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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인권이야기] 차 한잔을 넘어서

평화와인권( 1) 2003.04.13 13:14

"제가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요. 20여일간 각종 스포츠신문에, 방송에 1면 톱기사로 나올 줄은 몰랐어요."

비디오 파문으로 수십일간 1면 톱기사화 된 가수 ㅂ양의 말을 되새기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까 한다.

2년이 지나서야 파문이 가라앉고, 겨우 마음도 정리한 ㅂ양은 사건당시 수십일 간 융단폭격을 맞았다. 한 사람의 존재가 뿌리채 뽑혀나간 것이다. 더구나 여자의 몸으로 가장 숨기고 싶은 은밀한 사생활이 온갖 매체를 통해 뿌려지는 엄청난 폭력에서 맨몸으로 폭격을 견뎌냈다.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심신이지만 이겨내 재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 여자 얼굴이 두꺼워서일까 ? 왜 그 여자는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만약 자살사유라면 어느 쪽이 더 강할까 ? 서교장과 어린 ㅂ양의 차이는 무엇일까?


또 하나의 이승복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요즘 ㅂ양 자리에 대신 기간제 교사인 진교사와 전교조가 있다. 10여일간 까발려지고,조회가 폭주하고, 검색어 1위에 신문의 융숭한 대접이(?) 참으로 사랑도 편애도 이런 편애가 없다. 그리고 숭고한 교육 살리기 자리에 '또 하나의 이승복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죽음은 한 개인에 있어 참으로 고뇌에 찬 결단이고 고귀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엔 어린 학생들이 있다. 모방과 동일시 심리가 강한 어린이들이 앞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싸워서 극복하기보다는 죽음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을 어떻게 뿌리치게 할 것인가 ? 더구나 존경 받았다던 교장의 자살에 .......

'어린 기간제 교사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라느니, 전교조의 과잉 대응이 불러온 죽음이라느니' 하는 말에 동의를 한다 해도 지금언론 태도를 보면 균형잡힌 보도와 해설이 없다. 객관적 실체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증과 추론만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서교장 죽음을 통해 '전교조 죽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성으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정치적 집단간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해서도, 산 자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교장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지 달을 보지 못하는 행태에 고만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달이 양성평등은 물론 민주주의 발전과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신장이라면 (특히 여성이나 노약자나, 사회적 약자) 지금 죽음을 두고 다투는 것은 손가락이 검으냐 희냐의 싸움일 것이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조선일보여! '지금 당장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차 한 잔'이 몰고 온 죽음에는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젖어온 관행과 구습이 자리 잡고 있다.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체면문화와 권위주의에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싸가지 문화와 톡튀는 놈 못봐주는 왕따주의와 알아서 기는 아부주의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강한 놈에게는 살살거리고 약한 놈에는 호랑이인 '마름'들이다. 알아서 기어주고, 알아서 깨뜨리고, 알아서 눈부라리며, 알아서 핥아주고, 알아서 뜯어내고, 알아서 향응에 접대하는 유능한 마름들이 있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 마름들 교육계라고 없을까 ?

인간의 목숨은 왕이든 거지든 똑같이 귀중하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약자와 강자가 위치는 어떤가 ? 전교조와 진교사는 강자이고, 교장단과 교육관료들은 약자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은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교육이 제대로 서려면 조폭적인 전교조는 해체하거나 최소한 반성하라고 한다.

스스로 탄압 당한다고 생각하는 언론이여 묻겠다. 90년대 초반 수 없는 학생, 노동자의 분신자살 사건에서 당신은 누구의 입장에 있었는가? 군사정권인가 민주화 세력인가? 파업했다는 이유로 수 십억, 수 백억 천문학적인 돈을 일개 노동자에게 가압류하고, 본인은 물론 가족과 신원보증한 친척들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가해 죽음에 이른 두산중공업 노동자에게 귀 한번 제대로 열어주었는가 ? 그리고 이런 나쁜 법과 제도와 사용자의 비도덕성에 대하여 이번처럼 진지하게 논의해보았는가 ? 아니 그전에 본지나 자매지를 통해 무참히 짓밟았던 ㅂ양의 인권침해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했던가?

어린 학생을 위해서라도 죽음은 미화될 수 없다. 더구나 교육 주체간에 때 만났다는 듯이 한풀이식 싸움은 결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조선일보에 13년 전에 쓰였던 시인 김지하의 말을 되돌려 주고 싶다. '지금 당장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 문상붕 / 교사·전주중학교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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