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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철학나들이]변화, 네번째 여행

정종환( 1) 2004.05.29 12:13 추천:7

“그와는 달리 어려움은 그 자료-지나간 시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의 고찰과 정리, 그리고 그에 대한 현실적 서술에 착수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렇다. 인간은 그들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즉, 오직 인간만이 그들을 규정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리고 이미 현존하는 현실적 관계의 토대 위에서 그렇게 한다”
“무지는 악마이다. 우리는 그것이 아직도 많은 비극의 원인이 될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비록 겁쟁이일지라도 용기를 살 수 있는 자는 용감하다”
“인간이 인간다우며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인간적 관계이다라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사랑을 오직 사랑과 교환하고 신뢰를 오직 신뢰와 교환할 수 있다. 또한 당신의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교양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면, 당신은 현실적으로 타인에게 자극과 격려로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일 당신의 사랑이 사랑다운 것인데도 상대방의 사랑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당신의 삶을 표출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며 하나의 불행인 셈이다”
“노동은 우선 인간과 자연이 참여하는 한 과정이다”
“공산주의사회에서는 화가란 있지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여타 행위들 가운데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어록)



맑스의 생애

▲맑스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엥겔스
칼 맑스(Karl Marx, 1818-1883)는 1818년에 독일의 라인란트에 있는 트리에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의 아버지는 프러시아의 반유태인법과 관련하여 활동한 법률가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숙했던 학창시절 맑스는 본과 베를린에서 법을 공부했다. 그리고 나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를 비교를 철학박사 학위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1841년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맑스는 대학에서 직업을 가지기를 희망했지만, 그러나 그는 이미 너무 급진적인 사상가 집단과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미 그러한 희망이 실패할 것이라는 것이 이미 예상되어 있었다. 저널리스트가 된 뒤, 맑스는 매우 빠르게 정치적-사회적 주제들을 자신의 주장에 포함시키기 시작했고, 곧이어 공산주의 이론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맑스는 일생동안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한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극심한 가난과 질병, 불행 속에서 인류에 대한 애정과 사회변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맑스의 사상

맑스는 철학자로서보다 20세기에 세워진 수많은 공산당 정부에 이론적 토대와 영감을 준 저서들을 쓴 혁명적 공산주의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준 그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경제학자나 정치학에서 한 사람의 철학자로 맑스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질서들이고 이것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으로 맑스는 생각했다. 맑스는 변증법을 이야기 하면서 물질적 질서는 진정한 실체나 현실의 토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또한 모든 것들은 변증법적 과정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고정된 관점들은 없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맑스는 현실과 무관한 절대적 진리나 실체의 안정적인 영원한 구조들이 어디엔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고 할 수 있다. 맑스가 변화하는 물질을 강조한 것은 우리가 물질을 볼 때 모든 것이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를 어떤 조건없이 존재하는 자연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더구나 엥겔스는 가장 작은 사물들로부터 큰 사물들 까지, 모래의 먼지부터 태양까지, 그리고 인간까지 변화의 운동의 끝없는 상황 속에서 존재한다고 이해했다. 역사는 역사적 운동의 냉혹하고 엄격한 법칙들과 함께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맑스 철학에서 변화는 단지 성장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하나의 사회는 하나의 소년이 성인이 되는 것처럼 단순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이 단순히 하나의 영원한 형태와 지속적 반복의 순환을 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아니다. 변화는 하나의 현실적이며 실제적 역사를 통과하는 것이다. 변화는 새로운 구조들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순한 양적 변화의 원인들은 새로운 질적 변화로 나아간다. 예를 들면, 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증가하게 되면, 그것은 좀 더 따뜻해지고, 결국 물의 온도 변화는 물을 액체에서 수증기 기체로 변화하게 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라한 과정이 역전되면 점차적으로 물의 온도가 내려가서 물이라는 액체를 고체인 얼음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커다란 유리 음악기계는 창유리의 떨림으로 만들어 진다. 일정한 양의 힘을 증대시키면 떨림의 영역은 그것의 증가에 따른다. 그러나 결국, 더 나아가 힘을 가하면 더 이상 떨림이 양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의 질적 변화인 유리잔의 조각으로 대체된다.

맑스는 생각했다. 역사는 경제적 질서 속에 있는 일정한 양적 요소들에 의해서 변화의 종류를 나열하고, 결국 그 힘은 사회 속에 있는 질적 변화의 힘이다. 이것은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 움직인 역사는 봉건주의사회를 거쳐서 자본주의사회에 이른다. 참으로 맑스의 예상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질서는 몰락하는 것이고 이러한 개념은 자본주의사회 속에 있는 양적인 요소들의 변화들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사회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물이 열이 증가하므로서 수증기가 되는 가를 보여주는 묘사를 맑스는 『자본론』에서 썼다. 자본주의사회의 변화는 퇴폐와 착취, 노예화와 빈곤의 대중을 증대시키는 과정에 조응해서 일어나지만,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역할도 확실하게 공고해진다. 이 때 생산수단의 집중화와 노동의 사회화는 더 이상 자본주의사회의 껍데기(형식, 외피, 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사회는 산산조각으로 폭발한다. 이러한 또 다른 사회적 수준을 맑스는 하나의 새로운 축적 상태로의 도약이라고 불렀다. 궁극적으로 양은 질로 전환된다.


영향과 비판

맑스의 철학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직업적 혁명가들에 의해서 발전과 왜곡을 거치게 되었다. 특히, 현실사회주의 체제에서 실험된 맑스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스탈린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맑스 철학에서 잠재되어 있던 초기 휴머니즘과 후기 정치경제학 사이의 모순이 해결되기 보다는 심화된 세기가 20세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21세기는 이러한 그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매우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원광대 철학과 강사, 전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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