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집회의 자유를 가리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공동체에 불가결하고 기초적인 기능요소에 속하며, 민주적 개방성의 본질적 요소라고 보았다. 집회의 자유를 통해서 인간은 그 인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가장 고귀한 가치를 가지는 인권들 중의 하나이다. 집회의 자유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집회의 자유를 통하여 인간 사이의 정신적 논쟁이 가능해지고, 집회의 자유를 방해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을 때 국민은 정치적 무력감과 국가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위험한 경향으로 빠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전제조건이고, 그것을 지탱해 주는 지주(支柱)이다. 집회의 자유는 생각을 달리하는 소수에게는 국가권력에 대한 유용한 방어권으로서, 집회의 장소․시점․종류․형식․내용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고, 동시에 공적 집회에 참여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국가적 강제를 금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미 자유로운 국가공동체에서 방해받지 않고 특별한 허가없이 다른 사람들과 집회할 기본권에는 특별한 서열(序列)이 부여된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기초적 의의는 입법자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때, 행정관청과 법원이 그러한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주목하고 준수해야 한다. 옥외집회의 신고 및 집회의 해산 또는 금지의 요건에 관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이라 한다)의 규정들은 집회의 자유에 대하여 제기되는 헌법적 요청들을 충족해야 한다.


야간촛불집회 원칙적으로 금하는 집시법 제10조

지난 3월 12일 야3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곳곳에서 야간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간촛불집회가 특별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11월말부터 거의 1년간 매일 개최되었던 여중생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부터이다. 그 뒤 2003년 7월 26일부터 금년 1월 24일까지 매일 열렸던 방폐장유치를 반대하는 부안군민들의 촛불집회가 또 한 차례 전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경찰은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그것이 평화적으로 유지되도록 놓아 두었다. 그러나 부안군민들의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실랑이를 벌인 끝에 부안대책위와 경찰이 평화적 집회에 대한 합의를 이루면서 별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이와는 달리 이번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경찰이 불법집회로 단정하면서 집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의법처리(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사법처리’)를 들고 나왔고, 검찰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의 이러한 입장이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은 집시법 제10조이다. 제10조는 '누구든지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시법은 야간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제10조 단서조항이다. 단서는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도 옥외집회를 할 수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서조항은 비록 야간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집회일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이 그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개정된 집시법 개악안을 '역해석'해보자

여기에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이 특정한 집회가 집시법 제10조 단서조항이 규정하는 요건들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들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특정한 집회가 어떤 역사적 상황적 배경하에서 시작되는가, 그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그러한 상황과 참여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가 등이다. 또한 이번 촛불집회처럼 동일한 목적으로 이미 여러 차례 행해진 집회의 구체적인 상황도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동일한 목적의 집회가 계속적으로 개최되는 경우 앞서서 행해진 집회의 상황이 뒤에 이어질 집회에 대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도 집시법 제8조 제1항 단서가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신고된 집회가 집단적인 폭행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한 경우에는 남은 기간의 당해 집회·시위와 동일 목적의 다른 집회·시위에 대하여 금지통고를 할 수 있다. 개정된 집시법의 대표적인 악법 조항들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이 조항을 반대해석해 보자는 것이다. 즉, 이미 진행된 야간촛불집회가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에는, 집시법 제10조 단서를 적용하여 금지되어서는 안되는 집회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기준들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촛불집회는 집시법 제10조 단서의 해석상 금지되어서는 안되는 집회이다. 그것은 부패한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불만을 합법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분출시키는 집회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살리고 정치를 바로 잡겠다는 국민들의 자연발생적이고 평화적인 집회를 금압하는 것은 집시법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야간집회는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야간집회의 허용필요성은 현대인의 삶의 패턴과도 관련된다. 만약 집시법을 들어 야간집회를 자의적으로 금지해 버린다면 넥타이 부대, 산업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여할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되게 된다. 한나라당의 홍사덕 의원이 말한 것처럼 실업자들만 집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탄핵반대 촛불집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논쟁, 즉 문화행사냐 정치집회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경찰은 효순이 미선이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를 허용한 것은 그것이 종교집회였기 때문이고,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불법시하는 것은 정치집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논쟁의 실익은 종교행사나 문화행사는 집시법 제13조에 따라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롭게 개최할 수 있지만, 정치집회인 경우에는 집시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효순이 미선이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는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종교적인 성격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약소국의 딸들로 태어나 미군 장갑차에 치어 비참하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들의 죽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미국은 이에 대해 아무런 법적 책임의식도 갖지 않았던 데서 표출된 정치적 항의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경찰은 그러한 촛불집회를 금지하는 경우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을 두려워해 ‘그것은 종교행사다’라는 궁색한 논리를 동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행사이기 때문에 집시법의 규제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정치집회이기 때문에 집시법이 금지할 수 없는 집회였다고 보는 것이 집시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

결론적으로 탄핵반대 촛불집회는 집시법 제10조 단서조항의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고, 이 때문에 결코 금지되어서는 안되는 집회이다. 그것은 헌법의 집회의 자유조항(제21조)이 보장하는 집회이고, 집시법도 보장하는 집회이다.


- 김승환 / 전북대법대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