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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는 부끄럼없는 영원한 간첩

최인화( 1) 2003.04.05 21:24

감옥에서 키운 야생초 이야기를 책에 담아 생태주의적인 가치를 인식시켜줘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얻었던 [야생초편지]의 저자이자 생태공동체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는 황대권씨가 7일 전주를 찾았다.

천주교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이 전동성당에서 마련한 황대권씨의 강연은 생명에 대한 대량살상을 자행하는 미-이라크 전쟁의 발발,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불교 4개 종단의 삼보일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2002년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던 [야생초 편지]에 감동받은 독자와 천주교 신자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황대권씨는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주변을 생태주의적인 시각으로 돌아보는 자세"라며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풀어 나갔다.

▲강연회에 참가한 천주교 신자 및 독자들


'생명'을 돌아보게 한 수감생활

85년 유학생활 당시 일명 학원간첩단 사건으로 간첩의 누명을 쓰고 안기부 지하실에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황 씨. 실패를 모르는 엘리트의 길을 걸으며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 새로운 삶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감옥살이 5년째가 되던 때. '감옥안에서 범죄를 일으켜 법정에 서서 공개적으로 나를 변론하자'는 생각에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난동을 부렸지만 내부처벌에 징벌방에 감금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양손을 수갑에 묶인채 60일간 징벌방에서 지내며 기력은 쇠진하고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징벌이 풀린 후 독방으로 돌아온 황씨에게 눈에 띄었던 것은 조그만 거미 한마리였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바스라질 것 같은 조그만 거미를 보며 '이것도 나와 같은 생명이로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독방을 다시 한번 둘러보니 동등한 생명체들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걸 깨달으며 황씨는 생명을 생각하게 됐고, 쇠진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야생초를 기를 생각을 갖게 됐다.

▲야생초편지/나무선
그렇게 야생초를 찾아 기른 것이 어느덧 100여종에 이르렀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야생초 이야기와 그림을 편지에 담아 밖으로 내보냈다.

약 13년간의 감옥생활을 끝내고 출소한 후 삭막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어떻게 생태주의적인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흔하고 하찮은 풀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따라 가치관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야생초 편지]

유기적 공동체를 깨뜨리는 미국은 몰락한다

현재는 생태공동체모임을 이끌며 버려진 농촌에 생태공동체마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황대권씨가 생각하는 '풀'에 대한 철학은 이렇다.

풀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서로 함께 공존한다. 다른 풀의 자리를 빼앗는 등 화단의 상태가 깨지면 다른 풀도 죽는다는 점에서 풀들의 세계에는 전쟁과 분쟁이 없다. 그만큼 이 생명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연결된 전체가 또 하나의 커다란 생명을 이룬다.

인간사회에서 이런 유기적 연계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인간의 탐욕.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몰락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황대권씨는 이런 가치관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간첩'이라는 멍에에 대한 모멸감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자갈들이 자갈의 모양을 잣대로 갖다대면 색깔은 중요해지지 않는다는 비유와 함께 "생명의 관점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야생초편지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황대권씨


1시간 반 가량의 인생살이 이야기가 끝난 후 독자들의 야생초의 식이요법, 야생초로 물김치 담는 법 등을 묻는 질문에 황씨는 사뭇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방법을 설명했다. 가치관의 변화는 구체적인 경험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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