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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박근혜대표 선출과 민주당의 어설픈 조직수습으로 탄핵정국에서 총선정국으로 선회한 뒤 2주일여간 진행된 17대총선의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각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전북지역에서도 3월 27일, 촛불시위가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총선정국으로 전화하였고 각 정당의 전북지역 공약도 잇달아 발표되었다. 이제 17대 총선 이후를 전망하기 위한 분석이 필요한 때다.


양대분할, 네 개의 이념진영, 일곱개의 정파, 그리고 민주주의

17대총선은 민주 대 반민주일까? 탄핵 대 찬핵일까? 노무현 대 반노무현일까? 개혁 대 반개혁일까? 아니면 신자유주의대 반신자유주의일까? 일단 세력관계의 기본범주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17대총선을 둘러싸고 움직이은 정치세력과 기본 입장을 다음과 같이 거칠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양대분할 구도가 있다. 제도정치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는 제도정치세력과 직접 참여하는 것에 거리를 두는 비제도정치세력이 그것이다. 양측은 정치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시민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제도정치는 대부분 정당형태를 통해서 실현되고, 시민단체나 민중단체들은 캠페인, 여론활동, 촛불시위, 대중집회등의 비제도적인 정치행위를 진행하며 이를 통해서 제도정치에 개입한다. 그러므로 양자 모두가 광의의 정치행위로 간주되어야하며 제도정치와 비제도정치의 구분은 정치를 무엇으로 보느냐하는 수준의 근본적인 관점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이념적으로는 네 개의 진영이 존재한다. 먼저 한나라당, 자민련, 민주당등의 수구반공진영의 수구적 신자유주의 노선이 있고, 열린우리당으로 표상되는 보수적 신자유주의 진영이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등 진보정당과 이를 지지하는 사회운동으로 구성된 진보정치진영의 신자유주의 반대진영이 있고, 이를 넘어서서 자본주의사회와 대의민주주의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일부 사회운동단체들로 드러난 근본민주주주의 진영이 존재한다.

그 내부에서도 일곱 개 또는 그 이상의 정파가 존재한다. 먼저 한나라당은 친일파의 후예에 가깝고 영남지역주의와 반공과 수구진영의 대표조직이다. 자민련은 충청지역주의와 반공수구세력이 결합한 정파이다. 민주당은 호남지역주의와 보수진영이 결합한 정파이다. 열린우리당은 ‘개혁’을 이데올로기로 건 보수신자유주의 진영이 재구성한 정파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등 진보정당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국가사회주의과 국가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구성을 주장하는 진보진영이 구성한 정파이다. 진보정당들의 경우 제도정치를 기본원칙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반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개혁노선에 가깝다고 할 수있다.

제도정치의 범주 내에 존재하는 5개의 정파 이외에 비제도정치의 범주에 속하는 두 개의 정파가 존재한다. 비제도정치 내 두 종류의 정파중 한 쪽인 시민사회운동을 열린우리당 친화적으로 보아서 비제도정파로 분류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비제도적인 시민주체형성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비제도정치로 분류한다.

여기에는 총선연대와 물갈이연대가 존재하는데 총선연대와 물갈이연대가 얼마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최근 총선연대의 탄핵찬성의원 전원 낙선운동방침이나 물갈이연대의 사실상의 열린우리당지지 방침등은 총선연대와 물갈이연대가 개혁신자유주의노선 또는 열린우리당 친화적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총선연대는 그나마 정치적 중립성의 중심잡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물갈이연대는 그나마 이마저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탄핵사태를 전후하여 현성되기 시작하여 4월 10일 만민공동회를 조직한 인권운동사랑방등의 국민소환권, 국민발의권 네트워크등은 보다 근본적인 민주주의진영을 대표한다. 이 운동에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전제한 민주주의형식은 물론이고 대의제민주주의 일반을 거부하는 인민주권사상(자기대표사상)이 내재되어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표/한국사회의 정치지형도


정치세력의 분할구도는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한국사회 정치의 불안정성은 사회경제적, 계급적 불안정성의 반영이자 정치세력의 주체적인 자기형성능력이 모자라는 현실의 반영이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반공수구정치의 원조격인 군부구테타정치세력이 사실상 소멸되기 시작한 1987년이후 새로운 정치판짜기 과정에서 부르조아정치세력이 취한 지배전략은 기본적으로 지역주의 분할전략이었다. 영남과 호남, 충청을 각각의 지역으로 분할하여 지역주의정치세력을 만들어내고 이들이 의회를 분할점령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호남 민주당(열린우리당)-영남 한나라당-충청 자민련의 16대국회의 기본구도는 87년이후 만들어진 지역주의적 부르조아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전략이 한계에 봉착하였다. 1997년 대선과 1998년 IMF를 경과하면서 대중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2년, ‘붉은 악마’라는 형태로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대중들은 두여중생에 대한 추모촛불시위와 탄핵반대집회에서의 진보적 대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재벌출신 축구협회 회장 정몽준지지자나 노무현대통령을 만들어낸 노사모와 같은 보수(개혁)정치의 지지자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 대중들은 한편에서는 진보적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진로를 정확히 모르는 대중이지만 적어도 1997년 이전의 소위 ‘87체제’로 회귀하지는 않는 대중이다. 이 대중들은 2002년 대통령선거이후 더욱더 이러한 경향을 강화하여 그간의 지역주의에 근거한 부패정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는 대중으로 등장하였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대중들은 그간의 16대국회의 압도적 다수진영인 지역주의적 정치세력을 거부하고 노무현정부가 지역주의적 정치, 보수정치, 부패정치를 마무리지을 것으로 기대하여 2002년 대선에서 지지하였고 일부는 진보정당의 권영길후보를 지지하거나 선거에 불참(선거자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노무현정부가 보수부패정치를 마무리 짓지 못하는데 실망하여 노무현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여 노무현정권이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이라는 도박정치를 하는데까지 몰고갔다. 그러나, 다시 지역주의적 정치세력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의 연합에 근거한 대통령 탄핵사태를 계기로 보수정치내 탈지역주의적 소수정파인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여 사실상 열린우리당의 17대총선에서의 압승가능성을 높였다.

이에 한나라당은 한편으로는 수구정치에서 ‘합리적인’ 보수정치로의 전환을 기하면서 부차적으로 지역주의정치를 활용하는 것으로 자기변신을 꾀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여전히 지역주의정치에 기대어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진보정당들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의 대표세력으로 인정받아 탈지역주의, 부패정치청산을 요구하는 새로운 대중들의 지지를 확대하고 있고 일부의 대중들은 선거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강화하고있다.

그러므로 이번 17대총선은 세력의 크기를 떠나 지역주의적 정치분할구도의 종식과 보수/진보정치로의 정립, 그리고 새로운 정치이데올로기로서의 대의정치거부사상(직접민주주의사상 또는 자기대표사상)의 등장이 특징적인 이데올로기적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당기간을 지배해온 지역주의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망령으로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지역주의의 부활가능성은 매우 적다. 지역주의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고 수구정치세력은 그동안의 수구적인 정치행태를 계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수정치의 재구성 결과가 합리적인 정치행태로의 변화를 전제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한 진영과 열린우리당 진영으로 분할되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나아가 선거거부 또는 대의정치에 대한 문제제기의 흐름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대중들이 지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한나라당의 합리적 재편이나 열린우리당의 강화,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도 아니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점이 주목되어야한다.

1987년이후 직선제를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일단 완결되었으나 실내용상에 있어서 국민이 주체로서가 아니라 정치에서 대상화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는 지역주의적 부르조아정치가 대중들의 주체적 각성을 막아오면서 국내외 총자본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온 과정이 대중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등장시키는 대중들의 참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특히, IMF이후에 심화된 빈부격차의 확대, 경제적 불안정, 사회보장장치의 부재, 정치권의 부패와 정경유착의 폭로등은 국가적 수준에서의 민주주의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고 이에 인터넷의 등장과 참여적 문화장치들의 확산이 국회를 중심으로 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체들을 각성시켜 새로운 저항문화를 만든 것이다.

정치세력으로서야 미미하기는 하지만 최근 탄핵정국에서 비교적 늦게 등장한 국민발의, 국민소환제 운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대중들의 지향을 가장 근본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17대총선이 마무리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예견한대로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유일한 민주주의로 인정하는 지역주의 부르조아정치세력의 몰락과 내용적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보수/진보 정치세력의 구도로의 재편, 그리고 대의제민주정치에 대한 비판세력의 독립으로 나가갈지, 아니면 의외로 지역주의의 망령이 끈질겨 생존에 성공할지, 그동안 제도정치에 소극적이었던 선거거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아니면 선거거부자들의 적극적 이데올로기를 찾아내는데 까지 나아갈지를 완전히 예견하기는힘들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실천하는 그 순간에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계속 전진하고 있고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구성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고 한국사회에 몸담고 사는 우리들 모두가 역사속의 민주주의의 주체들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실천이 우리앞에 놓여있다.


- 조문익 / 참소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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