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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안녕하세요, 의원님. 저는 전주에서 살고 있는 20대의 시민이며 ‘전북평화와인권연대’라는 지역의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최근 도교육청에서 도의회에 제출한 학생인권조례안이 의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보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도교육청에서 주관한 공청회를 비롯해 각종 토론에 의원들께서 참석하시지 않고, 막상 조례안이 도교육청에 제출되어도 그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서울 시민들의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 광주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학생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라북도에서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여 도의회에 학생인권조례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이 실망스럽습니다.

 

 

체벌,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폭력.

 

혹자는 교권을 침해한다, 학생들을 어떻게 통제하라고 그러느냐며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반대하거나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 인권이 보류되어 왔었던 동안 벌어졌던 갖가지 인권침해를 생각하면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나 제도가 시기상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당시 교실에서 목격했던 끔찍한 체벌 경험을 돌이켜보더라도 학생인권은 너무 오랫동안 표류해왔습니다.

 

1995년 어느 날, 제가 있던 교실에서 한 친구가 담임교사에 의해 지목이 되어 교단 앞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당시 그 친구가 심각한 잘못이나 실수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담임교사는 교단에 나간 학생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인 남성이 뺨을 때리는데 초등학생이 얼마나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그 친구는 첫 번째 구타만으로도 몸을 비틀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체벌을 하던 교사가 계속해서 친구의 뺨을 때리며 했던 말을 저는 15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어쭈? 차렷. 똑바로 안서?” 그리고는 2~3번에 걸쳐 더 뺨을 때리고는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 상황을 목격한 저는 그 폭력이 부당한지의 여부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공포감에 얼어붙었습니다. 그 이후 제게 있어 1995년의 학교에 관한 기억은 당시 살벌했던 그 장면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개봉하여 장애인에 대한 폭력과 사회복지시설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도가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영화를 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 당시 끔찍한 기억이 다시 저를 괴롭힐 것 같아서였죠. 이에 대해서 정신과의사인 정혜신씨는 체벌 받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으며 그 광경을 목격한 또 다른 학생들 중에서도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사람만이 피해자가 아니라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것은 인권입니까? (출처 http://hr-oreum.net/article.php?id=1701)

 

체벌이 이렇듯 심각한 문제임에도 지난 몇 십년간 학교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가수 김태원씨도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교단에서부터 교실 끝까지 교사에게 구타당한 경험 때문에 정신에 깊은 상처가 남았고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심각한 체벌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피해학생이 교사에게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장풍을 맞고 뒤로 넘어진 거 같다고 해서 ‘오장풍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학생에 대한 가공할 체벌들이 잊을 만하면 언론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 지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체벌 사건이 장기간에 걸쳐 학교현장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교사들의 감정적 대응 혹은 과잉지도로 인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른이 학생 혹은 청소년을 대등한 대화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미성숙한 훈육의 대상만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을 훈육 대상만으로 보는 교육에서는 학생으로 하여금 문제해결을 위한 생각의 힘이나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게 아니라 특정한 기준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강제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가장 손쉽게 동원된 수단이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이었습니다. 그러한 교육 구조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혹은 그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반성과 고민의 여지가 없습니다. 체벌에 대한 공포와 그에 따른 복종만이 남게 되겠지요.

 

 

인권이 보장될 때 교육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출처 http://hr-oreum.net/article.php?id=1766)

 

의원님, 지금까지 제가 말씀 드린 체벌만이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두발자유 제한을 비롯해 강제적인 소지품검사, 강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같은 제도들 역시 체벌과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방식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곳곳에 있는 통제가 우선인 교육구조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힘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민주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학생들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왔던 교육의 구조를 바꾸고 교육의 진정한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문제가 발생해서만이 아니라 인권 보장을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들이 매 맞고 통제받는 존재가 내가 존엄한 인권의 주인이라는 의식 속에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권이 보장되기 위해 타인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게 진정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표류하고 유보되어왔던 사회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될 때,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일거라고 여겨집니다.

 

학생들이 공포와 통제 분위기 속에 무기력하게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권리를 박탈당한 사회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관점에서 조례안을 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의정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장문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임 : 이 편지는 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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