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유니온이 보기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비슷하고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가면 차이는 있죠”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 논란은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나왔다.
김영경 위원장이 청년유니온 내부 논의를 통해 민주통합당 행을 고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통합진보당 쪽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묻어나왔다. 청년유니온 활동이 진보에 가까웠고, 김영경 위원장의 색채도 진보적 색채였는데도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통합진보당이 아닌 민주통합당을 더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은 김영경 위원장의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 고심을 두고 청년의 정치적 목소리를 확대하기 위해 보다 현실 가능한 방법으로 민주통합당 행을 무게감 있게 논의 했다. 물론 청년 유니온 조합원의 성향이 다양해 내부 논란이 나오고 있지만 김영경 위원장과 주요 집행부는 민주통합당 행을 두고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총 등에서도 비판이나 비난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주로 통합진보당이 아니어서 아쉽다는 반응이 더 나오는 느낌이다.
이런 무덤덤한 반응은 10여 년 넘게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해 왔던 박용진 진보신당 전 부대표가 민주당 행을 결정할 때도 비슷했다. 박용진 전 부대표의 행보를 두고는 아쉬움이 묻어 나오진 않았지만, 강한 비난이나 배신 같은 단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민주당의 여러 정책들에 대해 강하게 비난해 왔던 박용진 전 부대표의 행보는 진보정치 세력들에겐 배신이나 다름없었지만 그에 대한 비난이나 매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DNA, 큰 차이 날까?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김영경 위원장의 민주당 행 고려를 두고 “깜짝 놀랐다. 청년유니온의 DNA는 민주당과 다르고 통합진보당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대변인은 <참세상>과 통화에서 “청년유니온이 해 온 일이나 지향은 진보정당에 더 가깝다”며 “김영경 위원장이 민주당의 비례후보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 통합진보당에서 끌어와야 할 부분을 우리가 뺏긴 것 아니냐는 그런 당혹감이 있다”고 밝혔다.
또 “민주당이 더 적극적으로 비례후보를 제안 했을 수 있지만, 비슷한 당이라면 몰라도 당이 다르다”며 “청년유니온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길게 보자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펼칠 수 있는 쪽과 정치적 연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송충이는 소나무에 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 설명했다.
노회찬 대변인은 “청년유니온 같은 집단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에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은 당혹스럽다”며 “민주당과 연대할 일도 많지만 특히 노동문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민주당이 일시적으로 선거가 다가와 비슷하게 얘기도 할 수 있지만 그걸 큰 차이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분발도 필요하지만 납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노 대변인은 “실제 차이 없다면 우리가 반성해야 하겠지만 차이가 있다”며 “우리 스스로 둘러보고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뭘 새롭게 해야 할 지 성찰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회찬 대변인의 차이 강조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에도 진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DNA가 비슷해 진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30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기존 민주당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의 진보적 제1야당이 들어선 것은 정치사회에서 뜻 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을 진보적이라고 본 것이다.
조성주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도 참세상과 통화에서 사견 임을 전제로 “이론적으로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차이가 있지만, 청년유니온이 보기엔 비슷하고 큰 차이가 없다”며 “민주당과 특별한 악연이 없고, 진보정당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청년의 목소리를 국회에 반영하고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하기 위한 고민이라고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위원장도 민주당이 진보적 야당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의 눈에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도 무덤덤한 반응에 효과
국민들에게 차이가 없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국민참여당의 통합으로 인한 착시효과도 한몫을 했다. 박용진 전 부대표가 민주당 행을 선택할 당시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인 통합연대의 통합으로 인해 국민참여당 효과가 있었다. 진보신당 창당의 주역이면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강하게 반대했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전 대표들의 참여당 통합 행보는 박용진 전 부대표의 행보 보다 더 강한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던 노동자와 대중이 보기엔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는 부메랑이 됐다.
여기에 민주통합당이 통합과정에서 민주노총이 강조한 ‘노동존중 복지사회’를 강령에 담은 것도 차이를 좁혔다. 민주통합당은 복지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노동을 중심에 두겠다고 선언하고 진보가 중요시 했던 비정규직 문제, 정리해고 문제, 경제민주화, 민영화, 한미FTA 문제 해결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보기엔 당장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힘이 훨씬 강한 민주통합당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경 민주통합당 비례후보 출마 논란은 진보의 정체성 혼란과 맞닿아 있다. 좌클릭 한 민주당과 우클릭 한 통합진보당의 애매한 경계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야권연대 흐름이 만들어 낸 당연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통합진보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태일 열사가 만난 당임을 강조하는 것도 민주당과의 차별을 느끼기 어려운 대목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이백만 통합진보당 서울 도봉갑 예비후보는 30일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간 친노나 통합진보당에 온 친노나 별 차이가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진보적 가치를 어느 정도 추구하느냐, 어떤 방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약간 날 뿐”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진보 위기의 실체 드러나나
박용진 전 부대표와 김영경 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진보진영이나 노동운동 진영의 무덤덤한 반응이야 말로 진보의 위기가 실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태연 노동전선 집행위원장은 “민주통합당의 좌클릭과 3자통합당(통합진보당)의 우클릭으로 사실상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며 이 문제를 통합진보당이 자초한 문제로 봤다.
김태연 집행위원장은 “이전 민주노동당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났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지금 3통합당(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도 큰 충격으로 오지 않는다”며 “이런 식의 통합과정이 반복되면 노동자의 계급적 정체성이 계속해서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유럽이나 남미에서 노동조합과 청년운동이 단결해서 실업문제나 등록금문제에 커다란 투쟁을 함께 해 온 반면, 한국의 경우 노동진영이 청년실업을 사실상 자기과제로 해서 싸우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재옥 진보신당 부대표는 “민주통합당이 노동 문제를 강조하면서 비빌 언덕이 됐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선택이 됐다”며 “진보진영이 그동안 조직적 힘으로 무언가를 돌파하고 투쟁력으로 관철시켜가는 과정보다는, 정치적 의석 확보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실리적 사고를 한 것이 반영 된 효과”라고 평가했다.
대중적 힘으로 현안 문제를 돌파하기 어려워지자 정치적 실리주의와 대리주의를 통해 문제를 관철하고자 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는 상황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심재옥 부대표는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통해 정치적 실리를 확보해야 진보가 하고자 했던 일이 가능하다’고 한 실리적 사고가 작년 내내 통합논의에 작용을 했다”며 “진보진영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도 용인되면서 뭐가 원칙인지 굉장히 혼란스런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을 선택하는 것도 진보의 선택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더 많은 국회의원이 생기면 노동자의 요구를 더 많이 들어 줄 것이라는 측면으로 사고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으로 더 많은 국회의원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재옥 부대표는 또 “지금이야 말로 진보진영이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며 “단지 민주당과 차별성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진보진영의 원칙이 훼손되고 훼손된 원칙에 무감해지는 상황이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도 “예전엔 진보적 색채를 가진 사람을 민주당이 빼가거나 하면 수요 공급 논리라며 비판이 많았지만 지금은 비판의 목소리가 목소리 사라질 정도의 정서가 됐다”며 “반MB가 모두 진보가 된 상황에서, 민주통합당도 통합진보당도 모두 다 진보라 어디에 발을 붙여도 배신이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성인 교수는 또 “통합진보당도 굳이 김영경 위원장 문제로 아쉬움만 보이고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면서 “통합진보당과 가까운 성향의 사람들이 민주통합당에 발을 걸치면서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영향력을 확대할 발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굳이 잡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