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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철학나들이]첫번째 여행-'변화'

정종환( 1) 2004.05.09 11:10 추천:4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적실 수 없다”
“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신에 비하면 원숭이와 같을 것이다”
“만물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만물은 대립에 의하여 발생한다”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
“젊음은 노화하여 늙음이 되고, 삶은 변화하여 죽음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동일한 존재는 계속하여 존재한다”
“당나귀는 황금보다 여물을 더 좋아한다”
“가장 아름다운 원숭이도 인간에 비하면 추하다”
“바닷물은 가장 깨끗한 것이면서 가장 더러운 것이다, 물고기에게는 마실 수 있고 유익한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마실 수 없고 해로운 것이다”
“선 뿐만 아니라 악도 전체를 이루는 총체성 속에서 필수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신이란 낮과 밤이고, 겨울과 여름이며, 전쟁과 평화, 배부름과 굶주림이다”
“불은 만물을 변화시키고, 만물은 불을 변화시킨다”
“갈등은 정의롭다”
“그대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없다. 그대의 유년기는 상실되었다.
어린 시절의 그대 친구들은 사라져 버렸다.
그대의 부모는 끊임없이 네게서 멀어져 간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헤라클리에토스 어록



철학 나들이에서 첫 번째 여행은 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려고 합니다.

변화는 우리의 삶 속에서 널리 퍼져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간은 바뀌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미묘한 문제들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한 문제 가운데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변화의 일관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나의 사물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같은 사물로 남아 있는가? 변화가 하나의 지속적 과정이며, 시간에 의해서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또 다른 어떤 변화들은 일관성이 없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철학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변화에 대한 가장 보편적 개념은 단순히 차이나 불일치로 변화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물음으로 제기한 고대 철학자 가운데 헤라클레이토스가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애

그는 에페소스의 명문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기가 세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만하고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에페소스 시민 뿐만 아니라 호머나 피타고라스와 같은 시인이나 철학자들도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전쟁기간 동안을 살았기 때문에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우는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어 다니기도 했다. 또 ”어둠의 철학자“, ”모호한 철학자“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는 현실에 대해서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귀족의 지위도 형제에게 양보했고, 고향을 떠나서 아르테미스 사원 근처 산속에서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은둔생활을 하면서 쓴 그의 글은 매우 짧고 간결하며 잠언형식을 가지고 있는 데, 이것은 그가 보편적 진리를 요약하기 위해서 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언제나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본 것입니다. 대립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이고, 존재하는 것에는 모순이 있기 때문에 변화와 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모순이나 대립은 싸움을 만들고, 이 싸움을 만물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만물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은 아무도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흐르는 강물도 변화하고 강물에 들어간 인간도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변화를 강조한 것은 아마도 단순한 변화때문이 아니라, 변화의 근본인 모순을 통한 대립, 그리고 대립과 싸움을 통해서 존재가 새로워 진다는 통찰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순이 대립해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이러한 관계는 모든 존재의 변화를 설명하는 근거로 그는 삼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싸움은 로고스라는 원리에 의해서 지배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로고스는 진정한 의미의 법칙이고, 서로 반대되고 대립되는 모순들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의 철학은 무질서한 변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즉 로고스를 통해서 변화를 이해하므로서 존재의 변화를 통일과 같이 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은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가 안으로는 토지귀족과 신흥시민이 싸우고, 밖으로는 페르시아군의 침입을 겪었던 시대에 살았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그리스 사회의 낡은 제도들이 무너지는 사회변혁기였습니다. 어제의 법률과 귀족이 쓸모없게 되거나 명예를 잃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낡은 씨족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노예제도가 승리하는 과정,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불이 가장 표현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헤라레이토스가 불을 만물의 근원으로 본 것은 불이 대립물 사이의 싸움과 변화, 운동들을 가장 잘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변화의 과정이 존재의 본질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즉 만물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 것 입니다. 불이라는 개념에는 세계의 근원적 물질과 운동의 근원이 통일되어 있는 것 입니다.


변화는 존재의 본질

사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은 인간이 시도하고 경험하는 것들을 일반화하고 보편화 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다양한 경험들과 생각을 보편화하고 통일시켜서 그것을 일관된 질서와 체계로 만들어야만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철학을 한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실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의 근원으로 제시한 불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은 형태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불 속에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헤라클레이토스는 포착한 것 같습니다. 변화의 통일을 불에서 그는 본 것 입니다. 따라서 그는 변화와 대립을 통한 통일을 추구한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변화의 법칙인 로고스를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명한 인간이란 이러한 로고스를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로고스가 처음에는 계산, 조화, 관계, 설명 등을 의미했는 데,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법칙이나 원리’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진리를 알 수 없다고 보는 불가지론자나 회의론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모든 진리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물은 제 때 내리는 비나 음료수로 있을 때는 이로운 것이지만, 홍수로 있을 때는 해로운 것이라고 본 것 입니다. 그러나 물의 원리나 법칙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립물의 싸움을 만물의 운동과 변화의 원인으로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의 철학은 그리스 의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근대 철학자인 헤겔(Hegel)은 “생성이 모든 존재의 근본 규정”이라고 주장하면서 헤라클레에토스의 변화의 철학을 매우 높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소논리학』에서 그를 “변증법의 조국”이라고 칭송했습니다. 또한 레닌(Lenin)이 세계를 “영원히 사는 불”로 파악한 것도 헤라클레이토스의 간접적 영향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원광대 철학과 강사, 전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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