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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견문록]하와이의 주류로 진출하는 한인들

이병렬( 1) 2004.05.05 14:42 추천:6

초기이민 하와이 이민국 자료에 따르면 하와이에 한인이 최초로 도착한 것은 1898년 1월 8일 한약상을 비롯한 수명의 한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방문자였던 것 같고 하와이에 살기 위해 이민온 사람들은 1901년부터였다.

이 당시 가난과 일제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만주 등지로 떠나던 시절이었다. 하와에서 노동력부족으로 고민하던 농장주들이 한국에서 이민을 모집하게 되었다. 이들을 위해 고종은 수민원을 설치하여 여권 등을 발행하도록 하였다. 인천과 같은 항구를 중심으로 미국 선교사와 브로커들이 하와이는 살기 좋고 돈도 벌 수 있는 곳으로 선전하여 기독교 신자를 포함하여 122명의 첫 이민신청자를 모았다. 한국 최초의 공식적 집단이민이 시작된 것이다.


20세기 초 이주한인들, 설움의 역사

이들은 배를 타고 인천을 떠나 나카사키를 거쳐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12월22일 출발하여 1월 13일 도착하였다. 이들 중 87명이 인천출신이고 대다수가 한 교회의 신도들이었다. 따라서 호놀룰루에 도착하자 이들이 시작한 것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 하여튼 1905년까지 7291명이 하와이에 도착하였고 이후에는 이민이 중단되었다. 조선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본이 해외이민을 원하지 않았고 미국 또한 아시아계의 이민을 제한하였다.

이들은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에 혹사당하였다. 회초리로 맞는 등 반노예적인 생활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들은 힘을 합쳐 서로를 도왔다. 교회를 세우거나 또는 농장에서 예배를 보았다. 농장을 중심으로 한인조직들을 만들었다. 1907년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합성신보'를 발행하였다. 1908년 대한민국국민회 지부체제로 바뀌었다.

▲한인교회-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독립 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
농장에 일하러 온 사람이 남자들이어 결혼하는 방법으로 사진결혼이 널리 행해졌다. 서로 사진을 보내 사진만 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들 신부도 대체로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하와이에 온 여성들도 농장에서 같이 일하거나 또는 세탁 등의 일을 하였다. 따라서 명이 같이 돈을 벌 수 있어 경제적 안정이 보다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농장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도시로 진출하여 식품점, 양복점, 양화점, 세탁소 등을 열어 경제적 기반을 형성해나갔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상해 등과 더불어 하와이가 가장 독립운동이 활발하던 곳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국민회는 독립운동의 지부역할을 했다. 이후 이승만이 이곳에 와 따로 동지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에 갈등이 생겼고 또한 하와이 한인사회가 분열되었다.

이 당시 한인들은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옆집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같이 돈을 모아 학비를 내주는 모습도 많았다. 이렇게 2세들이 미국학교를 다니면서 이들은 미국문화에 익숙해지고 따라서 미국사회에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이웃에 있는 일본계나 중국계와 결혼하여 다양한 혼혈한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 혼혈 한인은 한인사회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경우도 많아 스스로 한인이라고 하지 않으면 서로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요즈음도 자신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한인이라며 스스로를 한인계의 혈통이라고 밝히며 한인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 즉, 혼혈로 주류사회에 통합되는 많은 한인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965년 이후의 이민

미국이 1924년 아시아계의 이민을 철저히 제한하였지만 1965년 새로운 이민법을 개정하여 한 국가에서 매년 2만명까지 이민쿼터를 할당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대거 이미온 새로운 집단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미국 본토에 거주하였지만 하와이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대도시의 대졸 화이트칼라나 전문직으로 미국사회에 와서 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화이트칼라가 아닌 중하층집단도 미국에 많이 이민오기 시작하였다. 이들 전문직이 아닌 사람들도 한국의 근면함을 반영하여 자영업을 하는 등 빠른 정착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들 신이민자들은 대체로 영어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영어와 미국문화에 낯선 상태에서 생활을 해야했다. 이미 이들보다 70여년 전에 이민온 한인의 후손으로 미국식 교육을 받고 영어로 생활해온 초기 이민자의 2세와는 서로 말과 문화가 다른 상태였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형태는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신이민자들의 후손도 이제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사회에 진출하고 있어 신이민자들에서도 이민 1세와 이민 2세들이 서로 다른 사회적 적응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민2세들은 하와이 주류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진출하고 있다. 하와이 주대법원장, 주하원 부의장, 주 상원의워, 하와이 시장, 호놀룰루시 경찰국장 등으로 진출해 있고 하와이 대학교수로 30여명이 재직하고 있고, 수많은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이 있다.

이미 두 개의 한인신문이 있고, 한국어로 방송하는 케이블 방송이 있어 일상생활에서도 한국의 프로그램과 기사를 바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국기사와 프로그램을 주로 소비하는 층은 이민 1세들이다.

현재는 하와이로의 이민자가 매년 300명정도에 불과하여 한인의 수는 약4만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하와이 주민의 약 3%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한인들의 적응 모습-세가지 집단

하와이 한인들이 이미 이민온 지 100년이 넘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사회에 스며들어 스스로를 한인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에서부터 영어를 전혀 모르며 한국말로만 한인타운에서 한인만 만나며 생활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크게 3가지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100년전에 이민온 사람들의 후손으로 이미 미국생활에 적응하여 미국식으로 사고하고 영어가 더 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종 전문직과 정부에 진출해있다. 또한 한국인이라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더라도 한국보다 한인으로 미국에 집단적으로 지위를 확보해야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많다. 이들은 한인 2세 3세 4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두 번째 집단은 한국에서 1965년 이후에 이민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사회보다 한국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앞에 말한 집단보다 경제적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민온지 10여년정도 된 사람들은 아직도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가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는 20여년전에 이민 와서 가게를 시작했지만 1990년대 하와이 경제가 나빠지면서 사업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세 번째 집단은 1965년 이후 이민 온 사람들의 1.5세나 2세들이다. 이들은 현재 대학을 다니거나 또는 졸업하고 취직한지 얼마 안되는 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앞의 2세와 마찬가지로 미국식 교육을 받았고 영어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한글만 아는 부모세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부모의 뜨거운 교육열에 의해 사립고등학교를 다니며 하와이 대학이나 본토의 좋은 대학에서 전문직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많아서 점차 사회의 중추적인 지위로 진출하고 있다.

이들이 현재 많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은 다음과 같다. 취직한 1만6천명의 한인 중 약 1800명이 자영업자들로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있다. 가족과 종업원을 합쳐 여기에 약 5000명 이상이 취직해 있다. 즉, 한인 전체의 약 반이 자영업자이거나 이들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1965년 이후에 이민 온 이민 1세들이다.

교사, 사회복지사, 공무원, 군인 등으로 약 2500명이 취업해 있는 데 이들은 대체로 1900년대 초에 이민온 한인들의 후손이다.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이 800명정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술집을 운영하는 한인들이 많은 데 술집을 운영하거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을 합하면 500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술집은 한국의 바와 같은 것으로 술을 접대하고 팁을 받는 직종이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사람이 60명을 넘고, 변호사가 100명이 넘지만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수십명 정도이다. 의사나 한의사도 총 100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회계사로 활동하는 사람도 20명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사람들은 사기업에 다니거나 또는 실업자라고 할 수 있다.

한인의 전체적인 소득수준은 일본계나 중국계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들의 이민 역사가 길어 한인보다 훨씬 더 주류사회에 전문직에 많이 진출해있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사업을 하기 때문에 관광객의 수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한인관광객은 1997년 IMF위기 이전에는 10만명 정도가 하와이를 방문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5만명정도가 하와이를 방문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1990년대 경제불황을 겪으면서 일본관광객이 약 년200만명으로 크게 줄었고 소비액도 크게 줄었다. 9.11 뉴욕테러 이후 미국본토에서도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줄어 미국본토에서 하와이로 오는 여행객도 줄었다. 따라서 하와이 한인사회는 1990년대 이후 사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병렬 / 우석대 교수·행정학
- 월간 <열린전북> 2004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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