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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파견법, ‘철폐’냐 ‘개정’이냐

윤애림(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newscham@jinbo.net) 2012.04.03 13:00

자본이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혹은 현대중공업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들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판매 실적, 또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며 전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미국, 유럽 등 자본주의 중심국가들이 경제위기에 빠져들고 있기에 더욱 깊은 인상을 주었던 한국 재벌 기업들의 경쟁력의 비밀은 무엇인가? 국책연구원인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비결은 바로 “장시간노동, 비정규직, 사내하도급”을 활용한 노동착취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2010년 노동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규모는 전체 노동자의 25% 이다. 정규직과 대비한 사내하청 비율로 보자면, 조선업은 159%, 자동차산업은 19%, 전기 전자산업은 16%에 달한다. 앞서 예로 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만 보더라도 비정규직 활용형태의 거의 대부분이 사내하청이고, 생산현장에서 기간제 활용 비율은 미미하다. 그렇다면 자본은 왜 비정규직 유형 중에서도 유독 사내하청과 같은 간접고용을 더 선호하는 것일까?


▲[출처: 자료사진]

사실 저임금의 이점 때문이라면 간접고용이 기간제에 비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내하청노조의 조직력이 더 강한 자동차업종의 경우를 보면, 현대자동차의 1차 하청의 통상임금은 같은 근속년수의 정규직의 70% 수준이다. 현행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차별시정제도는 똑같이 유명무실하기에, 결국 임금 차별의 정도는 비정규직의 유형에 좌우된다기보다는 조직된 노동자의 대응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간접고용이 기간제에 비해 해고가 더 쉽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기간제로 사용하다 물량 변화에 따라 계약해지를 해도 현행 기간제법 하에서는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201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분석한 김유선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기간제(2.4년), 파견제(2.9년), 용역(2.4년)으로, 노동력의 탄력적 사용이란 측면에서 비정규직 고용형태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이 다른 비정규직 유형에 비해 자본에게 주는 더 큰 이점은 무엇인가? 바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합법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임금이 체불되어도, 산재사고로 죽어도, 하루아침에 일자리에서 쫓겨나도, 법적인 책임은 모두 ‘바지사장’인 하청업체에게 돌릴 수 있다는 이점,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해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고 노동조합을 탄압해도 모든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이점, 그러면서도 하청업체를 노무관리부서와 마찬가지로 활용하여 노동자들을 전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이점에 있는 것이다.


‘사람장사’는 어떻게 합법화되었는가?


바로 이렇게 간접고용이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을 껍데기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간접고용은 오랫동안 노동법적으로 금지되어왔다. 국제적 노사정타협기구라 할 수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조차도 자신의 목적에 관한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의 첫 머리에서 “노동력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법 역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시부터 ‘중간착취금지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 직업안정법 역시 1961년 제정시부터 ‘근로자공급사업’ 즉 간접고용을 엄격히 규제해왔다. 1997년까지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은 적어도 노동법적으로는 ‘불법’이었으며, 직업안정법에 의거해 노동부의 허가를 받은 노동조합이 하는 근로자공급사업(항운노조 등)만이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즉 1997년까지 적어도 노동법적으로는 직접고용이 고용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8년 도입된 근로자파견법은 바로 이런 ‘직접고용의 원칙’을 뒤집고 중간착취를 합법화해 준 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IMF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고통전가를 종용했던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합의 공세 속에서 1998년 2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입법화에 동의했던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후 대의원대회를 통해 불신임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파견법 이전의 노동법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노동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면, 파견법은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법적으로 정당화해주었다.


‘파견법 철폐’ 대(對) ‘파견법 개정’- 문제는 간접고용에 대한 태도


1998년 7월 파견법 시행 이후 십 수년이 지났다. 사람장사 중간착취의 합법화, 노동자를 1~2년마다 일회용품처럼 버리는 주기적인 해고, 실질적 사용자인 사용사업주(원청)에 대한 면책 부여 등등 파견법이 낳은 폐해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파견법에 의한 대량해고가 최초로 일어났던 2000년 이래로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조직 투쟁 과정에서 “간접고용 철폐, 파견법 철폐” 요구가 모아졌고, 민주노총의 입법 요구 역시 지난 십 수년간 “파견법 철폐, 직업안정법 강화를 통한 직접고용 원칙의 복원”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정작 실제 비정규직 관련법이 노사정간에 논의되는 국면에서는 ‘파견법 철폐’는 진지한 요구로 제기되지 않았다. 2004~2006년 노무현 정권이 기간제법 제정, 파견법 개악을 관철시키려 했을 때나, 2009~2010년 이명박 정권이 기간제법 개악, 파견법과 직업안정법 개악을 들고 나왔을 때나, 노동운동은 파견법 개악저지마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야권연대’ 속에서도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 입장과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등의 파견법 폐지 입장이 갈리고 있고, “현실적인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김대중정권이 파견법을 제정했고, 노무현정권이 그 파견허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제조항을 직접고용 의무조항으로 사문화시켰다는 사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 공약은 사람장사 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현재 ‘지침’으로 되어 있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파견법에 명시하고, 불법파견시 고용의무조항을 고용의제조항으로 회귀시키자는 것이 민주통합당 공약의 골자이다. 문제는 2006년 파견법 개악으로 인해 ‘불법파견’으로 규제할 영역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상 세세분류로 197개의 직업에서는 파견노동자를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2년마다 노동자를 교체할 경우 상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상의 허용업무 이외의 업무에 있어서도 ‘출산 질병 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및 ‘일시적, 간헐적 인력확보의 필요성’이 있으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건설공사현장의 업무, 의료인의 업무 등 소수 금지업무를 제외하고는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기에, 불법파견을 잘 구분해내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를 하겠다는 공약이 사실은 그다지 쓰일 데가 없다. 비유하자면 형법상 범죄의 목록을 대폭 줄여 놓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파견법 폐지’ 요구는 현실 정치에서 수용되기 어려우므로 ‘파견법 개정’으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실익’이 있다고 주장한다. 19대 총선 이후 여소야대가 되더라도 예측되는 타협점은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안 수준일텐데 이것이 사실 ‘실익’이 될 수 없음은 앞에서 설명했다. 현재와 같은 노사정 역관계를 상수로 놓고 전망한다면, 현행 파견법을 보다 엄격하게 개정하자는 요구는 파견법 폐지의 요구와 같은 정도로 관철시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진정 현실적인 방안은 노동운동을 강화할 수 있고 간접고용 철폐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는 ‘운동의 요구’를 내걸고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제조업의 사내하청노동자, 청소 용역노동자, 지자체의 민간위탁노동자, 불법 다단계하도급에 고통받는 건설노동자, 서비스업종의 파견용역노동자 등등 업종과 형태는 다양해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공통적으로 부딪치고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일자리를, 임금을, 노동안전을, 노조탄압을 실제 좌우하고 있는 ‘진짜 사장’ 원청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파견법 철폐’의 요구는 바로 진짜 사장, 원청이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간접고용을 철폐하자는 것이다. 또한 원청이 고용을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 간접고용 사용시 원청의 직접고용으로 의제하도록 직업안정법 개정이 필요하고, 원청을 상대로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 실제 어떤 법개정을 어느만큼 쟁취할 수 있을지는 정세와 노동운동의 투쟁력에 달려 있다. 정세를 유리하게 만들고 투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간접고용이 진정 무엇이 문제인지 간접고용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지 진짜 사장이 왜 책임져야 하는지를 알리고, 비정규직의 조직 투쟁을 엄호 확대해야 한다. “파견법 철폐, 간접고용 철폐”는 바로 그런 운동의 요구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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