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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정현( 1) 2009.03.31 18:44

대추리에서 쫓겨난 후
마음도, 어깨고 허리고 다리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
화를 다스리고 텃밭이나 가꾸고 기도하며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이 분들은 살려고 망루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살기는 커녕 숯검정이 되어 내려왔습니다.
테러집단이 되었습니다.
자해 공갈집단이 되었습니다.

참사의 현장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군 작전이었습니다. 적진을 탈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경악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아연실색할 일입니다.
가족들은 졸지에 테러리스트, 자해공갈집단의 아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는 한을 품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영정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할 말을 잃을 뿐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애도마저 침소봉대 당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도 잔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잔인한 힘만 믿고 눈을 감은 채 철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막된 이명박 정부입니다.

꽤 오래 전에 오늘 미사집전을 부탁받았습니다.
오체투지, 오늘부터 계룡산 신원사에서 청계광장까지 176㎞ 먼 길을 다시 시작합니다.
바로 제 동생이 고행의 길을 떠나는 날입니다.
그래도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정부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의 동의도 없이 불에 탄 시신을 부검하여 토막 내듯 잘라 냉동실에 두고 있습니다.
끔찍합니다. 그리고 두 달이 넘도록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 이명박대통령이 이렇게 방치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내 알 바 아디다.’
‘그냥 놔두면 지쳐버리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설상가상 용산 참사를 위한 일체의 모임은 닥치는 대로 막고
닥치는 대로 잡아 가두려 하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가 바로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입니다.
바로 정부 자신의 허약성을 노출할 뿐입니다.

대화를 하거나, 문제를 풀 생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둘러보지도 않고 무엇이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일관된 행각입니다.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국민 다섯분과 경찰 한분이 희생되는 엄청난 참사에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해야 합니다.
참사를 불러온 재개발은 원점에서 재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역과 경찰의 폭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재개발 조합의 온갖 비리는 왕성해질 것입니다.
시공업체들의 이익은 하마의 입이 될 것입니다.
세입자들의 억울함은 한이 없을 것입니다. 포클레인 바퀴 앞에 깔리고 경찰과 용역직원들의 발에 계속 짓밟힐 것입니다. 용산참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유신, 5공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기야 그들의 후예가 아닌가요?

당신들의 말로는 사필귀정입니다.
단지 용산참사와 같은 희생을 얼마나 치러야 할지, 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추기경님의 추모행렬을 보고 용산참사를 덧씌우며 생각해 왔습니다.
추기경님을 추모한다면 여기 와서 조문해야 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고통받는 곳에
가장 박해받는 곳에 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이웃사랑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유가족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희생된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조속히 장례를 치러 평안히 논을 감고 누워있게 해야 합니다.

저는 집안에 편안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내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러워서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머물면서 매일 위령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억울하게 구속, 수배된 자들의 자유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회개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지금 사순절 중입니다.
진정한 해방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여러분,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3월 28일

길위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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