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탄핵정국]탄핵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승환( 1) 2004.03.10 18:05 추천:5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 동안 많은 헌법학자들은 이번에 국회가 문제로 삼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탄핵소추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또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떠맡게 되었다. 그 동안 탄핵정국을 지켜 본 헌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한 헌법이론적 판단을 내려 보기로 한다.

헌법이 규정하는 탄핵제도는 검찰이나 법원에 의한 법적 제제를 기대하기가 곤란한 고위직공무원에 대하여 효과적인 통제를 가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기능을 하는 제도이다.


탄핵사유, 탄핵제도의 입법취지에 맞아야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대상자로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헌법재판소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탄핵의 사유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관하여는 헌법학자들의 해석과 판례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은 헌법상의 탄핵제도의 입법취지에 맞는 해석이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도 동일) 제2조는 공무원을 경력직공무원과 특수경력직공무원으로 구분하고, 특수경력직공무원을 정무직·별정직·계약직·고용직공무원으로 세분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상 정무직공무원이란 ①선거에 의하여 취임하거나 임명에 있어서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공무원과 ②고도의 정책결정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별도의 자격기준에 의하여 임용되는 공무원으로서 법령에서 정무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을 가리킨다.


정무직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 탄핵사유에 해당하는가?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 국무위원을 포함한 정무직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탄핵소추사유에 해당하는가이다. 정무직공무원은 직무의 성질상 일정 정도 정치성이 예견되는 공무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정치성이 예견된다는 것은 그 직무와 무관하게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직무와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헌법(제6조 제2항)이 규정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와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는 원칙적으로 직업공무원제도가 적용되는 경력직공무원에게 부과하고 있는 의무이다. 이 때문에 경력직공무원은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정당법 제6조는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제2조에 규정된 공무원에게는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되는 것을 금지하면서,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 정무직공무원과 경력직공무원 중 특정직공무원에 속하는 대학의 교원에게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에 관한 헌법의 文言을 법률이 구체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하여

정무직공무원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관련하여 특히 문제될 수 있는 것이 선거 또는 정당의 활동과 관련한 것이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9조 제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ㆍ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하여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①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중립의무 조항 때문에 공무원은 일체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가, 그리고 ② 선거에서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 정무직공무원은 어떠한 정치적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가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는는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공직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행위를 금지하지 않으면 공정선거는 기대할 수 없고, 결국 선거의 기본원칙들을 침해하면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선거와 관련한 어떠한 정치적 의사표현도 할 수 없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공무원도 공무원의 신분과 함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신분을 갖고 있고, 후자의 위치에서 선거에 관한 단순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마저도 금지한다면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특히 의사표현의 자유)와 선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일단 정무직공무원에게는 일정정도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예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정무직공무원에게 허용되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정도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을 통할해야 하는 국무총리(헌법 제86조 제2항)에게 정치성이 가장 강한 대통령과 동일한 정도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보는 것은 올바른 헌법해석이 아니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규정하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9조 제1항의 입법취지이다. 그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이 선거에 있어서 국가의 공적 조직을 이용하거나 공무원에게 직·간접적인 강제나 압력을 가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적 선거를 위하여 당연히 요청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은 선거와 관련하여 특정정당 또는 특정후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어떠한 정치적 의사표현도 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 이는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이고 동시에 탄핵사유가 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대통령의 직무의 성질과 선거중립의무 조항의 입법취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은 선거와 관련하여 단순한 정치적 의사표현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여당에게 안정의석을 확보해 주면 대통령의 임기 동안 소신있고 일관성있는 정책을 펴나갈 수 있다”라는 정치적 의사표현은 대통령의 직무의 성질상 당연히 예견되는 정치적 의사표현이다. 이러한 정도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대통령이 그 직위를 통하여 공적 조직을 이용하거나 공무원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탄핵소추사유의 범위와 대상적용에서의 문제

헌법 제65조 제1항은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탄핵소추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어느 정도의 헌법위반이나 법률위반을 탄핵소추사유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탄핵소추사유의 정도는 法文이 열거하고 있는 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가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직무집행에 있어서 '단순한' 헌법위반이나 법률위반을 탄핵소추사유로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법관이 범죄현장에 대한 검증을 위하여 직접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업무상과실치상사고를 일으켰을 때, 법문의 문리해석상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률에 위배한 때”에 해당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이를 탄핵소추사유의 발생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법실증주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탄핵소추사유는 더 이상 공직수행을 위임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위반 또는 법률위반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헌법해석이다.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적어도 그것이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경우, 탄핵소추사유의 정도는 법문이 열거하고 있는 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근거로 원용될 수 있는 조항이 바로 헌법 제84조가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형사상의 특권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이 조문은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비록 재직중이라도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있다는 소추가능성과 소추하라는 소추명령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물론 소추하지 않았다고 하여 공소시효가 진행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내란죄 또는 외환죄 외의 일반형사범죄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재직중에는 형사상의 소추를 하지 말라는 뜻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대통령의 재직기간중 일반형사범죄에 대한 형사소추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헌법 제84조가 대통령이 범한 내란죄 또는 외환죄 외의 일반형사범죄의 경우 형사소추를 금지하고 있는 입법취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일반형사범죄의 경우 그러한 범죄행위를 검찰이 기소하여 법원의 재판을 받게 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는 이러한 유죄판결을 통하여 초래하게 될 대통령의 궐위(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상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실효되지 아니한 자는 피선거권이 없게 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임기 중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으면 그 피선자격을 상실하므로 대통령은 궐위가 된다. 법 제9조제1항 제2호)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불안정 내지는 혼란, 대외신인도 하락 등의 국가적 불이익이 훨씬 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을 정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헌법 제65조가 탄핵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란 곧 내란죄 또는 외환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직무집행에서 발생하는 헌법위반 또는 법률위반의 정도가 명확하고 중대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집행을 계속 하게 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하거나 법질서를 직접적으로 위태롭게 할 것이 명백한 경우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 제65조 제1항이 규정하는 탄핵사유를 이렇게 해석할 때, 정무직공무원으로서의 대통령에게 통상 허용될 수 있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가리켜 탄핵사유라고 보는 것은 법문의 입법취지와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김 승 환 / 전북대 법대 교수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고되었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