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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정년 앞두고 해고, 2년 만에 복직...노병은 죽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총 전북고속지회, "전북고속에는 아직 3명의 해고자가 남아 있습니다"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5.01.0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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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이다. 3,100원 때문에 해고되고 그렇게 앉아보고 싶었던 운전석. 명예를 회복하고 그는 다시 버스기사의 삶을 살고 있다.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이 됐어요” 


작년 12월 17일 전북 군산시에 폭설이 내렸다. 갑작스런 폭설에 군산시외버스터미널 앞 도로에서 버스와 승용차는 제자리걸음이다. 2년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은 김용진씨는 “해고의 빌미를 준 당시에도 눈이 많이 내렸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네”라며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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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00원 때문에 해고된 전북고속 버스기사, 2년 만에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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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일 눈길 운전 중 받은 현금 승객의 요금 3,100원을 입금하지 못해 착복 혐의로 해고된 전북고속 35년 차 버스기사 김용진(59)씨. 2년 만에 복직한 그를 기다린 눈길, 그러나 운전대를 잡는 것 만으로도 기쁘다.



운전대를 다시 잡기까지 걸린 지난 2년의 세월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법원의 복직 판결과 사측의 항소, 실수와 착복. 그의 행위를 두고 두 시선이 엇갈렸고, 그의 인생은 앞을 알 수 없는 눈길과 같았다. 지난 12월 초 배차 약속을 받자마자 듣게 된 폭설 소식, 김씨는 배차를 한 주만 늦게 달라고 회사에 사정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때, 사표 쓰고 집에 가야한다는 말을 회사 관리자로부터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어요. 지금도 그때 상황을 잊을 수 없어요. 근데 그 말 했던 관리자는 사과는커녕 고생했다는 말도 없네요. 2년 동안 고생 많았다고 손 한 번이라도 잡아주는 것이 사람 도리가 아닌가요?”


2013년 2월 5일 단 돈 3,100원 때문에 그는 해고됐다. 현금 승객에 대비하여 거스름돈을 구비해주지 않던 회사였다. 김용진씨는 자기 돈으로 거스름돈을 마련했고, 회사에 현금 수익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소명도 했고, 징계 재심도 요청했다. 그러나 전북고속은 착복이라는 입장을 단 한순간도 거두지 않았다.


법대로 해보자던 회사는 결국 대법원까지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을 내리자 그의 해고를 풀었다. 22개월만이다. 3,100원이 착복인 지, 실수인 지 판가름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다. 


1971년 운전 조수로 입사했고, 35년을 전북고속 직원으로 일했다. 아버지는 과거 전북고속이 자리잡기 시작한 1940년대에 주주였다. 자신을 해고한 관리자와 사장은 IMF로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함께 견뎌낸 이들이었다. 김용진씨도 IMF 당시 1,600여만 원의 상당의 임금을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받지 않기도 했다.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말한다면 김용진씨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 회사로부터 받은 선행상과 에너지절약상 등의 수상실적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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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씨의 인사기록카드. 1972년, 승무원으로 전북고속(당시 전북여객)에 입사한 김용진씨는 회사로부터 모범상도 자주 받는 성실한 버스 기사였다.


그러나 2010년 가을 회사에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김씨가 노조에 가입하자 회사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당시 버스노동자들은 회사에 심각한 배신감을 느꼈다. 제대로 받아야 할 통상임금을 그동안 받지 못했다는 것이 알려졌고, 버스노동자들은 민주노총에 집단 가입했다. 190여 명, 직원 과반 이상이 가입했다.


하지만 회사는 민주노총을 인정하지 않았고, 대화 거부와 징계 등으로 4년이 지나 노조는 현재 20여 명의 소수 노조로 전락했다. 김씨는 지금도 민주노총 조합원이기 때문에 해고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회사는 그를 ‘도둑’으로 몰았지만 말이다.


“노병은 죽지 않았다. 운전대 잡으니 매뉴얼이 다 생각나요”


군산터미널에서 다른 회사 동료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그의 복귀에 축하 인사를 했다. ‘횡령’, ‘도둑’으로 회사는 보고 있을지 몰라도 이날 만난 동료들은 그가 드디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적어도 이곳 버스 기사들 중에는 그를 ‘도둑’으로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2년이 걸린 셈이다.


12월 13일, 배차 배정을 받고 전북고속 운전대를 22개월 만에 잡았다. 해고되기 전에 익숙했던 구간이 아니었다. 일명 ‘스페어’라고 불리는 직책으로 비번 동료들 대신 해당 구간을 임시로 운행한다. 익숙하지 않은 노선과 버스를 몰아야 하기에 힘이 더 들어간다. 회사가 그를 도둑으로 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김씨는 섭섭함보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을 기자에게 더 많이 표현했다. 


“30년 넘게 근무한 노하우가 있잖아요. 노병은 죽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떨렸죠. 그런데 벨트 확인이나 엔진 점검 등 잊은 줄 알았던 업무 순서들이 되살아났어요.”


동료기사 A씨는 “돌아가신 우리 엄마 만난 기분이네요. 겉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많이 안타까웠죠. 이렇게 터미널에서 만나니 반갑네요”라며 김씨의 복귀를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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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2월 1심 판결에서 해고 무효 확인을 받고 그 소식에 김용진씨보다 동료들이 더 기뻐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복직은 그로부터 1년 후에 이뤄졌다.



“막노동에 폐지 수집까지 지옥 같은 해고기간, 동료와 가족 때문에 버텼어요”


지난 2년은 김용진씨에게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때로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종종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자리도 잃었고, 이 나이에 새로 일자리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됩니다”


한 때는 막노동도 도전했다. 새벽 인력시장이 열리는 전주 모래내시장에 나가 2~3일 정도 일을 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막노동 일당으로 번 돈은 치료비로 다 나갔다. 그것도 3일 정도 하니 자신을 불러주는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생계를 놓고 살 수는 없는 일. 그는 소일거리로 폐지를 줍기도 했다. 아침나절 리어카를 몰고 폐지를 줍는 일은 아내가 다니는 식당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이 모든 것이 단지 회사의 말도 안 되는 해고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분노와 함께 세상살이에 대한 염증도 느꼈다. 그럴 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민주노총 동료들과 가족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후배들이 전화로 ‘형님 집에만 계시지 말고 약주라도 같이 하게요’라며 불러서 위로를 해줬어요. 지금 노조원이 20여명으로 줄었지만, 이들의 관심이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줬어요. 그래서 쌍용차 해고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조만간 기회가 되면 가볼 생각이에요.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었어요. 전북고속이나 쌍용차나 노동자를 구석으로만 몰아가니 죽을 수밖에 없어요. 몇 명이 더 아까운 죽음을 맞이할지 몰라요. 정말 동료들의 연대와 관심, 사랑이 버틸 수 있는 힘이었어요”


동료와 함께 ‘안식구’라 부르는 아내의 도움도 컸다. 노동운동의 ‘노’자도 잘 모르는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했다. 장기간 법정 투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아내가 해준 말, “우리 순리대로 살아가요”라는 말이 그를 버틸 수 있게 해줬다.


“대법원 판결 소식을 변호사로부터 듣고 저녁에 울컥하는 마음에 안식구랑 끌어 앉고 울었어요. 정말 우리 식구가 애썼어요”


“전북고속에는 아직 3명의 해고자가 남았습니다”


김용진씨의 복귀 소식에 남상훈 전북지역 버스지부장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렇지만, 김씨 외에 전북고속에 남은 해고자를 생각하면 회사가 원망스럽다. 87년 입사한 남 지부장은 올해로 26년차 버스기사다. 그는 민주노총 전북고속지회 인정 등을 요구하며 3차례에 걸쳐 약 100여 일의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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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5일, 김용진씨에 대한 해고에 대해 동료들은 민주노총 조합원이기 때문에 해고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 동료의 메시지.



“노동자들은 힘이 없어서 해고당하면 힘들어요. 회사는 법대로 하겠다고 대법원까지 갔잖아요. 그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지금도 민주노총 소속 전북고속 노동자 3명이 해고자 신분입니다. 이들도 노동위원회 2차례에서 모두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회사는 강제이행금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복직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올 겨울, 해고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춥다. 멀리 평택 쌍용차와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는 해고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단 돈 3,100원 때문에 해고된 김용진씨가 2년의 법정 투쟁 끝에 승리했지만, 이 회사에는 아직 3명의 해고노동자들이 남아있다. 매일 오전 이들은 회사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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