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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방 분명 한국인데 웹지도에는 안 나오는 동네

[오마이뉴스제휴기사]곧 미군기지로 넘어갈 군산 하제포구... "한국 정부가 관리했으면"

조종안( icomn@icomn.net) 2020.06.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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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황무지로 변한 하제포구(멀리 ‘새만금 동서도로’도 보인다) ,ⓒ 조종안

 

전북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마을. 하제는 만경강 하구에 있는 포구로 새만금 간척사업 이전엔 갯벌에 각종 어패류가 지천이었다. 인근의 옥구염전과 한국염전도 중국산 소금 유입으로 폐염전 됐다가 2007년경 대규모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면(面) 남단에 화산(51m), 북단에 옥녀봉(87m)이 자리하며 화산봉수대지, 성산토성지 등의 유적이 있었다.

선연리(仙緣里)는 '신선(최치원)과 인연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바닷가에 소나무와 뽕나무가 무성했으며 '옥구팔경'은 상제와 중제 모래사장으로 안착하는 기러기 모습을 '화산낙안'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최치원 전설 영향을 받아서인지 조선 시대 이전부터 선비들의 필수 유람지가 됐으며 시인 묵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시대까지 섬(島)이었던 선연리는 일제강점기(1920~1923) 대규모 간척공사로 육지가 됐다. 하제마을 입구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석장승도 있었으나 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쓰러져 방치됐다가 군산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겼다. 특히 전북 관내에서 유일하게 민항기가 취항하는 군산공항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군비행장 보급선 철도 종착지이기도 하다.

1910년대에 만든 지도에는 '상제(上梯), 중제(中梯), 하제(下梯)'가 표시되어 있다. 하제의 화산(華山)에는 봉수대가, 중제 바닷가엔 최치원 일화가 깃든 자천대(바위산)가 자리하였다. 그중 상제와 중제, 화산 봉수대, 자천대 등은 일제강점기(1930년대) 비행 훈련장 공사 때 헐려 존재를 확인할 길 없고, 이제는 하제마저 미군기지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하제마을의 위기
 

"(하제) 포구는 그저 평화로워 보였다. 썰물로 알몸을 드러낸 펄에는 소형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고, 소금기 섞인 갯내음이 코를 찔렀다. 언뜻 보기에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여느 서해 작은 어촌이다. 그러나 이내 귀청을 째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보다 요란했다. 언덕 너머 미군기지에서 들려오는 전투기 소리다.(줄임)

하루 평균 50여 차례. 훈련이 있으면 100~150 차례의 전투기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중략) 이 마을 여순옥(30·여)씨 집은 지난해 9월 사격장에서 날아든 엠203유탄 발사기 유탄으로 벽면이 크게 부서졌다.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흩어진 파편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었다. 만삭이었던 여씨는 마당에 있어서 화를 면했지만 며칠 뒤 쌍둥이를 조산했다."


미군기지 전투기 굉음으로 하제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파헤친 1999년 5월 28일 치 <한겨레> 기사("여그는 시방도 전쟁중이여")이다. 신문에 따르면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는 20일 동안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고, 건물 피해와 치료비 배상을 신청했지만 유탄 때문에 조산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비는 기각됐다.

군산 미군기지는 선연리, 옥봉리 바닷가에 위치한다.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네이버 검색 지도에 흰색으로 나타나고, 우편물 주소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되어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공군기지로 사용되다가 광복 후 제트전투기가 이·착륙하는 미공군기지가 됐다. 한국전쟁 중 북한군 기지가 되기도 했다가 다시 미국의 손으로 넘어가 오늘에 이른다.

30여년 만에 찾아간 하제포구... 옛 모습 찾아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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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에도 으스스한 군산 미군공군기지 철조망, ⓒ 조종안)

지난 22일, 하제마을에 다녀왔다. 군산 시청에서 출발, 전주-군산 자동차전용도를 이용했다. 군산대학교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좌회전, 선제리를 지나자 미군기지 철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평등한 소파협정으로 이쪽은 한국, 철조망 너머는 미국 캘리포니아다. 수십년 전에는 기지 안으로 꼴 베러 들어갔던 주민이 총에 맞아 사망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철조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글루처럼 생긴 전투기 격납고도 여기저기 보인다. 지난 일들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남의 나라 황금어장과 농수로에 오·폐수를 무단 방류하고도 뻔뻔했던 미군. 전투기 폭음으로 주민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은 물론 농작물과 가축에까지 피해를 주고도 진심어린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하제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동행한 김경욱 옥구읍성복원 추진위원장은 "한때는 주민이 3천을 헤아릴 정도로 풍성한 어촌이었다. 그런데도 하제에는 토박이가 없다는 말이 전해진다. 당산나무(수령 600년생 팽나무)가 서 있는 동네에는 주로 토박이들이 살았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포구 쪽에 자리 잡고 살았다"라고 귀띔한다.

 

하제마을을 찾은 건 30여 년 만이다. 그 어디에서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상가도 주택도 모두 철거되어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나지막하게 솟은 난산(卵山)이 몹쓸 병에 시달리다 병상에 누운 아기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승객의 발길이 끊긴 시내버스 정류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종점(어은동) 표시가 선명한 것으로 미뤄 폐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싶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폐가가 보인다. 주민들은 대부분 삶의 터전을 떠나고 두세 가구가 버티고 있다고 하던데, 그 주택인 모양이다. 공장이나 창고로 사용했을 임시 건물을 살짝 들여다보니 찬바람만 돈다. 금방이라도 귀신 나올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포구 쪽으로 난 도로는 누군가가 차량 진입을 못 하도록 흙으로 막아놓아 삭막함을 더한다.

 

'수령 600년' 팽나무 구할 방법은

 

김 위원장은 "하제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미군기지 등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고스란히 겪은 어촌이지만 한때는 수협 어촌계와 위판장, 상인 처리장 등이 자리하고 '신하제'란 시내버스 정류장이 생겨날 정도로 융성했던 어촌이었다"라며 "시내버스도 수시로 다녔으나 지금은 달랑 두세 집만 남아 있는 상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 부근은 조개공장도 있는 주택가였고,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여러 채의 상가 건물도 있었다. 한쪽에는 식당과 선술집, 짜장면집, 당구장 등이 호황을 누렸다. 조금 떨어진 언덕은 공동묘지처럼 묘가 많아 아이들 놀이터였는데 최근 도로변까지 보상이 이뤄져 곧 미군기지로 넘어가게 생겼다"라며 동쪽의 영병산(領兵山)을 가리켰다.
  
"멀리 영병산(120m) 보이죠. 연병산, 사자산, 사자암이라고도 합니다. 거기에 군부대가 있는데 나무에 가려져 안보이네요. 미군 미사일 기지도 있었죠. 조선 시대에는 사자암에 봉수가 있었는데 부안군 계화도 봉수를 받아 화산 봉수대로 보내면 그곳에서 다시 군산의 점방산 봉수대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금강 건너 충남 서천으로 보냈죠. 그런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이 지역이 군사상 요지였던 모양입니다."

김 위원장은 "2002년부터 시작된 토지 및 건물 매입이 거의 이뤄져 국방부는 미군에 넘겨주려고 절차를 밟고 있을 텐데 걱정이다. 많은 분이 하제마을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분들 염원대로 한국 정부가 마을을 관리했으면 좋겠다.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수령 600년)와 소나무(수령 200년)를 구할 방법은 없는지... 참으로 난감하다"라며 한마디 덧붙였다.

"구경만 하자니 꼭 제가 죄지은 것 같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이 외세에 의해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고... 소중한 문화유산이 남아나는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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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격동의 시대를 고스란히 겪었을 수령 600년생 팽나무 ,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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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제휴 기사입니다.

원문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4492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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