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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삼성 노동자 투신자살 37일째, 국화꽃 시들었다

정재은( cmedia@cmedia.or.kr) 2011.02.17 14:51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고(故) 김주현(26세) 씨가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앓다 끝내 기숙사에서 투신자살 한 지 16일로 37일째.


유가족들은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장례식장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주현 씨의 시신과 마주하고 있다. 차마 변해가는 아들을 만나지 못 하겠다는 주현 씨의 부친 김명복(57세) 씨는 시들어 가는 국화꽃 옆에서 눈물을 흘린다.

 

 

투신자살 진상규명, 왜 길어지나?


유가족들은 생업도 접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발로 뛰어다니고 있다. 삼성이 주현 씨의 죽음과 관련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며 천안공장 및 서울 삼성전자 앞 1인시위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 충남지역 노동계와 연대해 기자회견, 면담, 집회도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천안지청과 아산경찰서는 유가족이 탄원서와 진정서를 낸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데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와 경찰의 조사와 수사는 주현 씨의 죽음과 관련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이다.


상황이 이러자 유가족 및 시민사회단체, 충남지역 노동계는 16일 낮2시30분 노동부 천안지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노동부가 삼성의 노동법 위반 내용을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할 것과 삼성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부가 삼성측으로부터 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유가족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힘들게 싸우는 데 노동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 노동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 선춘자 집행위원장은 “모든 관공소가 삼성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다”며 “유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삼성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노동부와 경찰의 철저한 수사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당 충남도당 김용기 위원장은 “삼성과 경찰은 사건의 근본 원인을 찾지 않고, 주현 씨의 죽음을 개인적인 자살로 몰아가고 있다. 삼성이 존재하는 한 이 땅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주현 씨의 부친 김명복 씨는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저승으로 가는 일이다.”고 울분을 터트리며 손수 적은 글을 낭독했다.

 

▲[출처= 엄명환 현장기자]

 


삼성, “각 종 법 위반”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주되게 삼성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고 제기했다.


근로계약서상 주현 씨는 1일 8시간 주5일 근무를 하기로 했으나 실제 1일 12시간, 심한 경우 14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식사도 거르고 일할 정도로 휴게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게 가족들과 동료들의 일관된 진술이다.


또, 유가족은 주현 씨가 기압이 높은 LCD 공장 내 클린룸 설비엔지니어로 정비작업 과정에서 사용되는 유기용제와 설비 내 잔류하는 감광제, 세정제, 오존 등 여러 가지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피부병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주현 씨는 작년 9월 비라인부서로 전보된 바 있다.

 

 

따라서 주40시간 근무한 것도 아니고, <산업안전보건법> 제46조( 및 산안법 시행령 제32조의8)상의 유해위험사업장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주34시간, 1일 6시간 한도로 근무한 것도 아니다.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도 위반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유가족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향후 3개월간 약물치료를 요한다는 신경정신과 주치의 소견과 더 쉬어야 한다는 사내의사 등의 의학적 소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측이 주현 씨를 무리하게 복직시켰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제45조 질병자의 근로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기숙사 사용과 관련해서도 '기숙사마저 회사측의 철저한 통제와 관리를 받았다’며 <근로기준법> 위반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 기숙사 관련 규정에 따르면 ‘사용자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부속 기숙사에 기숙하는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며, 기숙사 규칙도 작성’해야 한다.

 


노동부, 현장 조사도 안 하고 삼성 말만?


고인이 37일 째 장례식장을 나서지 못하고, 각 종 법위반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의 진상 조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16일 집회 뒤 노동부와의 면담에서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노동부가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빠르게 사건을 조사할 것과 형식적으로 조사하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면담에서 확인 한 결과 노동부는 아직 현장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으며, 삼성측의 답변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유가족은 근무시간을 증명하기 위해 ‘사원증 출입기록 전산자료’와 ‘CCTV 영상자료’를 확보할 것을 요청했지만, 노동부 담당 근로감독관은 “삼성측이 사원증을 통한 출입기록에는 시간이 찍히지 않고, 출입 자격 요건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답변했다. 유가족이 현장 조사를 했냐고 항의하자 근로감독관은 “아직 사업장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김민호 노무사는 “사원증 출입기록 전산자료에 시간이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은 삼성의 궁색한 변명이다”며 “삼성의 경우 회사 정문부터 모든 건물의 출입구, 심지어 건물 내부의 모든 부서의 출입구조차도 사원증을 컴퓨터 단말기에 인식시켜야만 출입할 수 있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가족이 제기한 화학물질과 관련한 자료, 기숙사 관련 자료 등도 미흡했다.


관련해 노동부 근로개선 과장은 “1차로 진정인과 회사측을 조사했다. 삼성측에게 서류를 보완해서 오늘까지 제출하라고 했는데, 내일까지 제출한다고 했다. 검토해서 판단하겠다”며 “가능한 빨리 처리하려고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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