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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베이컨의 경험론을 계승한 홉즈(Thomas Hobbes, 1588-1679)는 영국 정치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일 것이다. 홉즈는 태풍과 같은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영국을 위험 속에서 구하려고 한 마키아벨리를 떠 올리게 하는 논법을 구사했다. 그는 갈릴레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홉즈는 키가 컸고 반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온화한 삶을 살았다. 사회적으로 그는 친절하고 다정하였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가끔 자신의 주장을 하면서 흥분을 하여 자신의 평상심을 잃기도 했다. 실천적 문제들에는 의심을 품었지만, 지적으로는 매우 대담했다. 그리고 홉즈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면서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괴짜였다고 한다. 그는 수학실험을 해본 결과, 원의 면적과 구체의 부피를 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홉즈는 잠자기 전 침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폐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홉즈의 기계론적 관점이 잘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홉즈의 어록

“모든 변화는 물체의 운동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무엇보다도 최악인 것은 지속적 공포와 폭력적 죽음의 위험성이다. 고독하고 가난하고 못생기고 우둔하고 왜소한 사람들의 삶이다”

“자연권은......각 사람이 자기 고유한 본성, 곧 자기 고유한 삶의 유지를 위하여 자기가 바라는 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그래서 결국 자기 고유한 판단력과 이성에 비추어 그러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것이든 행할 자유를 말한다”

“평화를 이룩할 희망이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평화를 이룩할 수 없을 때는 전쟁이 주는 모든 도움과 이점을 추구하고 이용할 수 있다”

“권력이 뚜렷하게 나타나면 곧 선이다. 왜냐하면 힘은 우리에게 생명의 안전을 위한 수단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오로지 물질만이 실재적인 것이다”

“모든 유기체는 그의 생명 활동을 보존하려고, 즉 죽음을 피하려고 애쓴다”

“각자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한다”

“사람들이 결합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연의 성향에 따르는 그들 자신의 이익이다”

“사람들이 함께 하여 국가를 이루기 전에 인간의 자연적 상태는 전쟁이었고, 그것도......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었다”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며, 더럽고 야만적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 짧다”


사상

홉즈의 세계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주장은 그의 정치철학에 잘 나타나 있다. 홉즈에 따르면 세계는 기계적 운동에 의해서 지배되는 물체들의 총합이다. 또한 그는 인간과 동물의 심적인 삶을 운동과 노력으로 환원시켰다. 이것들은 외부의 영향들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되는 복잡한 기계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의 양적 다양성의 객관성을 부정했고, 사물들 사이의 기계적 차이에 기반한 인간의 지각의 특성을 믿었다.

인간의 신체가 동물기계나 자동기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도 또한 일종의 기계라고 홉즈는 보았다. 인간의 생리현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도 물질적인 자극에 반응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외적 사물인 대상의 운동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중추신경계통으로 전달되고 그것이 감각, 지각으로 인간에게 현상한다. 또한 이렇게 전달된 운동은 인간의 생명운동, 그 출발로서의 노력에도 작용하지만 노력이 운동원인을 향해서 생명운동으로서 고양된 것이 욕구, 다시 말해서 사랑이며 선이다. 반대로 노력이 운동원인에서 멀어져 생명운동이 떨어질 때 그것은 혐오, 다시 말하면 미움이고 악이다. 쾌란 선의 감정이고 불쾌란 악의 감정이다.

홉즈에 따르면 사회나 국가도 인공적 신체에 지나지 않으며, 한 개의 신체로서 자연과 연속적으로 다루어진다. 그 최소단위는 인간이므로 국가는 개인의 집합체라고 하여 개인적 인간의 원리로부터 그 나름의 독특한 정치철학을 세웠다. 그는 인간이 자연상태(만인에 대한 만의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성의 판단에 따라 상호계약을 맺고 평화와 자기방어를 위한 국가(공동의 복지)를 세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시키지 않기 위하여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자신을 맡겼다고 [리바이어던]에서 그는 주장했다. 그는 사회의 신성한 기원을 거부했고, 사회계약론을 옹호했다. 그는 국가의 가장 좋은 형태로 절대군주제를 고려했지만, 그의 수많은 설명들과 권리는 혁명적 원리들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즉 그는 인간이 생존을 위협당할 때는 혁명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홉즈가 주장한 국가의 힘은 영국에 있는 시민혁명이 수행한 17세기 중반에 있었던 계급들의 이익과 조화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신비한 모습을 제거하고, 국가를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결국 홉즈는 인간이 싸움을 멈추고 유일한 지배자인 절대 군주에게 통치권을 양도하기를 원했다.

영향과 비판

홉즈의 개인주의는 공리주의의 원천이 되었고, 이후 2세기 동안 개인의 행복이 정치의 중심적 주제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은 밴덤의 시대까지 묻혀 있었고 일반적으로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20세기 언어의 의미이론가들은 홉즈의 유명론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홉즈의 정치철학이 전체주의적 국가에 끼친 영향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맑스는 홉스의 철학이 감각들에 기반한 인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일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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