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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홈 파인” 액션영화 <논스톱>과 국정원

[새벽바다의 영화읽기] 영화 <논스톱>

새벽바다 시골잡학덕후( icomn@icomn.net) 2015.01.16 14:10

<편집자 주> 참소리는 2015년을 맞이하여 '새벽바다의 영화읽기'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대한 비평을 소개하고 지역사회와 공유합니다. 연재를 해주실 새벽바다 시골잡학덕후님은 전북 지역에서 여러 시민들과 함께 영화비평모임을 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영웅본색이라는 액션 또는 느와르의 신화가 있었다. 느와르의 비장함과 춤과 같은 미려한 액션. 영화의 매혹을 알려준 영화다. 오락영화지만 현실의 비루함을 잊지 않고, 신화적 비극성을 떠올리게 한다. 오락적이지만 예술적인 영화, 예술적이지만 오락적인 영화. 이런 형용모순이 담긴 영화가 내게는 “좋은 영화”다. 액션이란 오락적 장르에서 예술적 작품을 찾으려는 습관이 생기게 된 이유인지도 모른다. 


대개 액션에서 좋은 작품을 찾을 때는 감독을 기준으로 삼으면, 오우삼, 캐서린 비글로우, 케네스 브래너, 쿠엔틴 타란티노, 류승완, 박찬욱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배우를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는 것도 좋다. 요즘의 액션배우 중에서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톰 크루즈, <트랜스 포터> 시리즈의 제이슨 스타뎀, <엽문> 시리즈와 <도화선>의 견자단, 그리고 <테이큰> 시리즈의 리암 니슨 정도가 아닐까 싶다. 특히 리암 니슨은 <테이큰>외에도, <툼스톤>, <논스톱>, <에이 특공대> 등으로 최고의 액션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1>, <배트맨 비긴즈>등 위에서 언급한 “좋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서 리암 니슨이 나오는 영화는 일단 보게 된다. 그러나 2014년 2월에 개봉해서 누적관객 200만을 넘긴 준수한 액션블록버스터 <논스톱>은 조금 의아하고 기분 나쁜 어떤 경향성을 발견하게 해주어 이 글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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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논스톱 스틸컷>


전반적으로 이 영화 역시 액션 장르 영화로서 매끈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극적 전개, 알콜중독이라는 약점을 지녔지만 인간적 매력이 돋보이는 고독한 경찰 캐릭터(영화 <다이 하드>의 존 메클레인을 떠올리게 한다.) 등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적당한 장르적 장치와 이를 변주하는 솜씨가 좋아서 시종일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 특히 요즘과 같이 국정원이 자주 뉴스에 언급되는 시기에 이 영화를 되씹는 것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유를 말하려면 줄거리부터 살펴봐야 한다. 


<논스톱>은 비행기에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일반 승객으로 위장하고 무기를 소지하며 비밀리에 탑승하는 항공 보안 요원에 관한 이야기다. 여론은 항공보안요원이 예산을 낭비하고 있기에 폐지하자는 쪽으로 몰려 있다. 거기에 알콜중독인 주인공은 술까지 마시며 임무를 수행한다. 이 때, 비행기에 테러가 발생하고, 테러범들은 주인공을 테러범으로 의심하도록 사건을 조작한다. 승객들로부터 의심 받으며 주인공은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이는 고립을 초래한다. 그러나 착한 일부의 승객들의 협조와 주인공의 기지를 통해 차츰 신뢰를 회복하며 테러범을 잡고 무사귀환 한다는 줄거리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국민의 안전 내지는 안보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내한 경찰이 알콜중독 상태에 이르러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국민을 지켜주고 있으니, 의심은 버리고 그들을 믿어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양새로 읽힐 수 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선량해 보이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참으라는 뜻으로 읽힐 여지도 충분하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어온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지성파 여배우 애슐리 쥬드가 주연한 <미씽>(2012)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자.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애슐리 쥬드는 아들을 납치한 공범을 잡았으나 그는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다. 어머니이자 전직 CIA요원인 애슐리 쥬드는 많은 번민 끝에 고문이라는 불법적 수단을 선택해 아들이 있는 곳을 알아낸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또는 안보를 위해 불법적 수단을 허용해도 좋다는 암시를 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제이미 폭스가 주연한 <킹덤>(2007)이라는 영화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난 테러로 동료를 잃은 FBI요원들이 복수하기 위해 주권이 있는 타국에서 거의 사적인 폭력을 휘두르고도 제제 받지 않는다. 테러에 대해서 외교적 수단을 써보지도 않고 안보를 책임지는 권력기관이 대통령이나 다른 상부의 지시도 없이 독자적으로 폭력적 수단을 사용한다. 이를 용인하는 나라가 과연 민주국가라 불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도 이런 경향성을 911테러를 겪고 난 후 생겨난 심리적 퇴행이라 여기며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치주의적 원리, 절차적 정당성 등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의회 과정은 본질적으로 지연(delay)과 숙고(deliberation)의 시스템이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적 기능은 행정이 아니라 입법 또는 의회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세계화 시대에 치열한 국가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속한 결정이 중요시 되는 환경이라고 해도 이 본질이 변할 리 없다. 따라서 <논스톱>의 항공보안요원, <미씽>의 전직 CIA 요원, <킹덤>의 FBI 요원의 불법적 작전수행이 안보 내지는 가족 보호와 동료를 위한 복수를 이유로 정당화 또는 미화되며 이를 신속하게 또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전개방식은 의회 민주주의 본질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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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논스톱 스틸컷>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런 작품들의 메시지는 결코 기분 좋을 리 없다. 국정원의 정치개입(법적 판단으로는 대선 개입은 아니라고 한다!)과 군 사이버 사령부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살펴보면 과연 이 나라가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법적 판단은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논외로 하고, 일반적으로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를 두둔하는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국내에 숨어있는 종북 세력의 선동에 맞서 효율적으로 심리전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하여 다소 불법의 소지가 있더라도 권력기관의 댓글공작과 여론 형성이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론 수렴과 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영역에 권력기관이 개입하고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개념이 부족하든가 양심이 없든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하고 싶을 정도다.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의 경우에서 감지할 수 있는 이런 경향성은 안보의 효율적 운영을 민주주의적 가치에 우선하고 있다. 이는 하버마스의 오래된 지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생활세계의 식민지화가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합목적적 합리성 즉 효율성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경제와 같은 영역이 다른 합리성 즉,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민주주의를 침탈, 식민화 했다는 뜻이다. 전자의 합리성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목적-도구적 구도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이를 벗어나 외적 강압 없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가운데 타당성을 찾고자 한다. 


<논스톱>이 “좋은 영화”가 되기에 부족한 점은 매끄럽게 연출된 액션에 비해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너무 적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이고 이를 선전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좋은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도식화된 행위 즉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을 강요하는 영화는 영화의 본질에서 벗어난 영화다. 이전 영화와의 차이 또는 이전 생각과의 차이를 통해서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반응을 끌어내는 영화가 “매끄러운 표면”을 지닌 새로운 영화이자 영화다운 영화라는 뜻이다. (여기서 “매끄러운”이라는 말의 의미는 구슬을 올려놓으면 어디로 굴러갈지 알 수 없는 평평한 표면을 말하며, 이는 “홈 파인” 표면과 반대다.) 확신에 가득 차 거침없이 테러진압에 매진하는 리암 니슨의 모습에서 효율성을 핑계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권력기관의 모습을 찾아내기 쉽다는 점은 <논스톱>을 “홈 파인” 장르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범작이라 평가하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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