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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중독재? - 대중에 책임 떠넘기기

이정덕( 1) 2004.05.23 11:30 추천:2

한양대교수 임지현이 주동하여 그 동안 대중독재라는 개념을 퍼트리더니 이제 <대중독재>라는 책을 출판했다. 대중독재는 희한한 개념이다. 온갖 모순과 책임 떠넘기기의 결정판이다. 그래서 희한한이란 말을 붙였다.

희한한 개념 '대중독재'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별로 읽고 싶지도 않다. 이미 신문지상에 너무 자주 나와 내용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나쁜 (나의 관점에서. 그래서 출판사 등도 쓰지 않겠다.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대중독재라는 개념을 선전해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사고 싶지도 않다. 나중에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읽어 보리라.

그렇다면 읽지도 않고 어떻게 이 글을 쓸 수가 있을까? 인터넷 검색으로도 내용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한 몇몇 이미지를 통한 인상비평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점은 책을 읽은 다음에 다시 점검해보겠다.

얼마나 대중독재라는 개념이 희한한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

임지현은 독재도 대중의 합의나 동의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임지현에 따르면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논리나, 폭력과 억압을 통한 강압적 지배라는 단색의 이미지로 포착하기에 근대 독재의 현실은 몹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독재론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단순하다고?

그렇게 독재론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단순할까? 독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악한 소수가 다수를 폭력과 선전선동을 통해 민중을 억압하고 또는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지를 모른다는 말인가? 그런데 임지현은 이러한 표현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과장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누가 독재는 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했다고'만' 말하고 있는가? 그러한 학자가 있으면 지적해보라. 어떤 학자도 독재를 논하면서 사악한 소수가 무고한 민중을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억압하고 지배했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재를 논하는 학자들은 독재현상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대중일부의 어느 정도의 지지가 있었다는 점을 다 알고 있다. 독재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두 아는 사실을 마치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는 기존의 독재연구학자들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지 못하다. 어쨌든 그가 새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대중의 능동적 독재참여의 중요성이다. 소수의 독재자가 어떻게 정권을 장악하고 억압을 했는가에 집중하는 대신 어떻게 대중이 동의하게 되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대중이 동의하고 참여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임지현처럼 적극적으로 대중의 동의과정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그는 대중의 동의과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이전 독재연구학자들보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내용을 더 밝혀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가 편집한 <대중독재>에 대한 동아일보 서평(5월22일)에 따르면, 독재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지지과정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치는 일자리 제공과 가난 퇴치의 약속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얻었고, 스탈린주의는 대숙청을 통한 사회적 이동의 증대와 공공영역에서의 고용 창출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박정희 체제는 고도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노동 억압 정책에 대한 불만을 잠재웠던 ‘개발독재’의 전형이었다. 이처럼 독재의 이면에는 이 독재를 용인 또는 지지하는 ‘대중’이 있기 마련이었고, 이런 ‘대중독재’의 기반 마련을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과 같은 정책을 통한 실업의 축소, 임금의 증대 등 대중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의 조성이 필수적이었다."

독재에 동의한 대중의 책임 인정하지만 대중을 꾸짖어서야 될 일인가

나도 여기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현실을 그렇게 파악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동의하는 것은 이 정도이다. 그가 지나치게 동의에 대한 선의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자가 국가, 폭력, 조직, 선전선동술을 이용하여 동의를 만들어낸 측면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동의한 대중만 꾸짖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대중독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 이를 대중독재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중독재라면 대중이 직접적으로 독재를 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대중이 독재자를 지지했고 대중이 거기에 참여하고 동원되었다고 해서 이를 대중독재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다. 왜? 대중이 독재를 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중이 독재를 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가 독재를 했는 데, 마치 대중이 독재를 한 것처럼 대중독재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완전한 책임떠넘기기다. 어느 정도의 대중이 독재자를 지지했다는 정도로 표현해야지를 이를 대중독재라고 표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센세이셔날리즘으로 사람의 이목을 끌어보겠다는 엉터리 개념이다.

독재에 대중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정도는 나도 받아들일 수 있다.“반인간적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소수의 권력 핵심을 실정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나머지 대다수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발부하는 식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도 박정희 시절에 박정희독재를 지지하고 또는 침묵하였던 점이 있다면 반성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도 역사적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가 국민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주지 않아야 한다면서 국민의 책임을 실제보다 심하게 추궁하고 있으며 동시에 독재자에 대한 책임추궁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즉, 임지현은 독재자에 대한 일부집단의 지지를 '대중독재'라고 표현함으로서 대중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독재자에 대한 단죄를 무디게 하고 피하게 하는 괴상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독재라는 개념은 마치 대중이 독재의 핵심에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여 독재의 기획자이고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는 소수독재세력에 대한 책임추궁을 무디게 하고 있다.

또한 '대중독재'라는 개념은 대중이 독재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이 독재를 한 것이 아닌데도 마치 대중이 독재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더구나 대중이 모두 지지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집단만 지지했으며 또한 이들 집단도 상황에 따라 지지를 철회하고 침묵하게 되었던 것인데 마치 대중의 지속적인 지지가 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 대중 대다수의 지속적인 지지가 있었고 통치자가 계속 이를 반영하고 있다면 독재라는 말은 타당하지 못하다. 독재는 말 그 자체에서 대중 대다수의 의지를 반하여 강압적으로 통치했다는 뜻이 강하다. 따라서 독재일반에서 대중 대다수의 지지가 계속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데 되면 민주주의라고 해야하지 않나....

요약하면, 대중독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실제 대중이 아닌 특정 집단이 지지한 것을 대중 전체가 지지한 것처럼 확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중일반이 독재의 지지자이고 동시에 독재의 피해자라는 모순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와 조중동의 대중에 대한 책임전가에 놀아날 수 있어

독재자는 각종 폭력과 강압뿐만 아니라 학교, 신문방송, 조직, 행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동의를 창출하는 메카니즘을 사용하여 지지를 획득하고 반대를 고립화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더구나 도전세력은 대안을 대중에 제시하기도 전에 체포되고 발언의 공간이 철저히 차단당하여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독재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자발적 지지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이 지지를 표하는 것을 대중이 독재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한양대교수 임지현이 해괴한 대중독재라는 개념으로 독재자의 독재책임을 희석시키고 대중에게 독재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한심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실제 상황을 왜곡하고 불공평하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해괴망칙한 '대중독재'의 개념을 조중동이 앞장서서 띄우고 있는 것은 조중동이 독재에 부역한 자신들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즉, 독재의 기획과 폭압에 동참했던 다양한 세력들이 자신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단죄를 약화시키기 위해 대중독재라는 개념을 띄우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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