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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노동/경제 [르뽀] 전북버스 고공농성 철탑의 하루

김은희 시민기자( 1) 2012.12.14 15:50

2012년 12월 1일부터 12일까지 전주종합경기장 조명탑에서 진행되었던 고공농성을 취재한 르뽀입니다.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가수 이적이 부른 <같이 걸을까> 가사의 한 부분이다. 30m 철탑 위로 올라간 전주 운수노동자들과 철탑 밑에서 농성천막을 지키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꼬박 2년 동안 파업을 했지만 문제 해결이 안 돼 결국 철탑 끝자락까지 오른 그들.

 

▲아침 8시, 철탑 위로 밥이 올라가고 있다. ⓒ 김은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분회 정홍근(45) 쟁의부장과 시내버스 전일여객 이상구 대의원이 지난 2일 오전 3시 40분께부터 전주시 종합경기장 옆 야구장 조명탑(총 높이 43m) 상층부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늘을 지배한" 노동자의 슬픈 현실

 

날이 영하로 떨어지고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 5일 아침, 철탑 농성장을 찾았다. 철탑은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길게 내걸린 현수막 때문이다. 철탑 바로 밑에는 동료 노동자들이 설치한 천막 농성장이 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전북고속 조합원 두 명이 천막 앞에 서 있었다. 이들은 "천막 안이 너무 추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천막 앞 드럼통에 불을 피웠다. 한 조합원이 드럼통에 나무를 넣으면서 고개를 들어 고공농성장을 바라봤다.

 

"노동자들이 곧 세상을 지배할 것 같아요.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잖아요."


아침 8시가 조금 넘자, 한 조합원이 노란색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고공농성자들에게 올려 보낼 아침식사였다. 바구니를 밧줄에 묶고 철탑 위의 노동자들에게 소리치자, 바구니가 천천히 올라갔다. 밥이 올라간 뒤에야 천막의 노동자들도 각자의 집으로 씻으러 갔다.

 

▲전북고속 노동자 정홍근과 제일여객 이상구 노동자가 올라가 있는 철탑 ⓒ 김은희

 

철탑 인근에는 회사, 병원, 백화점, 대학교 등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침 8시가 넘자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철탑 농성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분주하게 지나는 자동차와 사람들 가운데서 철탑과 천막은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천막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들은 말없이 드럼통에 나무를 넣었다. 간간이 고요함을 깨는 말이 오갔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러던 중 철탑 위에서 식사 바구니가 내려왔다. 고공농성중인 전북고속 정홍근 쟁의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식사는 잘 하셨어요?"
"네,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간밤에 꽤 추웠을 텐데, 괜찮으세요?"
"춥기도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면 철탑이 흔들려서 그게 불안합니다."

 

5일은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전북 전주 유세가 예정된 날이었다. 버스 노동자들도 문 후보의 유세 일정에 맞춰 파업을 계획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유세가 취소되면서, 파업도 다시 유보됐다. 정 쟁의부장은 민주당과 문 후보에 대한 마음을 털어놨다.

 

"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모토를 쓰면서도 호남에서 버스파업이 2년째 해결이 안 되는데도, 아무 말이 없네요. 전북고속부터 찾아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먼저일 텐데...."

 

그는 '전라북도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불만이 크다. 전북도의원과 전주시의원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인데,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 등 공공운수와 관련한 일이다보니 지역 정치권과 행정기관이 나서지 않으면 사태 해결이 쉽지 않다. 정 쟁의부장도 이걸 잘 알고 있다. 그는 언제쯤 철탑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일단은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죠. 협상에 진전이 없고, 성과가 없다면 내려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철탑에 올라왔으니, 사회적으로 이슈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단호했다. 오전 10시 30분께, 철탑 앞이 분주해졌다. 문규현 신부가 왔다. 문 신부는 철탑 앞에서 '철탑농성자 무사기원 및 버스문제해결기원 100배'를 올렸다.

 

겨울비 속에서 삼보일배... 시민들 항의하기도

 

철탑 위의 노동자들은 고개를 내밀고 문규현 신부를 바라봤다. 문 신부는 100배를 마친 뒤 철탑 위 노동자들에게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전북의 많은 사람이 서로의 아픔을 외면해 결국 두 노동자가 철탑에 올랐다"고 전했다.

 

▲ 문규현 신부가 철탑 위 농성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 김은희

 

오후 2시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철탑 위 노동자들도 철탑 농성장을 보수해야 했다. 비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오후 4시께, 묵묵히 천막을 지키던 노동자들은 시청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전북고속 노동자 등 운수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지난 11월 12일부터 매일 오후 4시에 전주시청 앞에서 삼보일배 농성을 하고 있다. 비가 쏟아져도 예외는 없다.

 

노동자들을 따라 전주시청으로 향했다. 전주시청 앞에서 시작한 삼보일배는 전주 시내 일대를 돌기 시작했다. 평소 삼보일배 농성에는 노동자 약 100여 명이 참여한다. 경찰이 안내 및 통제를 해도 교통 지체는 불가피하다. 이 탓에 일부 시민은 삼배일배 노동자들에게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한 일인듯, 노동자들은 그저 묵묵히 삼보일배를 했다.  

 

▲ 공공운수 노동자들이 전주 시내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김은희

 

전주 시내를 돈 삼보일배는 1시간 15분 만에 끝났다. 겨울비 맞으며 1시간여 동안 젖은 아스팔트에 엎드린 참가자들은 "수고했다"며 서로 어깨를 두드렸다. 많은 참가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4월 망루에서 49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던 남상훈 전북고속 지부장과 함께 다시 철탑으로 향했다. 남 지부장은 "천막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날이 어두워져도 천막은 고요했다. 그 탓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오후 7시, 누군가 천막을 들여다봤다. 지나가는 시민이었다. 시민은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물었다. 남 지부장은 "전북고속 농성장이에요"라고 답했다. 시민은 "추운데 고생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저렇게라도 천막에 들르는 시민은 얼마나 되느냐"고 남 지부장에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관심 있는 시민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기자가 천막에 머무른 밤 10시까지, 천막을 찾는 사람은 손으로 꼽는 수준이었다. 이전부터 방문했던 고3 학생 두 명과 1년 전부터 천막에 왔다는 시민이 전부였다. 남 지부장은 시민의 무관심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파업 사태 해결되지 않으면 안 내려간다"

 

"왜 파업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고, 당장의 불편함 때문에 버스노동자들 욕하는 시민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28개월째 임금을 못 받으니 생활은 힘들고 가족,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다음주에는 아들이 군 휴가를 나오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남 지부장은 "(이번 싸움을) 절대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주 시외노선을 운행하는 민주노총 소속 전북고속 노동자 30여 명은 지난 2010년 12월 8일부터 파업을 진행했다. 이들의 파업은 2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민주노조 인정, 성실한 단체협상, 근무 조건 개선, 임금과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북고속 노동자 약 420명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33명 뿐이다.

 

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분회 측은 "회사는 정당한 교섭권이 있는 민주노총 노조와 단체협상을 거부하는 등 우리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회사는 한국노총 노조와만 대화를 한다"고 밝혔다.

 

▲ 5일 밤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눈으로 덮인 철탑과 농성 천막 ⓒ 김은희

전주 시내버스 회사인 시민·신성·전일·제일여객, 호남고속 소속 노동자 900명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400여 명도 2010년 12월 8일 근무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들은 2011년 5월 1일 복귀했다. 올해 3월 성실교섭을 요구하면서 다시 파업을 벌였고, 7월에 업무에 복귀했지만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11월 29~30일 세 번째 파업을 벌였다.

 

고공농성자들은 철탑에 오르면서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전북지역 토호세력 운수자본과 지방정부, 수십년 전북지역을 집권한 정당이 우리를 철탑에 오르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천막에 남 지부장을 홀로 남겨두고 나오니,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얄궂게 오던 비는 함박눈으로 변했다. 두 노동자들이 올라가 있는 30m 철탑도, 남 지부장이 지키고 있는 천막도 온통 하얗게 변했다. 이들은 이번 겨울을 바람 피할 곳 없는 하늘에서,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득한 길에서 보내야 한다. 이들은 언제쯤 따뜻한 겨울을 맞을 수 있을까.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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