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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현대차에 부는 피바람,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듣다

윤지연( newscham@newscham.net) 2011.04.04 12:03

[편집자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핏빛 칼날이 겨눠지고 있다. 현재까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해고, 정직, 감봉 등의 징계가 내려진 노동자는 539명. 아산공장의 경우 269명이 징계 대상자에 포함됐다. 하지만 아직 징계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회사는 2차 징계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징계를 받게 될 노동자의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대량 징계로 조합원 솎아내기에 들어간 현대차는 공장 안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의 끈도 놓지 않는다. 공장 안에 남은 조합원들은 회사의 감시 아래 활동을 봉쇄당한다. 조합원끼리의 잡담도 허용되지 않는 현대자동차 공장은 그야말로 21세기 수용소의 모습이다. 거기다가 공장 안팎의 노동자들은 노조 탈퇴와 각서 강요, 3개월 수습 전환, 발언권 제약 등의 탄압으로 오늘도 절박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장점거 파업이 끝난 지 3달여. 지금 거대한 현대차 공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지난 31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의 시민, 법률, 인권 단체는 울산과 아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량 징계가 계속되고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과 아산공장의 불법징계, 인권탄압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진상조사단을 구성한 이들은 각각의 지역에서 수많은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와 탄압 사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해고와 정직, 감봉을 받은 노동자부터, 기본권조차 가로막힌 채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 노조 탈퇴를 강요당하고 있는 노동자 등 수많은 목소리가 이 자리에서 기록됐다. 조사단과의 면담을 위해 찾아온 조합원들은 지금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3개월 수습 전환, 탈퇴서 강요, 대량 징계...현대차에 부는 피바람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명석(가명) 씨는 현재 ‘심각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유인즉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개월짜리 수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지난 3월 31일, 울산 현대차 2공장 하청업체인 은창기업이 폐업함에 따라 신규 업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과정에서 신규업체는 기존 은창기업 소속 노동자들을 3개월짜리 수습으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 소속 노동자들 중에는 10년차의 숙련 노동자 역시 포함돼 있는 상황이었다.

 

김명석 씨는 “대법 판결에 따르면, 10년차 숙련 노동자는 정규직이어야 하는데 회사는 그를 졸지에 3개월 수습의 하청노동자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이는 회사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아예 봉쇄하려는 술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신규업체가 ‘3개월 수습 전환’이라는 선례는 남김으로써, 앞으로 각 업체에서의 ‘수습’제도 도입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따른다. 김명석 씨는 “해당 업체의 수습제도 도입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에 ‘수습’직은 점점 늘어날 것이며,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수습딱지’를 붙임으로써 해고 등의 탄압을 더욱 쉽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해고 등의 징계는 노골적으로 이루어진다. 1차 공장 점거파업과 2차 파업이후 그들에게 가해지는 징계는 곧 ‘노조와해’를 겨냥한다. 회사 측이 강요하는 ‘노조 탈퇴서’나 ‘각서’는 그들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탄압과 회유에 탈퇴서나 각서에 서명한 이들도 적지 않다. 평소에도 고용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 ‘해고’나 ‘정직’이라는 징계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각서에 서명한 한상복(가명) 씨는 “처자식이 있기 때문에 일단 해고는 면해보려고 사직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업체에서 각서를 쓰면 징계 수위를 낮춰주겠다고 해서 쓰게 된 각서였다. 각서에는 ‘앞으로 지회의 파업지침을 따르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각서를 쓴 후 한상복 씨는 정직 1주일의 징계를 받았다. 그는 “내가 속한 A조 조합원 대부분이 각서에 서명해 징계 수위가 낮아져 감봉 조치가 취해졌고, 나 같은 경우 선동 등의 이유가 포함돼 1주일 정직을 받은 것” 이라며 “회사에서는 탈퇴서를 쓰라고도 계속 협박했는데, 그것은 차마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각서와 탈퇴서 모두에 서명하지 않은 박지훈(가명) 씨는 해고라는 중징계가 가해졌다. 쟁대위원의 직책을 맡아온 만큼, 징계의 수위도 높았다. 하지만 해고 이후에도 회사는 여전히 그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있다. 박 씨는 “지금까지도 업체는 노조를 탈퇴하면 살려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회사는 해고자 누구든지 노조를 탈퇴한다고 하면 복직을 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박 씨는 “대의원 활동을 해서 해고된 한 조합원에게는 업체가 노조를 탈퇴할 시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얘기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악몽’같은 공장 안의 풍경, 짓눌리는 노동자들


징계 기간을 끝내거나 징계를 면한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에게 공장은 악몽 같은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와 업체의 감시와 탄압은 그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막고 있으며, 부채감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서로간의 거리감을 실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간의 징계를 끝내고 공장으로 복귀한 이삼열(가명) 씨는 “노조가 공장에 뭉쳐있었던 과거에 비해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공장안에서는 노동자들의 최소한 기본권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 씨는 지난달 24일, 감기 몸살에 걸려 조퇴를 신청했다. 하지만 반장은 업체 사장과 면담을 거쳐야 한다고 전해왔고, 이 씨는 “열이 많이 나고 아픈데 일단 병원 먼저 가야하지 않겠냐”며 면담을 거절했다. 그러자 사장을 만나고 돌아온 반장은 이 씨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고, 봉투 안에는 ‘경고장’이 들어있었다. 이 씨는 “아파서 면담 거절을 했다고 경고장을 주는 것이 너무 황당해 사장실로 찾아갔더니 사장이 ‘이 인간 끄집어내’라며 소리를 질렀다”며 “자기 면담을 거부했다고 얘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 씨는 “병원을 다녀온 뒤 소견서를 제출하라고도 했다. 사장이 무슨 병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또한 노동자들은 화장실을 갈 때 업체 사장에게 직접 통화를 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기도 한다. 이삼열 씨는 “이제는 반장을 배제 시키고, 화장실을 갈 때도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라고 한다”며 “파업 전과 후의 공장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장 출입 과정에서의 감시와 통제도 극심하다. 오일권(가명) 씨는 “경비들이 노동자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을 펼쳐놓고 해고자와 정직자, 그리고 출입 가능한 노동자의 얼굴을 가려낸다”며 “공장 안에서는 노동자들끼리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하고 있어도 관리자가 와서 모여 있지 말라며 감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조합원과 비조합원, 징계자와 탈퇴한 조합원 등이 느끼는 거리감이다. 최민기(가명) 씨는 “회사의 노동자 탄압은 분명 노동자 자신의 일인데, 이에 대해 겁을 먹고 눈치를 보는 모습이 싫어 비조합원과는 얘기하지 않는다”며 “현재 공장 안에서는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갈등이 커진 상태며, 서로 인사는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꺼려지기 때문에 다른 조합원들도 비조합원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원청과 하청이 직접 나서서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조합원들이 회식을 할 때면, 원하청은 비조합원들을 모아 따로 회식을 진행한다. 박지훈 씨는 “조합원들 회식날, 현대차 협력지원팀은 돈을 지원하면서까지 비조합원들의 회식을 진행한다”며 “업체별 전체 회식을 하고나서도, 다음날 비조합원만 다시 모아 회식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비조합원들의 회식이 있는 날이면, 반장이 명단을 들고 다니며 비조합원들에게만 따로 회식에 참여하라고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징계 수위에 따라 조합원들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도 한다. 징계 수위가 낮은 노동자들 중에는 각서나 탈퇴서를 작성한 조합원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해고자인 박지훈 씨는 “각서를 쓰고 수위 낮은 징계를 받거나 탈퇴서를 쓴 조합원들은 공장 밖에서 우리를 쳐다보지도 못한다”며 “우리가 출근투쟁을 하면 다른 입구로 들어가거나 피하고, 도저히 미안해서 전화도 하지 못하겠다는 조합원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공장 안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특히 지도부와 간부들에 대한 해고 등의 수위 높은 징계가 이루어지며, 현장에는 평조합원과 비조합원들만이 뒤섞여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결국 탄압과 갈등이 지속되는 공장 안에서, 평조합원과 비조합원만이 남아 그 무게를 감당해야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수용소’가 된 공장, 그 뒤에는 ‘현대자동차’가 숨어 있다


조합원에 대한 징계는 하청업체에서 이루어진다. 노동자의 인사를 비롯한 노무관리의 책임은 전적으로 하청 업체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대법 판결을 통해 드러난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실태는 아직까지 현장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실질적인 노동자 관리가 ‘바지사장’이라 불리는 하청 업체가 아닌,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자인 박지훈 씨는 “업체에서는 점거 파업 참여 수위에 따라 징계를 달리하고 있다”며 “하지만 하청업체의 징계 사유는 업체에 끼친 손해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협력업체가 원청 공장 점거 수위에 따라 징계를 결정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또한 그는 노무 관리를 비롯한 노동자 감시 등의 행위가 모두 원청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씨는 “상경투쟁을 하면 소장들이 따라 올라오는데, 그 옆에는 현대자동차 협력직원팀이 따라붙는다”며 “출근투쟁을 할 때도 건너편 소장 차량 뒷자석에 누가 타고 있어 우리가 갔더니 도망갔다. 소장에게 누구냐고 물으면 원청 협력지원팀 과장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박 씨가 소장에게 감시 등에 행위에 대해 항의를 하면 소장은 “내가 오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다. 안 그러면 내가 잘린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홍기훈(가명) 씨는 하청으로부터 “니가 살려면 노조 탈퇴를 하고, 협력지원팀 과장과 생산 차장한테 가서 무릎꿇고 빌어라.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그들이 오케이 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명석(가명) 씨 역시 업체에서 출입증을 발급해주지 않아 항의 전화를 했더니 업체에서는 “위에서 주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정 씨는 “이 내용을 녹취해 뒀다”며 “협력업체는 독립적인 회사인 만큼, 현대자동차가 업체의 ‘위’에 있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현대차가 원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이후에도 현대자동차는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 와해를 위한 징계와 탄압도 여지없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공장 안팎으로 이루지는 노조와 조합원 죽이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제재 받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만 간간히 언론을 통해 노출될 뿐이다. 25일 간의 공장점거 투쟁을 끝마친 이들은 여전히 고통과 배고픔,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 찬 공장안에서 살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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