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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민주당은 왜 몰락했는가?

이정덕( 1) 2004.05.18 11:43 추천:4

열린우리당이나 민노당이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어떻게 사망상태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스스로 당의 지지자를 계속 떨어내는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4달만에 사망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한 때 지지하고 당원으로 가입했던 민주당을 보고 있으니 안쓰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또한 지지자들의 성향과 반대로 수구로 변신하다가 몰락하여 시원하다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지지자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정당을 운영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몰락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한화갑대표는 자신이 대표가 되었더라면 지역주의적 지지를 받아 어느 정도 당세를 유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동영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장이 되어 전라북도를 휩쓸었고 박근혜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 경북을 휩쓸었던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왜 김종필총재는 예로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지역사람이 총재이지만 자민련이 몰락한 사실은 애써 눈을 감고 있다.

한화갑대표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을 찍는 사람들이 무조건 지역주의에 의존해 표를 찍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데 민주당 사람들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지역주의를 제대로 못하고 있어 전라도 표심을 잘못 판단한 경우가 있었다.

지역주의에 대한 몰이해, 개혁적 지역주의를 맹목적 지역주의로 착각

송호근 서울대교수는 열린우리당 130~140석, 한나라당 103~108석, 민주당 33~38석, 민노당 10석, 자민련 (통합21, 무소속 포함) 10석을 얻을 것으로 지난 4월 7일자 중앙일보에 썼다. 황태연 민주당 전략연구소장겸 동국대 교수도 민주당이 40석 가까이 얻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이들의 오판은 호남의 지역주의적 성격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호남에 맹목적 지역주의가 강고하여 호남표가 결국 민주당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호남이 지닌 개혁적 지역주의를 맹목적 지역주의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의석수가 일방적으로 열린우리당에 쏠렸으니 지역주의라고 치자. 더구나 한국 주요 정당인 한나라당의 표가 2-3%에 불과하니 전라도 보수주의자들도 한나라당에는 찍지 않은 셈이다. 호남 보수주의자들도 한나라당을 찍지 않는 것은 일정 부분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호남이 지역주의인가 아닌가의 문제보다는 지역주의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호남 지역주의에서 크게 두가지 측면이 중요하다. 첫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남차별과 이어진 영남정권의 호남차별에 의해 생긴 방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영남 정권은 재벌육성, 인사, 인프라 모든 면에서 호남을 차별하였다. 또한 이들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활용하면서 호남을 차별하였다. 이에 대한 방어기제로 호남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로 호남의 지역주의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것이다. 계속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김대중을 지지했다. 물론 빨갱이라는 딱지에 둔감할 정도로 개혁적이었다. 그것은 김대중의 상대적 개혁성의 교육적 효과도 있지만, 그 동안 독재자의 지역차별에 항거해오면서 성장해온 자발적인 개혁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로 호남에서 보수나 수구가 헤게모니를 크게 상실하였다.


민주당의 착각, 호남성향에 반하는 반개혁과 한나라당과의 공조

앞에서 언급한 송호근 서울대교수나 황태연 동국대교수가 믿었던 호남의 강고한 맹목적 지역주의, 특히 민주당으로 향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지역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믿음이 곧 민주당의 실수였다. 특히 황태연 교수는 민주당 조순형대표의 전략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번 탄핵정국에서 탄핵을 주도하는 데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지역주의에 정통한 황태연교수가 너무 지역주의에 얽매여서, 호남지역주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분당했을 때만 해도,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과 반감이 높았다. 힘을 합쳐도 모자라는데 왜 분열하여 전라도를 차별해온 독재수구정당의 후예인 한나라당에게 일당을 내주냐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강준만교수도 이 대열에 참여하여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노무현후보를 민주당 내에서 흔드는 것에 대해 반감이 상당히 퍼져 있었다. 노무현후보를 흔들고 정몽준후보를 지지한 박상천, 정균환 의원 등의 행동에 대한 반감이었다. 특히, 젊은층과 지식인들 사이에 이들에 대한 반감이 넓게 퍼져 있었다.

분당 이후 민주당에서 보수파가 득세하면서 김대중의 상대적 개혁성을 상실하였고 이에 따라 민주당 스스로 호남표를 버리는 길로 들어섰다. 방패국회, 대선자금 청문회, 특검 등 모두 호남민심에 반하는 방향으로 갔다. 호남의 일반인들도 점차 민주당에 대한 희망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지율이 떨어지자, 김홍일 의원의 탈당과 복당 파문에서 보듯 개혁보다는 김대중의 기억과 흔적에 너무 집착했다. 개혁적이라 평가되던 추미애 의원조차도 “김의원은 탈당 후 민주당 지지도가 내려가는 것을 보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자꾸 김대중의 기억과 흔적을 붙잡을 생각만 했지 김대중 정신인 상대적 개혁성은 살릴 노력은 보여주지 않았다. 호남사람들이 김대중의 상대적 개혁성 때문에 김대중을 지지한 점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이때 반민주당 분위기는 장년과 노년층에 확산되고 있는 과정에 있었다. 그렇다고 영남표나 다른 표를 얻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호남표를 포기하는 일은 자살과 마찬가지 행동이었지만 민주당은 이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따라서 탄핵정국이 아니었더라도 민주당이 호남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 동안 호남사람들이 민주당이나 김대중의 정당을 지지한 이유는 김대중 산하에 보수적인 사람들이 들어간 경우에도 김대중에 의해 상대적 개혁세력으로 색깔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중 우산이 사라지고 우리당 세력이 떠나자 보수파가 주도하는 민주당은 김대중의 색깔과 달랐던 것이다. 상대적 개혁성은 보여주지 못하고 퇴행적인 지역주의와 반개혁적인 복수심만 보여준 것이다.

민주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독자적인 개혁공간을 확보해서, 노무현정권과 열린우리당의 비개혁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한나라당의 수구적인 것도 격파하고, 자신들의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는, 개혁의 주도권을 잡는 길밖에 없었다. 그렇지 못한 민주당이 호남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김대중이 은퇴하자 민주당 주류들은 보수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김대중 개혁성을 이어갈 정신도 능력도 부족하였다. 주류에 의해 대표로 추대된 조순형대표는 단기적인 반개혁적 처방만 남발하면서 계속 호남의 표를 까먹었다. 이런 과정에서 평상심을 잃고 탄핵이라는 초대형 악수를 둔 것이다. 당론이라며 개혁적인 국회의원들까지 압박하며 탄핵으로 몰고 갔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처럼 반개혁적인 수구적인 정당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호남의 지역주의가 김대중에 대한 맹목적 지지이어서 민주당에게도 지지를 표할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은 호남의 민심을 잡기 위해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민주당이 호남성향에 반하는 반개혁과 한나라당과의 공조에 매달리면서 지역차별을 타파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스스로 노출시켜 버린 것이다.


민주당의 미래, 새로 부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계속된 보수화로 김대중 정신을 상실하고 사망상태에 들어갔다. 전남 농촌 일부에 잔존하는 김대중의 기억에 의존하여 일부 호남의석을 얻었지만 활력을 상실하였다. 이제 자민련과 같은 처지다. 앞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민주노동당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인 성장동력이 있고 방향이 있어 지지율의 성장가능성이 있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성장동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퇴행적인 지역주의 정당으로 몰락해버린 모습이다.

민주당은 지역도 잃고 이념도 경쟁력이 없어 자민련처럼 점차 축소되는 길로 들어섰다. 이념적으로 보수, 개혁, 진보를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이 장악하고 있어, 민주당이 독자적인 공간을 차지할 여지가 없다. 호남표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없다. 다른 지역에서 지지표를 얻을 가능성도 없다.

개혁적인 표도 대부분 잃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개혁표들은 철저히 탄핵에 대해 비판하고 반민주당으로 돌아섰다. 탄핵에 불만이 있었던 한나라당표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간 것과 다르다. 민주당을 떠난 개혁표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이미 민주당은 반개혁적 정당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의 표를 얻기도 쉽지 않다. 서민들에서 이전에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지만, 이제 서민도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에 빼앗겼다.

민주당이 새로 부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현재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민주당의 개혁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몰락한 9명의 국회의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수를 보나 이념적으로 보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새로운 국회, 제대로 된 대의민주주의를 보고 싶다

자신의 지지세력에 대한 냉철한 판단없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지지가 무섭게 사라진다는 점이 나를 무섭게 한다. 지지율이 한 때 1등인 민주당이 4달만에 무너진 모습도 나를 놀라게 한다. 이제 정치인들도 자신의 지지세력에 또는 미래의 지지세력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서 잘 따라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국회가 국민에 반하는 결정을 하고도 대의민주주의니까 무조건 국회 다수결정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이제 점차 사라질 것이다.

탄핵은 민주주의 근본정신에 반한 의회의 독재였고 이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다. 193명이 찬성하였다고 대의민주주의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결정하고 이를 강요하면 독재인 것이다. 16대 국회가 짧은 의회독재를 행사하다가 스스로 몰락한 것이다.

국회가 국민을 무섭게 알고 국민의 뜻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요체이다. 17대에서는 제대로 된 대의민주주의를 보고 싶다. 자신의 당이 지지자를 잘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에 힘을 쏟을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정쟁보다는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개발로 경쟁하는 진정한 대의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정덕(李廷德, 전북대 교수, 문화인류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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