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핵폐기장 선정을 위한 초기 단계로 여겨지는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핵발전소의 신설과 증설을 중단하는 ‘탈핵로드맵’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15일 전남 영광군청에서 예정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추진계획 영광지역 설명회’가 영광군 농민, 환경단체 회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전 10시 영광군청 3층 회의실에서 영광군의회 의원, 영광민간환경감시기구 관계자와 영광군청 관계자를 불러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추진계획’을 설명할 예정이었다.
영광군 농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영광핵발전소 안정성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은 설명회 장소인 영광군청 3층 회의실을 점거하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영광군 농민회 노병남 씨는 “과거 정부가 영광군에 핵폐기장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여 지역이 분열로 상처가 깊었다”면서 “당시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영광군에서 설명회를 한다는 것을 농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다.
다른 회원들도 핵폐기장 추진을 반대하는 피켓을 준비하여 회의장 주변에서 시위를 하며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산자부 관계자들은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영광민간환경감시기구 관계자들도 주민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설명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영광군의회 의원들은 설명회 시작 전 간담회를 가지고 “영광핵발전소 3호기 사고 등 당장의 현안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명회를 여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
결국 이날 설명회는 공식적으로 무산됐다. 설명회가 무산되자 공동행동 관계자는 영광군의회 나승만 의장을 직접 만나 “정부가 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공론화에 지역사회가 참여한다는 것은 결국 ‘들러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면서 “영광군민들이 최근 영광핵발전소 고장 사고 등으로 핵에 대한 불신이 큰 가운데 공론화에 참여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번 설명회는 14일 울주군을 시작으로 핵발전소 소재지 5개 지역에 걸쳐 이틀에 걸쳐 나눠 가질 예정이었다. 이번 설명회가 끝나면 산자부는 오는 6월경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식, 부지선정방식, 유치지역지원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가 추진하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과거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던 고준위핵폐기장 건설은 추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광군 설명회를 무산시킨 공동행동 관계자는 “정부의 공론화 추진 계획이 사실은 고준위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한 것”이라면서 “정부가 5개지역 핵발전소의 고준위핵폐기물은 한 곳에 모아 놓고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전북녹색연합도 광주전남녹색연합과 14일 공동 성명을 통해 “고준위핵폐기물은 최소 10만년 이상 격리·관리해야하는 독성물질”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 방식을 가진 나라는 한 나라도 없으며, 탈핵 로드맵이 없이는 미래세대와 특정지역의 고통을 전가하는 고준위핵폐기장의 건설은 어느 지역에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도 지난 4월 29일 국회 본회의 발언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는 원자력 진흥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주관 아래 이뤄져서는 안 된다”면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모인 가운데 투명하고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