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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고 권력자도 4대강 정비 사업을 말하며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속도전을 주장하는 사회에서, 느릿느릿 땅바닥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듯이 진행되는 오체투지순례는 바보들의 행진입니다. 속도전의 세상을 거부하는 바보들이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를 주문처럼 외울 뿐입니다.

<23번 국도를 만나면서>

오늘은 631번 지방도로와 23번 국도에서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출발은 갑사로 가는 삼거리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하루 일정을 시작할 즈음해서의 풍경은 매번 다릅니다. 오늘은 수경스님은 논두렁을 걸으며 명상을 하시고, 전종훈 신부님은 사전운동에 열심히셨습니다. 문규현 신부님은 직접 운전을 하시어 공소에 다녀오셨습니다. 하루 일정을 함께하는 스님들과 프랑스인 참가자는 순례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바쁩니다.


오늘은 대전 진잠 성당의 신부님과 신자들께서 하루 일정을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대전 진잠 성당의 정춘교님은 “함께 뜻을 하고자 왔으며, 가장 낮은 자세로 오체투지에 임하다 보니까 신부님께서 사제서품을 받으실 때의 모습이 실감이 나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위정자들이 서민들은 안중에 없고 이권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성직분들께서는 땅에 엎드리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희망을 갖고 이명박을 선택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실망이다.”며 안타까워 하시고, “특히 자녀를 둔 엄마기에 교육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교육정책의 탓도 있겠지만 진작 중요한 것은 엄마들의 그릇된 가치인 것 같아요. 자녀들의 인성은 무시한 채 내 아이만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먼저 엄마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며 힘주어 말씀하시더군요. 정춘교님은 “사람의 길은 먼저 부모와 형제의 우애와 화목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사람과 사람끼리도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십니다.


순례단은 오전 내내 계룡저수지를 돌아 나가는 길에서 일정을 진행하였으며, 오후에는 계룡면 직전에 23번 국도를 만나 공주방향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갑사로 가는 삼거리에서 계룡 저수지를 돌아 나오는 길. 참 춥더군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바람만이 순례자의 발걸음을 잡는 듯 하였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으니 당연히 봄 바람이 불어야 하지만, 어이된 일인지 차갑기만 합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일이었던 3월 26일 순례를 준비하면서 삭발을 하신 전종훈 신부님은 연신 머리를 매만지며 '춥다 추워' 하십니다. 결국 중간 휴식 시간에는 모포까지 등장하였습니다. 곰돌이가 그려진 모포를 두르고 계신 두분의 성직자 모습 덕분에 참가자들은 큰 웃음으로 힘을 내어 봅니다.


호숫가 바람이 차다지만 바람은 금세 땀이 송글 송글 맺히고 가빠오는 호흡의 순례자를 차분하게 해줍니다. 그렇기에 자연은 바람을 빌어, '햇빛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따듯하고 부드럽고 멈추지 않는 끊임없이 깨어있는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 순례단이 지나가면 어머니 아버지들이 뭔일인가 관심을 나타내십니다. 오늘도 동네 어른분들께서 순례단의 죽비소리에 뭔 일인가 하여 나오셨다가 순례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한참을 말없이 지켜보시더군요. 그러더니 순례단의 플래카드를 보며 사람 ․ 생명 ․ 평화의 길을 한자 한자 읽더군요. 유인물을 들고 바라보던 어르신. '저렇게 해서 언제 임진각까지 가냐?'며 걱정을 하십니다.


오후에는 계룡면 소재지 직전에서 23번 국도를 만나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차량이 굉음을 내며 다가와 사라져갑니다. 순례 중에 만나는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위협적인 요소입니다. 요즘은 국도가 고속도로 수준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시켜주던 도로는 이젠 옛말이 되었습니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만을 위한 도로는 어느새 사람과 마을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목적지라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도로로 인해 사람들은 주변의 마을은 볼 수 없고, 오직 목적지까지만 빨리 찾아가는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그 중간에 어떤 마을과 공동체가 있는지, 혹은 자연이 어떤지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존재는 가벼이 여겨집니다. 수많은 자연의 보고들이 쉽게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자리매김 되는 현실입니다.


빨리 가면 빨리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상실하는 삶. 그런 삶을 희망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타인과 타자에 대한 관심. 그것이 바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우리의 순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바보처럼 속도를 거부하며 더 천천히 더 낮은 곳에서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사람이 가야 할 길과 생명이 넘치는 길, 평화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순례단은 23번 국도의 계룡면 진입 지점인 봉명교차로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명상하는 사람들>

지난 2008년 순례에는 버마 민주화 운동가인 마웅저(함께하는시민행동) 선생님이 순례단 진행팀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번 순례에는 프랑스에서 온 수브라(subra, 법명 원중.프랑스)씨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수브라씨는 아주 현란한 저글링 묘기를 보여주며 순례단을 항상 웃게 해주는 분입니다. 프랑스에서 18~22살까지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을 했고 주특기는 저글링 묘기로, 저글링과 함께 댄스를 가미한 묘기도 가능합니다. 이후 26살까지 웨이터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고 2년 6개월 전에는 일본에 머물렀다 합니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불교신자를 통해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일본, 그리고 작년 9월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분간 계속 아시아 국가에 머물면서 불교공부를 할 예정입니다. 승려가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본인은 오체투지를 하나의 수행(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세상의 평화를 원하기 때문에 오체투지 순례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자연경관, 강, 산, 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즐기면서 오체투지에 임한다고 합니다.


수브라씨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순례길에 참여한 분들도 즐겁기만 합니다. 힘겨운 오체투지로 몸은 고단하지만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순례에 참가하였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함께 안마로 몸을 풀어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생명의 길에 대한 단상>

산에는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물결치고, 어느덧 길에는 활짝 핀 민들레와 냉이꽃이 환한 웃음으로 순례단을 맞이합니다. 조그만 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현란한 몸짓으로 봄을 알립니다. 그렇게 산과 들은 회색빛을 벗어나 녹색으로 물들며 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참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그렇게 하늘은 높고 푸르며 세상은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시절에 길 바닥에 몸을 낮추어 엎드리며 기도하는 순례자들에게 '생명의 길'에 대한 단상을 여쭈어보았습니다.


삶의 길이 곧 생명이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생명의 길(임상교 신부) / 우주이다. 하느님이 우주를 만드셨고 그 안에 모든 생명이 존재, 하느님을 믿는 우리로서는 우주를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정삼태) /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길, 우리 자손도 함께 가야할 길.(정춘교) /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자녀 셋이 있기 때문. 박미숙) /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는 길 - 이 과정을 생명의 길이라고 생각(신하얀메) / 사람은 자연을, 자연은 사람을 품는 것이 생명의 길(박영순) / 오체투지 하면서 우리의 먼 미래의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것(김은숙) / 역설적이지만 죽음의 길이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고 출가하셨기 때문에 중생에게 다가왔고, 예수님도 자아를 죽였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도 밀알이 썩고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소생하듯, 오체투지도 자신을 죽이고 낮춤으로써 권력과 부가 참 생명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김영식 신부) / 손자 손녀가 너무 이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전해서 물려주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박강조) /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의미가 있듯이, 서로 감싸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받아들이고 비워야 가능(연규영 신부)


어떤가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저마다 처한 자리에서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깨달음의 세계'라는 어느 옛 선사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이 않나요?

<함께하는 사람들>

- 임상교 신부, 정삼택, 정춘교, 박미숙, 신하얀메, 박영순, 김은숙(진잠성당 대전) / 수브라(프랑스) / 조홍택(서울) / 정수 스님(영평사) / 김영식 신부, 손성문(안동교구) / 송년홍 신부, 연규영 신부(전주교구) / 박강조(공주)님 등이 순례에 동참해주셨습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정삼택(진잠성당 대전), 김현태(영평장학회 공주)님이 후원해주셨습니다.
- 공주경찰서에서 순례단의 안전을 위해 차량통제를 지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3. 30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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