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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지회 최종범 열사 장례식장 입구 한 편이 시끌벅적하다. 삼삼오오 모인 삼성전자서비스 하청노동자 A/S기사들은 담배 한 대 피는 짧은 시간에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진상 고객’과 ‘진상 사장’에 관한 경험에 대해 서로 할 말이 많았다.

 

먼저 한 노동자가 “삼성 지펠 냉장고를 향해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일한다. 냉장고에다 조차 예의를 갖춰야 하는 꼴”이라고 말하자 다른 노동자가 “무릎까지 꿇고 지펠을 수리한다”고 받아쳤다. 공손하지 못하다고 고객이 꼬투리를 잡는 데다 양문형 대형 냉장고는 무릎을 꿇고 자재를 사용해 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노동자는 “냉장고 아래 결빙된 곳을 녹이려고 한 시간 넘게 무릎 꿇고 있을 때, 다리가 아파 엉덩이 빼고 걸터앉았다가 삼성전자서비스로 고객에 항의가 들어갔다”고 털어 논다. ‘밥을 먹고 오지 못했다’고 말하자 ‘지금 밥 달라는 거냐’며 고객이 화를 낸 사연, 제품 수리 시 냉장고 문을 세게 닫았다고 고객이 항의한 사연 등이 줄줄이 나왔다.

 

결국 이들은 두 손 모으고 무릎 꿇는 ‘공손’한 행동이 고객을 위해서인지 냉장고를 위해서인지 도통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감정노동자인 A/S기사들은 고객이 없는 자리에서도 고객이란 단어 뒤에 항상 ‘님’자를 붙였다.

 

▲동대문센터 안양근 씨의 무릎에 굳은 살이 배겨 있다. 양문형 대형 냉장고는 무릎을 꿇고 자재를 사용해 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미디어충청]

 

‘임마’, ‘새끼야’, ‘이 미친 새끼’, ‘웃긴 놈이네’ ...
한 순간에 파괴되는 인간의 존엄함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고(故) 최종범 씨는 협력사인 삼성티에스피 이제근 사장으로부터 지난 9월 심한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 고객의 불만사항이 ‘고객의 소리(VOC)’로 접수됐다고 인격모독을 당했다. 고객은 냉장고를 수리할 때 손을 허리에 올리거나, 제품을 설명 할 때 ‘짝다리’를 짚었다며 최 씨에게 욕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으로 협력사 사장은 4분여에 이르는 전화통화에서 ‘임마’ ‘새끼야’ 라고 최 씨에게 퍼부었다. 불만을 접수한 고객에 대해서도 ‘고객을 잡으려면 개 같이 잡아버리던지’, ‘칼로 찔러서 죽여 버리던지’ 등 막말을 했다. 인간의 존엄함은 한 순간에 파괴됐다.

 

<미디어충청>이 입수한 녹취록에 의하면 A/S기사 K씨도 지난 달 심한 욕설을 들었다. 이천센터 협력사 사장은 일요일 오전 9~11시까지 3건의 고객 방문 수리를 처리하라고 하루 전 K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K씨는 여러 사정으로 근무하지 못했고, 사장은 같은 날 오후 전화해 40초 동안 ‘야 이 미친 새끼야 거기 칠판에 다 쓰여 있잖아’, ‘야 장난 하냐고’, ‘웃긴 놈이네’ 등의 욕설과 폭언을 했다.

 

K씨는 “성수기 때 다른 센터와 실적을 맞추려고 휴일 근무를 강요한다”며 “사장은 석 달 전에도 VOC 관련 처리로 심하게 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모욕을 견디며 계속 삼성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 최종범 씨 소식을 듣고 남일 같지 않아 답답했다”고 심경은 전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웃으면서 제품 수리 설명하면 ‘비웃냐!’
‘진상 고객’에 방어권 없고, 회사는 노동자 책임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간단한 욕과 폭언은 기본’이라고 말한다. 천안센터 A/S기사 남 모 씨는 “대형 냉장고를 올렸다 내리면 받침대 자국이 날 수 밖에 없는데, 방바닥 긁힌다고 고객에게 혼났다”며 “고객이 화가 나도 우리는 인상 쓰면 안 되니까 웃으면서 다시 설명한다. 그러면 ‘비웃냐’, ‘약 올리냐’며 고객이 화내기도 한다”고 했다.

 

천안센터 기사 이 모 씨는 “제품 고장 원인 설명을 먼저 원하는 고객, 제품 수리를 먼저 원하는 고객 등 다양하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며 “MOT에 따라 일을 해도, 우리는 고객의 모든 감정을 맞출 수 없다. 고객이 시비를 걸면 VOC 불만사항 처리가 되고, 사측은 모두 직원 책임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고객응대 매뉴얼(MOT)은 일종의 A/S기사 행동 강령으로, 외근기사의 경우 명함전달, 복장, 공손한 자세, 원인결과설명, 철저한 시간 준수, 눈 마주치며 인사 등 12~18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기사들은 매뉴얼을 숙지하고 그대로 일해야 한다.

 

MOT를 기준으로 고객에게 만족도를 묻는 삼성전자서비스 ‘해피콜’에서 10점(매우만족)이 아닌 8점(만족) 이하가 하나라도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대책서를 쓴다. 노동자들은 진상 고객에 대한 방어권도 없는데다 해피콜을 기준으로 실적을 압박하는 회사의 통제 정책에 억지웃음을 짓는 피에로가 된다.

 

▲[출처= 미디어 충청]

 

특히 영악한 일부 고객들은 고객만족도 평가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노동자들은 말했다. 동대문센터 안양근 씨는 “고객평가에 대해 아는 고객들은 흥정을 한다. ‘매우만족’을 줄 테니까 수리비 받지 말고 공짜로 해 달라는 것이다”며 “비참하다.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우리는 웃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남 씨는 관련해 “고객만족도는 제품 수리 기술력과 상관없다. 제품을 잘 고쳐도 수리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5점을 준다”며 “매우 주관적인 평가 기준이다”고 지적했다.

 

고객 ‘만족’, ‘불만족’ 따라 생존권 박탈...노동자 통제로 악용
“여름 성수기에 하루에 한 번 이상 죽고 싶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에게 고객만족은 생존권의 일부이다. 일례로 고객이 수리비를 입금하지 않으면 노동자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로 수리비가 입금되지 않으면 월급에서 ‘미수금’으로 공제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마트폰으로 가상계좌를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또한 고객만족평가는 성과급으로 차등 지급된다.

 

노동자들은 미수금 때문에 수리비 입금을 독촉할 경우 고객이 회사에 항의하고, 이 경우 노동자가 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자비로 수리비를 선입금한다고 말한다.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동래센터에서 근무할 때 월 평균 23만 원가량 고객 미수금이 잡혀 내 임금에서 삭감됐다”며 “고객이 수리비를 입금하지 않아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며 수리비를 독촉한 A/S기사가 해고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 착취 구조에 놓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마저 느낄 수 없다고 했다. 건당 수수료 기준의 낮은 임금에다 고객만족도 평가로 다시 임금이 삭감되니 고객을 ‘돈’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말한다. 더욱이 화가 나도 웃을 수밖에 없는 억눌린 감정은 고스란히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남 씨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그만 두는 동료들이 많다. 나는 삼성에서 일한 지 몇 년 만에 탈모로 고생하고 있다”며 “다른 A/S는 기사는 스트레스로 이가 빠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욕은 욕대로 먹고, 화도 내지 못하는데 우리는 삼성전자 제품이 일류 제품이라고 이미지를 포장해주고 대변해 준다. 삼성전자가 우리는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데도 말이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객이 크레임을 걸고, 회사까지 고객 편들면서 나를 버리니까 진짜 죽고 싶다”고 말했다.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감정노동자는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숨기고 방긋방긋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서비스업이 늘어나면서 고객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이다 보니 감정노동의 폐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와 같이 고객만족을 이유를 들어 조직 내부의 규율과 통제 기제로 악용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며 “노조탄압과 노동자를 순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출처= 미디어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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