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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국의 평화주의자, 수학자, 철학자, 저술가였던 럿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분석철학으로 알려진 20세기 초 논리적 실증주의의 핵심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는 98년이라는 긴 생애를 살면서 거의 모든 문제들에 예리한 비판적 발언과 주장을 했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하여 실천적 생애를 살아간 지성인이었다.

럿셀은 영국의 손 꼽히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두 번이나 수상을 지낸 존 럿셀 백작이었으며, 외가 쪽으로는 윈스턴 처칠과 인척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자 럿셀은 할아버지 집에 맡겨졌다. 그러다가 여섯 살 때는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그는 할머니와 둘이서 지내게 되었다.

18세 때 켐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럿셀은 수학을 전공하는 한편으로 칸트와 헤겔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독일의 관념론을 따르던 그는 1898년경부터 무어와 더불어 실재론을 세우고 다원론적 입장을 주장했다. 그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수리철학, 기초 논리학 등을 연구했다. 1900년에 럿셀은 파리에서 열린 굴제 철학자대회에 참가했다가 수학자이며 논리학자인 페아노를 만났다. 그와 프레게를 비롯한 수학의 여러 석학과 대화! 를 가진 것을 계기로 해서 럿셀은 수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1910-1913년에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그의 주저인 『수학원리』를 쓰게 된다. 이 책에서 그들은 산수의 모든 것은 논리학의 기본 원리들을 연장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럿셀이 일생을 통하여 철학역사에 기여한 것은 기호 논리학을 철학적 분석도구로 사용하는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럿셀은 전쟁을 인류의 재앙으로 여기면서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4년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다시 켐브리지에서 강의를 맡았고, 1950년에는 영국의 메리트 훈장과 노벨상을 받았다.

어록

“마음이 편협한 사람이나 정신적 암흑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거짓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적인 명료함과 높은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즐거움에 가득찬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힘은 실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은 거짓이 아닌 그 밖의 다른 무엇인 것이다.”

“우리는 관찰과 경험에 의해서 무엇을 배우는가? 물리학에 관해서 말한다면 감각의 직접적인 자료 즉, 일정한 공간이나 시간적 관계를 수반하는 색깔, 소리, 맛, 냄새 등의 일정한 작은 구분 없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과학은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무죄인 반면, 철학은 무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유죄”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만들어내서는 안된다.”

“가급적이면 미지의 것들로 추론하기보다는 알고 있는 것들로 논지를 구성하라.”

“하나의 문장은 그 세계에 대응한다.”

사상

철학자로서 럿셀은 논리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그는 관념론 철학의 대가인 칸트와 헤겔의 철학을 ‘쓸데 없는 쓰레기’들로 간주하면서, 자신은 과학적이고 분석적 방법으로 철학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적 저술은 두 가지 원칙아래서 이루어졌다. 첫째, 철학적 문제를 다룰 때 정신활동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최근의 과학적 결과를 참고한다. 둘째, 필요 이상의 것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과학에 의해서 알려진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임으로서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과학보다 한 발 먼저 과학적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럿셀은 인간은 거대한 우주 기계의 지배 안에 갇혀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법칙은 필연적이다. 이 법칙의 맷돌은 구멍으로 무엇을 넣든지 전연 상관없이 갈아댄다. 인간은 잠시 활동하면서, 자기가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우쭐대는 시간은 짧다. 짧은 인생이 지난 뒤 그는 만물의 일람표에서 탈락되고, 우주는 그런 사실에 전혀 무관심하게 계속 운행한다. 우주 기계의 영원 속에서 자기 가치를 가지는 한 개인은 아무 것도 아니다.

럿셀은 인류란 한 밤중에 광막한 바다에서 파선을 당하여 뗏목을 타고 있는 한 무리와 같다고 말했다. 주위는 온통 암흑 뿐이다.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뗏목에서 바닷물 속으로 떨어져 사라진다. 마지막 사람이 떨어졌을 때 그 바다는 계속 출렁일 뿐이다. 자연은 인간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럿셀은 언어철학에 의하여 인간의 모든 언어는 아니지만 중요한 많은 언어들에 대해서 논리적 연산을 해낼 수 있는 장치를 얻게 되었다. 많은 문장들의 구체적 논리구조가 논리 기초의 체계로 번역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향과 비판

럿셀은 20세기 철학에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수리철학과 논리철학에,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 정치학에 대한 많은 관심들을 가지고 사회정치적 문제에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1970년 죽을 때까지 핵무기 반대운동과 여러 가지 평화운동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렛셀에 의해서 시작된 언어의 철학은 전통적 많은 문제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시간을 가능하게 했다. 럿셀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은 자신의 철학을 논박하는 방식으로 철학적 경력을 쌓은 것이다. 럿셀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비외연적 인간의 경험이나 의지, 그리고 인생이나 세계의 의미나 방향에 대하여 철학적 반성을 할 수 있는 방법론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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