크다.

한국경제는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 끼어 심각한 포지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 일단 처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내리막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제와 기업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크게 강화하지 못하면 한국은 중국에 쫓기는 초조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 이미 한국은 중국경제권에 편입해 들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체질을 강화하지 못하면 중국의 종속변수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앞에서 중국을 활용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개혁이 빨리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 지도부는 아마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무 단기적인 시야로 현재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 이정덕 / 전북대교수, 문화인류학
- 월간 <열린전북>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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