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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간첩인가? 민주화운동 관련자인가?

편집팀( 1) 2004.07.06 15:50

지난 7월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이하 의문사위)가 손윤규씨 등 감옥에서 숨진 3명의 비전향 장기수에 내린 '의문사 인정' 결정에 대해 논란이 거세다. 또한 6일 의문사위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다고 인정한 사건에 대해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보상위)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간첩을 민주화운동으로 변조했다고 비판하는 조중동

조선일보는 3일자 '간첩도 '민주투사'라니 한국은 어디로 가나'란 제하의 사설을 통해 "이 나라를 북한 세습 독재체제로 통일시키려고 공작했던 공작원들을 떠받드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가치와 이념 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동아일보도 이날 '간첩도 민주인사라는 의문사위'란 제하의 사설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와 정체성에 심각한 혼선을 초래했다"며 주장 하였고, 한나라당은 이참에 의문사위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보수집단과 언론은 무엇보다도 간첩이라는 단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레드 콤플렉스 이미지를 다시 한번 주입시키고 싶은가보다. 그러나 간첩임을 부각시켜 민주화운동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태도에 대해 신물이 난다.

민주화운동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을 지나오며 헌법의 기본정신에서 한번도 삭제된 적이 없었다. 단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제한당하거나, 독재정권의 장식물로 전락했었을 뿐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국민의 기본가치로 승화시킨 것이 민주화운동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행방불명되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고,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바쳤으며, 다치거나 범법자가 되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법에 근거하여 출발한 의문사위원회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제정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명예회복법)이 만들어졌다. 명예회복법은 한계가 있었지만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기 위한 출발점 이었다.

각종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현행법은 범법자로 만들었고,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의 독소적 요소들이 엄존한 가운데 제정된 명예회복법은 소위 악법의 폐지 내지는 개정의 장애요소를 넘어선 것으로, 민주 사회 발전의 국민적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며, 사회적 통념과 가치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명예회복법에 근거하여 의문사위가 출발하였고, 수많은 의문사에 대해 국가기관(국정원, 기무사, 경찰, 검찰 등)의 철저한 비협조속에서도 나름대로 활동하였다.

의문사위가 2002년 9월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로 인정해 이송한 변형만, 김용성 씨에 대해 민주화보상위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기각결정(기각:7, 인정:2)을 내렸지만, 당시 이들은 실정법 위반으로 징역 15년의 형기를 종료하고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으나, 출소를 하루 앞두고 사회안전법에 의해 보안감호처분을 받고 재수감 된 상태였다.

15년 형기만료후 다시 사회안전법으로 재수감된 사람들

이들은 이제 간첩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수 있었으나 권위주의 정권은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권위주의적 독재권력은 특정범죄의 예방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회안전법 폐지와 보안감호제의 철폐, 보안감호수용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주장하며 단식농성 등으로 항거했던 이들에게 반인권적인 행위인 강제 급식으로 인해 생명을 빼았었다.

때문에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독재권력의 보안감호처분의 부당성이 세상에 알려졌고, 사회안전법은 1989년에 폐지, 보안관찰법은 대체 입법되는 등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 한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고 사망한 경우를 그가 간첩이었기에 그것도 이미 실정법으로 그 행위에 대해 15년의 형기를 종료했음에도 민주화운동으로 보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까?

대통령 직속기관은 민주화운동 인정, 국무총리 직속기관은 보상 기각

의문사위가 지난 2002년 10월 25일 이 사건을 민주화보상위로 이송했는데도, 최근 보수언론과 단체가 이 문제를 부각시키자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보상위가 6일 기각 발표한 것네 대해 정말로 대한민국이 상식 있는 국가인가?

또한 3명의 비전향 장기수 죽음이 부당한 '사상전향공작'과 '강제급식' 등 공권력의 폭력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의문사위가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결정을 한 것인가?

폭행과 강제음식투입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인권과 투쟁

의문사위의 발표에 따르면 “최씨는 사망기록에 '심장마비'로 기록돼 있으나 조사결과 전향공작을 위해 경찰이 투입한 폭력범 재소자 2명에 의해 폭행을 당해 숨진 것으로 드러났고, 박씨 역시 교도관, 전향공작 전담반 등에 고문당하다 '전향을 강요 말라'는 내용의 혈서를 수감됐던 방 벽에 남기고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그어 자살했다”고 한다.

또한 손씨도 강제전향방식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벌이다 폭행과 함께 고무호스를 통한 강제 음식물 투입 하는 와중에 숨졌다”고 밝혔다. 의문사위가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결국 손씨 등이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항거해 이를 거부하는 단식투쟁을 벌였던 행위는 의문사법이 규정하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판단 한다"고 지적한 것은 지극히 정당하고 상식적인 판단이 아닌가?

또한 이들이 간첩 또는 빨치산이라고 하더라도 '적극적 사회주의·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을 뿐더러 '전향공작 거부' 등 반민주적인 공권력에 대해 항거하다 죽음을 맞은 만큼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정치권은 정말로 역사인식을 제대로 하라

국민들은 과거 수십 년 간의 권위주의적 독재통치로 인해 비정상적인 세상을 경험한 역사를 갖고 있다. 또한 비정상적인 역사의 현장에 한나라당,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전신인 민자당, 전신인 민정당, 전신인 공화당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을 비롯한 악법을 통한 무력 통치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상전향 강요와 고문 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바로 한나라당의 뿌리였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보수정치권 및 언론은 아직도 옛날이 그리운지 틈만 나면 간첩, 빨갱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사람이라며, 또한 사회 곳곳에 빨갱이 세력이 있다며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진정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사람들인가?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탄압한 정권과 이를 비호한 언론인가? 아니면 정권에 맞서 목숨을 던져 싸운 사람들인가?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나는 현재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갈지자(之)행보도 역사인식이 결여된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 폐지에 주저하는가? 또한 반역사적 인식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의문사위 해체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 하는가?

열우당은 오히려 의문사위의 권한을 강화하여 제대로 조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 여당의 자세가 아닌가? 열우당이 인식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단 하나의 사상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가 증오하는 사상마저 관용하는 사회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 사회 일게다. 나는 정말로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다.



-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준형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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