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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7월, 신월(申月)을 맞이하며

김성순( icomn@icomn.net) 2021.06.28 20:17

이제 곧 일년의 반을 보내고, 나머지 반이 시작되는 칠월을 맞이하게 된다. 음력 칠월은-양력과는 대략 한 달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신(申)자를 써서 신월(申月)로 표기한다. 신(申)이라는 글자는 십이지지로는 원숭이(잔나비)에 해당되며, 한자 훈으로는 ‘아홉째 지지’로 읽는다.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申은 神과도 통하기 때문인지, 음력 칠월에는 망혼(Ghost)과 관련된 의례와 민속행사들이 많이 거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전후로 하여 망혼이 된 선대 부모를 천도하기 위해 우란분(盂蘭盆) 의식을 거행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귀절(鬼節), 보도(普度) 등으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백중(또는 우란분), 일본에서는 오봉(おぼん)이라고 한다.

이러한 음력 7월 천도의식의 교의적 근거로서, 『불설우란분경(佛説盂蘭盆經)』에서는 불타가 아귀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목건련의 모친을 구제할 방법을 일러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음력 7월 15일에 하안거를 끝낸 승려들이 안거 동안의 과오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인 승자자(僧自恣; Uposatha)를 할 때 칠세(七世) 부모와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를 위하여 온갖 맛있는 음식과 과일, 향유, 등촉 등을 쟁반에 담아 승려들에게 공양하라고 일러준 것이다.

이러한 『불설우란분경』 계통의 문헌 이전에, 인도 문화권에서는 죽음과 윤회 사이의 중간적 상황에 있는 망혼들을 아귀로 규정하고, 아귀 상태에 있는 망자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습속이 있었는데, 점차 불교에 포섭되면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변용되어온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생전의 죄업에 대한 심판을 요지로 하는 불교의 지옥사상과, 도교에 뿌리를 둔 시왕사상의 융합이 구체화되면서 사후의 세계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도 같이 자라나게 된다.

특히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이 변상도 등을 통해 마주한 시커멓고, 깡마르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바늘 같은 목구멍에서 불길이 나오고, 배가 늘 불러 있는 이른바, 침후대복(針厚大腹)형의 아귀들의 모습은 생전의 죄업과 그에 따른 사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그러한 추악한 몰골의 아귀들이 바로 조상의 현재 양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게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아귀사상과 조상숭배의식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 형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지옥·아귀·축생 등으로 떨어진 조상의 망혼을 추선공양을 통해 구제하는 것이 중요한 효도의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목구멍이 바늘만 해서 제대로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아귀들을 위해 음식을 보시함으로써 공덕을 축적하고, 이를 돌아가신 조상의 구제를 위해 회향(回向)한다는 순환적인 공덕의 교의구조가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의 민간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사자(死者)공양'의 구조적 특성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불교의식이 바로 '우란분(盂蘭盆)'과 '시아귀(施餓鬼)'이다.

이러한 아귀에 대한 음식 보시를 주제로 하는 축제와 의식은 중국, 한국, 일본과 대만 등의 동북아시아 문화권 국가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거행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아귀에게 음식 외의 물질을 공양하는 의례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루이비통이나 구찌백, 벤츠 등을 그린 종이그림을 태워 아귀에게 베푼다는 것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망자를 위해 주문이나, 옷, 기타 여러 물질을 보내는 것을 상정할 때 가장 자주 행해지는 방식이 바로 해당 물질을 태우는 것이다. 이러한 ‘종이 태우기’ 형식의 아귀구제의식에서는 고인이 내세에서 쓸 수 있도록 종이돈과 함께 브랜드 핸드백, 자동차, 손목시계, 노트북, 담배, 휴대전화, 비아그라 등의 정교한 종이 모형을 태울 수 있으며, 종종 받는 사람(고인)의 이름이 태그로 표시된다.

캄보디아에서의 아귀구제의식의 사례는 프춤번(조상의 날; phchum ben) 축제로 대표될 수 있다. 프춤번은 매년 음력 9-10월경에 열리며, 망자의 영혼이 이승으로 돌아와서 15일 동안 그들의 후손에게서 음식을 공양받는 기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후손들은 조상의 망혼을 공양하기 위해 최소 7개의 사원을 방문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망혼들이 7개의 사원을 찾아 헤매다가 후손들을 보지 못하면 배신감에 저주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후손들은 생전에 악업을 너무 많이 쌓아 구천을 떠도는 아귀가 된 조상들을 위해 새벽 3-4시에 절을 찾아서 절 바닥에 밥을 뿌리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후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조상이 윤회했는지, 아니면 지옥도나 아귀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모든 망령을 대상으로 프춤번에 제물을 바친다는 것이다. 이때 망령들을 위한 별도의 음식물은 성전 문 바로 바깥에 땅에 놓아둔다.

베트남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들자면 음력 달의 마지막 날 아침에 망혼들을 위해 풍성하게 음식을 차려 공양하는 관습인 부-란(Vu lan)을 제시할 수 있다. 호텔이나 주택가 골목에서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신선한 꽃과 과일, 등(燈)과 향, 술, 종이돈, 의복 더미를 함께 그 위에 차려놓는 것이다. 그 근처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당해 친척이나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의 버림받은 영혼인 꼬 혼(cô hồn)을 위해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그러한 선행으로 인한 공덕을 쌓는 것이 이 관습의 목적이다.

라오스 역시 죄업에 맞는 수준의 지옥에 떨어진 아귀들이 그들의 업장으로 인해 끊임없는 고통을 겪고 굶주림과 갈증을 겪는다고 하는 인식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라오스 역시 ‘지구를 장식하는 쌀 꾸러미'(boun khau padab din)축제의 밤에는 이 아귀들이 지옥에서 해방되어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믿고서 이 망혼들을 위해 사원의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그 보시 공덕을 전이시켜 준다고 하는 전통이 나타난다.

이제까지 서술한 내용에서 보듯이 보시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종교적 실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양쪽 모두 공덕을 창출하는 주요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의식들에서의 보시는 아귀 상태의 망령에 대한 보시와 승단의 승려에 대한 보시를 모두 포괄한다. 양쪽 모두 음식과 옷 등의 물질 외에도 사후세계에 속해 있는 아귀에게는 종이로 만든 물질을 태우는 형태로 공양하기도 한다. 이처럼 물질의 보시가 가져다주는 공덕이 아귀로 존재하는 조상의 구제뿐만 아니라, 보시 공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성불과 현세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동아시아불교의 중요한 실천적 특징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들에서 현세와 저승, 신도와 승려를 이어주는 공덕의 매개고리는 바로 ‘회향’이라는 순환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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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대한불교 진흥원)

이는 다시 말해, 대승불교와 부파불교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귀에 대해 음식을 베푸는 ‘보시의 공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간에 실천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물질의 보시로 인해 축적되는 공덕이 조상의 구제뿐만 아니라, 보시 공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도 현세와 내세의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동아시아불교의 중요한 실천적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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