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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던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은 도시국가 아테네가 커다란 격동과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머니의 재혼으로 계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삼촌이 소크라테스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21세부터 8년 동안 소크라테스 밑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우리들이 만나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다”라고 표현했다.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플라톤은 서른 살이었다. 그는 소크라테스 추종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집트 여행을 했고, 다시 시실리로 갔는 데, 거기서 피타고라스 학파와 토론을 했다. 여기서 플라톤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385년 경 아테네로 돌아와서 연구와 교육을 위한 자신의 학교인 아카데미아를 지었다. 60대에 그는 시라큐스로 돌아와 그곳의 젊은 통치자 디오니시우스 2세의 교육을 맡아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 초청에는 여러 가지 음도들이 있는 것을 알았고,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국가』를 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천부적으로 재주가 많았고, 상당히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와 연극 뿐만 아니라 산문에도 전문가였으며, 자신이 원했다면 아테네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들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의 전기를 쓴 사람들의 설명이나 주장도 다른 경우가 많다.


어 록

“인간은 동굴 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어 실제 세계를 전혀 볼 수 없는 존재로 비유된다. 인간은 빛의 근원이 동굴 벽에 그리는 대상들의 인위적 그림자를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육체와 영혼은 서로 날카롭게 경계지어져 있으며, 영혼에게 육체에 대한 지배력이 부여된다.”

“신적인 것, 불멸의 것, 이성적인 것, 창조적인 것, 소멸되지 않는 것에......가장 유사한 것이 영혼이다.”

“이성은 마부에, 기개는 온순한 말에, 욕망은 완강한 말에 상응한다.”

“인간 영혼의 이성적 과제는 현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의 덕은 지혜이다. 기개의 과제는 활력있게 이성을 따르는 것이다. 그것의 덕은 용기이다. 욕망 역시 이성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그것의 덕은 절제이다.”

“감성적 세계는 참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의견만 가능하게 할 뿐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특정한 활동에만 재능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만 한다.”

“덕과 부의 서로에 대한 관계는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이 내려가는 천칭과 같다.”

“노인이란 실제 젊은 사람들이 즐겨하는 연애나 식욕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이 아니고 오히려 정욕에서 벗어난 자유와 행복이다.”

“왕이라고 불려지는 최고권력자가 진실로 충분히 철학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즉 정치적 권력과 철학적 정신이 하나가 되지 않는 한, 국가와 인류에게 불행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 상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인간을 우주 중심으로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플라톤은 인정했지만 완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를 결정하는 데 초기 그리스인들과 소피스트들이 내세운 두 가지 기준을 다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플라톤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심리학, 수학, 교육, 신학, 예술 등에 걸친 다방면의 넓은 주제들을 가지고 문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수준 높은 글들을 썼다.

플라톤은 인간에게 보편적 원리, 의견, 개념과 같은 것들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관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관념들은 실재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만 만물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플라톤이 생각하는 진실한 세계는 불변하고 순수하며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이다. 인간은 이러한 이데아를 깊이 생각하고 더 나아가 인식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즉 인간은 보편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인간은 우주의 창조물이라고 확신했다. 예를 들면,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이데아가 질료에 각인되었을 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만이 이러한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고, 자연의 사물들이 존재하게 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플라톤은 우주 안에서 인간만이 독자적 지위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창조가 어느 정도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인간은 동물과 같지 않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은 육체 안에 들어와 있으며, 우주 속에서 영원히 실재하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신적 이성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러한 이성적 부분이 육체 안으로 들어올 때, 물질인 육체에 의하여 방해당하고 제한당하고 흐릿해진다. 이성의 임무는 이러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며, 육체를 초월하는 일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인간 철학자는 육체를 초월하며 실재하는 것, 즉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는 정신적 영역에서 거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육체는 정신의 감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소크라테스를 추종하였고, 나중에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을 알려주는 『대화록』을 저술했다.


영향과 비판

플라톤의 영향은 아리스토텔레스, 신플라톤주의, 아우구스티누스,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등 15세기를 거쳐 17세기 영국 게임브리지 학파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심리학, 윤리학, 미학에서 연구는 문학과 교육학에서 연구가 줄어드는 대신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플라톤의 관점과 다른 입장에서도 그의 철학이 수용되어 응용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주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플라톤의 인간 사회에 대한 가르침은 노예노동에 기반한 귀족적 국가를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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