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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김선일 씨의 죽음과 미국

김승환( 1) 2004.06.23 21:39 추천:2

전쟁은 국가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법적 의미에서 전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위전쟁과 침략전쟁이 그것이다. 자위전쟁(self-defensive war)이란 자국에 대한 침략을 방어하거나 침략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위한 전쟁을 말하는데, 이는 각 국가의 주권에 고유한 것이다. 주권에는 전쟁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때의 전쟁이란 바로 자위전쟁을 말한다. 자위전쟁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없는 모든 전쟁을 가리켜 침략전쟁(aggressive war)이라고 한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바로 국제평화와 침략전쟁은 상호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60조 제2항이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에 관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국회의 이 동의권은 ‘침략전쟁을 위한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헌법적 한계를 갖는다.

대 이라크 전쟁의 국제법적 성격은 명백히 침략전쟁

문제는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의 법적 성격이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하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헌장을 비롯한 유엔의 범 규범을 준수할 의무를 지닌다. 유엔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하는 전쟁을 위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동의를 구했다. 전쟁의 명분은 이라크 내에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라크에 실제로 대량살상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라크가 다른 국가로부터 전쟁을 당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찌됐건 미국은 그걸 전쟁의 명문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동의를 해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난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존재를 무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 등 소위 ‘동맹국’과 함께 이라크를 침공했다. 대 이라크 전쟁의 국제법적 성격은 여기에서 명백해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침략전쟁이었다.

이라크 테러단체, 한국군을 미국과 동일한 점령군으로 간주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침략전쟁이라는 것은 이라크의 실제상황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라크 내에는 어떤 종류의 대량살상무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은 막무가내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라크의 주권을 접수하고, 과도정부를 세워 버렸다. 이라크 민간인들을 상대로 하는 살상행위, 포로들에 대한 성추행과 성폭행 등 미군에 의한 범죄행위들이 잇따랐다. 그러다 발생한 것이 미국인 ‘버그’에 대한 이라크 테러단체의 참수였다. 이라크 테러단체들은 수 차례 경고를 했다. 어느 나라가 되었건, 미국이 벌이는 더러운 전쟁에 가담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러는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 이라크 파병동의안을 제출했고, 국회는 여야가 힘을 합해 동의를 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파견된 것이 서희, 제마부대이다. 파병의 명분은 이라크의 평화유지와 재건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테러단체들이 바라보는 한국군의 성격은 달랐다. 그들은 이라크에 파병되었거나 파병될 한국군을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미국과 동일한 점령군으로 간주했다.

미국, 김씨의 목숨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만 골몰

그러다 터진 것이 고 김선일 납치․살해사건이었다. 김선일 씨를 살해한 테러단체의 명분이 어떤 것이든 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김선일 씨의 비극적인 죽음을 가져왔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선일 씨 죽음의 원인행위는 누가 제공했는가 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 본원적 책임은 역시 미국에 있다. 이라크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저질러 놓고, 적어도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주권독립국가, 주권평등국가의 위상을 지켜 낼 힘도 의지도 없는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한국군을 죽음의 침략전쟁 터로 몰아넣은 미국의 만행이 김선일 씨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력을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무슨 신문을 읽고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김선일 씨의 납치사실을 미군이나 미국의 정보기관은 납치사건 초기에 알고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중요정보를 한국정부에 즉시 알려 주지 않은 채, 뭉개고 있었다. 김선일 씨의 죽음이 임박한 시간이 되어서야 한국정부는 그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이 부분에 관해서도 ‘AP통신’의 주장에 따른다면 해명해야 할 여지가 남아 있다. 어찌 되었건 미국은 김선일 씨의 납치사건에 관해서 김선일 씨의 목숨이나 한국정부는 안중에도 없었고, 김선일 씨의 목숨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테러단체가 이라크에서 한국군을 철수하고 추가 파병계획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김선일 씨를 참수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통령 노무현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추가파병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확언했다. 미국으로서는 너무나도 충성스럽고 깜찍한 장면을 한국의 대통령이 연출해 준 것이다. 미국정부의 의사와 한국의 대통령의 의사의 정확한 일치 앞에 미 국무장관 파월은 '기쁘다'라고 감탄했다. 그리고서 김선일 씨는 하늘나라를 향해 짧고도 슬픈 인생의 막을 거두었다. 김선일 씨는 약소국의 아들로 태어나 푸르고 푸른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국제 깡패 미국의 제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의 침략전쟁의 끝에 우리의 비극의 끝도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치러야 할 비극을 김선일 씨가 대신 치렀다고 본다면 지나칠까? 그러나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고, 그걸 이겨내지 못하는 한국정부와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이라크 테러단체의 보복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한국인의 비극은 미국의 침략전쟁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침략전쟁의 끝에 우리의 비극의 끝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우리 힘으로 침략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대통령과 국회와 정당들이 언제까지나 미국의 하수인 역할만을 할 것인가? 그들의 배후에는 국민이 있는데, 분출하는 국민의 힘을 빌려 우리의 생명과 자존심을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일까?


-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전북대 법과대학 김승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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