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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깃발을 올려라. 총진군이다’

 

2월 4일 늦은 6시, 어둠이 조심스럽게 길바닥에 무거운 몸을 내려놓는다.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 택시노동자 김재주 분회장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전주시 덕진구 야구장 조명탑이 있는 백제로를 쏜살같이 달린다. 이곳을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어둠은 이들에게 빨리 지나갈 것을 재촉하지만, 김재주 분회장의 고공농성 현장에는 하나 둘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이곳에서 어둠은 촛불문화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자명종이다. 

 

▲김재주 분회장이 있는 전주시 덕진구 야구장 조명탑에 어둠이 내린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천일교통분회 김재주 분회장이 ‘부당해고 철회,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야구장 조명탑에 올라간 것이 지난 1월 4일. 딱 한 달이 지났다. 늦은 6시가 될 즈음부터 퇴근하는 이를 태운 차량이 늘어나는 것이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김재주 분회장은 40m 야구장 조명탑에서 농성중이다. 달라진 것은 올라갔을 때에 비해 수염이 많이 자랐다는 점이다. 수염 곳곳이 하얀 것이 그의 나이를 말해준다. 작년에 쉰 살이 넘어 올해는 쉰 한 살. 그는 쉰 살이 된 2012년 난생 처음 해고를 경험했다.

 

▲40m 높이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재주 분회장의 아침 셀카. 김재주 분회장은 이렇게 셀카를 찍어 동료들과 나눈다. <사진제공 - 김재주 분회장>

 

‘연대투쟁가’가 6시가 되면서 들리고, 빨간 조끼를 입은 택시노동자들이 하나, 둘 백제로에 모인다.

 

“참을 만큼 참았고, 인내할 만큼 인내했습니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를 감시하고 부당해고에 대해 심판을 해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대해 전주시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자! 모입시다. 32일차 촛불문화제를 시작합니다.”

 

지난 1월 4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됐던 6시 촛불문화제가 벌써 32번째. 오늘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전북고속 노동자들이 함께한다. 이들도 현장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 누구보다 택시노동자의 아픔을 이해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멀리 한신대에서도 신학생 12명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강진수(가명, 37세)씨는 “언론을 통해 택시노동자가 전주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그동안 학교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열었는데, 방학을 맞이하여 전국의 현장을 돌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이날 현장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강씨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 열악하다”며 “노동자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고 이 땅의 그늘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 “주님의 말씀처럼 낮은 자세로 아픈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자본과 권력의 횡포도 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전했다.

 

▲이날은 한신대 신학생들이 현장을 찾아 함께 마음을 나눴다.

 

이날은 짧게 집회를 마치고 한신대 신학생들과 택시노동자들이 함께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전북지역 운수노동자의 투쟁에 함께했던 이세우 목사는 “우리의 투쟁과 목소리가 반드시 하나님에게도 들리고 그 소리에 응답할 것”이라고 택시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철탑에서 외롭게 싸우는 김재주 동지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매일같이 현장을 방문하는 이 중에는 작년 12월 같은 자리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정홍근 민주노총 전북고속분회 쟁의부장이 눈에 띈다. 정 부장은 “김재주 동지가 수염을 멋있게 길렀다. 김 동지의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32일째 실천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저 높은 철탑에서 외롭게 싸우는 김재주 동지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이곳을 올 수밖에 없다”고 택시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이처럼 전주시 덕진구 야구장 조명탑 아래에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정 부장은 “이것이 99%의 노동자가 살아내는 길이고, 노동자들의 희생을 멈추기 위해 현장투쟁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32일 동안 매일 촛불을 들고 현장을 찾는 택시노동자들.

 

그래서일까? 30일 가까이 움직이지 않던 전주시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삼형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이 촛불을 들고 최근 소식을 노동자들에게 알렸다. 이 지부장은 “오늘 아침 비공개로 전주시와 천일교통, 완산교통 사업주와 우리가 면담을 가졌다”면서 “이 자리에서 전주시가 사업주들을 설득했다. 그런데 천일교통 사업주는 시간을 달라면서 시간을 끌었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구정 전까지 전주시가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설 것을 기대한다”며 “만약 구정 전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이후 더 큰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전주시의 노력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와 촛불기도회가 끝나고 택시지부는 택시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노숙농성을 구정 때까지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조명탑 바로 옆 길가에 3m정도의 농성장을 설치하고 앞으로 택시노동자들이 번갈아가며 24시간 노숙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가장 먼저 양용모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은 3m 높이의 농성장에 올랐다. 텐트도 없고, 차디찬 새벽 이슬을 막아줄 어떤 것도 없이 이불 한 장 걸치고 농성을 벌이겠다고 한다.

 

양 지회장은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하다”며 “우리의 뜻을 보여주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택시노동자들은 이날부터 구정까지 저 위에서 릴레이 노숙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연대에 가슴이 뿌듯, 사업주도 우리를 인정했으면”

 

촛불문화제와 신학생들의 촛불기도회 그리고 택시노동자의 24시간 노숙농성. 고공농성 32일차 김재주 분회장의 철탑 농성 현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이 모두를 저 40m 높이에서 바라보는 김재주 분회장의 마음은 어떨까?

 

김재주 분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저 혼자만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동지들이 가슴 아플텐데, 동지들이 노숙농성을 한다고 하니까 안타깝다”면서 “단지 우리는 노조를 인정하고 부당해고 철회하라는 것뿐이다.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있는 법만이라도 행정관청과 사업주가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재주 분회장이 매일 저녁마다 보는 풍경 <사진제공 - 김재주 분회장>

 

그리고 “아래에서 촛불이 켜지는 모습을 보면 큰 힘이 된다. 오늘처럼 많은 이들이 연대를 하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마음을 전한다. 바람 소리가 스마트폰을 넘어 내 귀에 닿는다. 얼마나 추울까? 그런데 김재주 분회장은 춥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주시와 사업주에게 한마디 전한다. “우리 노동자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 지 행정관청이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부당해고를 그냥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도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 회사도 노동자가 있어야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를 대화의 상대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매일 촛불이 진행되는 백제로의 저녁 6시경. 퇴근하는 이들의 차량이 빠르게 지나간다. <사진제공 -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제 민족대명절인 구정이 1주일 앞으로 남았다. 김재주 분회장은 과연 1주일 후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의 소박한 바람이 현실이 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연대온 이들이 함께한 2월 4일 늦은 저녁 고공농성 현장이 김재주 분회장의 바람이 이루어져 1주일 후에는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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