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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다시 5.18을 맞아

김영문( icomn@icomn.net) 2021.05.17 16:32

올해는 5.18 광주 민주 항쟁 41주년 되는 해다. 나는 80학번이므로 내 인식의 무너져 내림과 새로 세워짐은 1980년 5.18에서 비롯되었다. 그해 5.18 이전 전국에서 진행된 민주화 투쟁은 1980년 5월 15일 소위 ‘서울역 회군’을 계기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당시 전두환을 수괴로 한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전국으로 비상계엄령을 확대한 후, 광주에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시민을 향해 비인간적인 총칼 진압을 자행했다. 이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민주화 투쟁사에 핏빛 발자취로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군대가 우리나라 시민을 향해 총을 쏘는 행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 충격과 경악과 분노와 비애와 고통의 과정이었다. 나는 5.18 이전까지의 인식과 공부를 모두 다시 점검하고 성찰했다. 이를 통해 민주, 저항, 독립, 자유, 평등, 인권, 통일 등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보편 가치에 대해 새로운 각성과 심화된 인식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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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보도에 의하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전두환이 항소심 재판에 불참하겠다고 변호인을 통해 의사를 밝힌 모양이다. 전두환은 이미 1996년 반란수괴, 내란수괴, 상관살해, 뇌물 등 모두 13개 중대 범죄 행위에 따른 사형선고를 받았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후 김영삼 정부 말기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전두환은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으며, 심지어 2017년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과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회고록 3권을 출간하여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야기했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담은 그의 회고록은 당연히 법원에 의해 발매, 출판, 배포 금지 결정이 내려졌으며, 결국 조비오 신부 유족에 의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로까지 이어졌다.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1심의 선고는 집행유예였지만 이는 사자명예훼손이란 죄목에 대한 작은 유죄 선고일 뿐 그 자의 중대범죄가 사라지거나 경감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광주 시민 학살 진상에 대한 조사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죄가 밝혀지면 그에 따른 응분의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 학살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법망의 허점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군 병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책임자가 그 자이고, 나중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라 7년 임기를 누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한 자가 그 자임을 우리 현실과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중국 초한쟁패 기간 항우(項羽)는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진(秦)나라 병졸들이 자신을 험담한다는 이유로 휘하 장졸들을 시켜 수십만 명을 생매장해서 죽이게 했다. 항우가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역사에는 그 만행을 모두 항우의 죄로 기록했다. 전두환이 광주 시민을 학살한 원흉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직접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는 앞으로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설령 밝혀지지 않더라도 그건 본질이 아니다. 이미 1996년 재판에 의해 밝혀졌듯이 그 자는 반란수괴, 내란수괴로 활동하며 광주 시민 학살 배후자로 권력을 쟁취하여 대통령이 된 후 온갖 호사를 누렸다. 이것이 그자가 실질적인 학살자이고 살인마인 이유다. 항우가 진나라 병졸의 학살자인 까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와 같다.

5.18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짓은 민주와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 가치를 부정하는 만행이다. 이를 일삼는 자는 우리 민주 사회의 존립 기반을 부정하는 반란자이며, 수많은 객관적 증거를 무시하는 사이코패스에 다름아니다. 일본 극우 세력들은 부정할 수 없는 다양하고 객관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수많은 중국 양민을 학살한 난징대학살을 부정할 뿐 아니라 꽃다운 식민지 처녀들을 성노예로 전락시킨 정신대 강제 동원도 부정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식민지 침략 만행조차도 부정한다. 현재 5.18을 부정하는 우리나라의 수구 패거리도 일본 극우 세력의 행보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전두환 일당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른 학살 행위를 부정하면서 당시 전남 도청을 점령한 시민군을 북한의 특수부대라고 주장한다. 당시 시민군 명단은 객관적인 자료로 존재하고 또 최근에는 북한에서 파견되어 광주에 침입했다는 사람이 1980년 5.18 때 광주에 간 적이 없다고 진실을 밝히기도 했다.

80학번인 내 기억에 비춰봐도 당시에 전두환 일당은 광주 시민군을 폭도로 지칭했을 뿐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많은 북한 특수부대가 우리나라 가장 후방 지역인 광주에까지 침입했다면 당시 우리 국가와 군대의 정보기관을 장악한 신군부가 대 국민 선전전에 이용하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5.18 민주화 운동은 광주 시민이 피로 써내려간 인류의 보편 정신이자 불멸의 유산이다. 나는 매년 5.18을 맞을 때마다 루쉰(魯迅)의 비수 같은 글을 떠올린다.

“먹으로 쓴 거짓이 절대 피로 쓴 진실을 감출 수 없다. 피의 빚은 반드시 같은 것으로 갚아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더 막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고.”(「꽃 없는 장미 2(無花的薔薇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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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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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자. 번역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중국 베이징대학 방문학자(한국연구재단 Post-Doc.)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경북대, 서울대, 한국교통대 등 대학에서 다년간 강의.

저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근현대 대구경북 중국어문학수용사』(공저) 등,

역서: 『동주열국지』(전6권), 『원본 초한지』(전3권), 『삼국지평화』, 『정관정요』, 『자치통감을 읽다』,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루쉰전집』(전20권 공역) 등 3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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