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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남원의료원지부의 파업이 실마리를 좀처럼 못 찾고 있다. 노조는 임·단협을 우선 체결하고 의료원 측이 제기한 ‘징계위 구성, 유니온 샵’ 등의 문제는 별도의 위원회 구성을 통해 논의하자고 한 발 물러섰지만, 남원의료원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20일 가까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의료원이 노조를 이번 기회에 죽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남원시민사회대책위는 지난 22일부터 정석구 병원장실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남원의료원 파업이 지속되면서 전북도가 책임 있는 자세로 해결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원의료원은 전라북도 동남권 거점 공공병원으로 장기간 파업은 지역사회에 큰 손실이다. 그리고 병원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언제까지 직원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방정부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북도의회는 빠르면 27일, ‘남원의료원 사태 해결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중재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원의료원, 고질적인 임금체불과 무상근무...“직원들은 모두 감내했는데...”

 

지난 10월 통합진보당 김미희 국회의원은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지방의료원 임금체불 현황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전체 지방의료원(34곳) 중 7월 말 기준으로 임금체불이 발생한 의료원은 총 12곳. 전체 의료원의 35%로 34곳 의료원 직원 8,597명 중 1,687명이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원들이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의료원 중에는 남원의료원도 포함됐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남원의료원은 약 8억8천만 원. 전 직원 320여 명 중 248명의 직원에 임금이 체불 중이다. 1인당 3백 50십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노조가 파악한 임금체불 규모는 이보다 3억 만은 11억 수준이다.

 

이처럼 만성적인 임금체불 외에도 지방의료원의 열악한 재정과 경영을 직원들의 희생으로만 채우는 남원의료원의 강도 높은 체질개선은 임금반납과 무상근무 등으로 이어졌다.

 

남원의료원은 2011년도 결산서에서도 ‘주요경영개선사항’으로 ‘원가절감 노력 강화’를 주요 경영개선으로 분석했다. ‘원가절감 노력 강화’에는 ‘임금인상분 반납, 지속적인 인력 충원억제 및 연가사용 촉진으로 인한 인건비 절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남원의료원지부 노조원들은 그동안 주 5일제가 시행된 지난 2005년부터 최근까지 한 달에 한 주 토요일은 무상으로 근무를 해왔다. 또한 2010년도 임금 인상분 약 5억 원과 2011년도 인상분 약 7억 원을 반납했다.

 

뿐만 아니라, 남원의료원의 인력 충원 억제 노력은 노조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조합원은 36시간동안 근무한 경우도 상당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파업에 함께하고 있는 조합원들 중 간호사들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노동강도가 심각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노조는 “한 달에 10일을 야간근무하고 간호사 2~3명이 8~90명의 환자를 돌볼 정도로 인력부족이 심각하다”면서 “어떤 환자들은 되레 간호사들에게 ‘밥은 먹고 일하냐’며 걱정을 해줄 정도”라고 말했다.

 

남자간호조무사로 있는 한 조합원은 “토요일 아침에 출근하여 일요일 오전까지 응급당직을 서고 퇴근해야하는데, 퇴근하지 못하고 저녁까지 약 36시간을 근무하는 경우도 상당했다”고 밝혔다. 

 

최근 남원의료원 정석구 원장은 개인 성명을 통해 “남원의료원 조합원 평균 임금이 4,400만원이다”면서 “괜찮은 직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 노조원은 “연말정산에 찍히는 내 연봉이 2,700만 원이다”면서 “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노조는 26일 성명을 통해 “원장의 주장대로 연 4,400만 원이 사실이라면 남원시내 및 인근지역 거주 간호사들이 남원의료원에 입사하려고 줄을 설 것”이라면서 “1년 내내 간호사를 모집해도 지원하는 간호사가 없다”고 밝혔다.

 

수간호사로 있는 한 조합원도 “내가 병동 수간호사로 있을 때, 후배 간호사들이 연봉이 적어 그만두는 일도 상당했다”면서 “병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남원의료원, 도립은 도립인데...

 

이렇게 만성체불과 직원들의 희생이 강요되는 배경에는 남원의료원의 누적적자 등 부실한 재정상태 때문이다. 남원의료원은 현재 352억 원의 누적적자와 245억 원의 부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북도의회도 지속적으로 전북도에 남원의료원 경영개선의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남원의료원은 경영개선을 위해 경영권과 인사권이 원장에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파업이 발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의료원의 주장을 납득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동안 직원들은 무상근무와 임금반납 등 희생적인 노력을 의료원의 요청으로 해왔다. 그러나 전북도, 남원의료원 등 어느 누구도 직원희생 말고는 경영개선을 위한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남원의료원의 부채는 주로 지난 99년 의료원 신축 이전과정에서 발생한 건축비와 시설비 등이 주를 이룬다. 당시 건립비용으로 들어간 도비와 국비 중 전북도는 도비 부문을 마땅히 도가 출연해야하나 이를 기채로 전환했다”면서 “전북도가 출연한 공공병원인데 전북도와 중앙정부가 지방의료원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정책대안과 재정지원이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남원의료원의 누적적자와 부채에 대한 근본 원인을 짚었다.

 

실제 전라북도가 남원의료원에 지원하는 경상비는 약 5억 원 수준. 2011년도 결산서에 따르면 전라북도는 5천만 원의 공공보건의료기관 공공보건사업 지원금과 약 4억 원의 지방의료원 고정부채 이자상환 지원금을 경상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전북도에 따르면 연간 2~30억 규모의 시설개선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병상 개선 등 국가사업 중 국비와 매칭하여 들어가는 도비로 전북도에서 독자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적자와 부채가 발생하는 경상비 부문에 대한 것이 아니기에 실제 경영개선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경상비에 대한 전북도 차원의 대책이 없다보니 남원의료원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수익사업에 집중하거나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노조는 “공공병원인 남원의료원은 전북도의 대책 없이는 적자운영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남원의료원이 전북 동남권 공공의료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센터, 중환자실, 분만과, 소아과, 공공의료사업, 지역사회 보건교육사업’ 등은 수익이 나지 않는 대표적인 적자 의료사업이다. 그러나 남원을 비롯한 지역민들의 건강권을 위해 반드시 운영되어야 하는 의료사업이다.

 

▲남원의료원이 운영하고 있는 공공의료사업팀

 

노조 관계자는 “남원의료원은 공공병원으로 의료수가 낮고 비급여 품목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공공의료사업팀에는 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중환자실의 경우에도 총 침상(333개)의 5%를 운영하도록 되어 있는 법적 규정으로 17개를 운영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응급센터만 놓고 보더라도 만약 남원의료원이 민간병원이라면 절대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고 밝혔다.

 

남원의료원 규모의 병원에서 응급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은 대략 의사 4명에 간호사 11명이다. 그러나 남원 인근 지역은 인구가 적고, 응급환자보다는 만성환자가 많아 응급실 운영은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노조 관계자는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1명의 환자를 받은 정도”라면서 “그런데 응급실을 상시 운영하면 영상의학과 등 연관 분과 직원들도 당직을 해야 한다. 개인 병원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원의료원은 순창·구례 등에서도 오는 거점병원이다”면서 “수익을 생각한다면 응급실은 운영해서는 안 되지만, 죽었을 사람을 살리고, 지역 거점병원이라는 위상이 있기에 당연히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전북도는 그 위상에 맞게 남원의료원에 대한 대책과 지원이 있었는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노조도 “전라북도 지사와 원장이 직원들 쥐어짜기와 남원시민들의 병원비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영개선을 하려는 것은 공공의료를 포기하는 것이며 노동자들과 아픈 사람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북도와 중앙정부, 지방의료원 공공성 확보 위한 지원대책 마련해야

 

 

남원의료원의 장기간 파업사태는 본질적으로 지방의료원의 열악한 재정상황과 중앙·지방정부의 공공의료 대책의 부실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김미희 의원은 “지방의료원은 인기 드라마 ‘마의’에 나오는 조선시대 ‘혜민서’의 후신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민간병원이 급증하면서 시·도립병원은 점차 저소득층·생활보호대상자의 의료기관으로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면서 “70년대 이후 의료장비와 시설 노후화, 보수의 비현실화에 따른 우수 의료 인력의 근무 기피 등으로 점차 민간병원에 대한 경쟁력을 잃게 되면서 많은 지방의료원들이 만성적인 재정적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방의료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마저 거의 없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다보니 퇴직금을 적립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퇴직금 중간정산에 필요한 재원을 지역개발기금을 차입하는 형식으로 처리하면서 부채를 지게 되었다”며 “지난 2005년부터는 지방공기업에서 제외되면서 의료민영화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국·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만큼이 경영적자를 낳고 부채와 임금체불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미희 의원은 우선적으로 전체 34개 지방의료원의 부채 중 1723억 원을 우선 국비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지방의료원의 국립병원화를 검토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전북도 박철웅 복지여성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설 지원 등은 매년 2~30억 규모로 하고 있으며 경상비 부분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건의를 하고 있다”면서 “경영 개선의 경우 임직원들이 함께 해야 할 의무”라고 말했다. 남원의료원과도 이와 관련 몇 차례 연결을 시도했지만, 관련 인사가 회의 중이라 통화를 하는 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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