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핵]부안논쟁은 자율적 주민투표로 종식시켜라

김승환( 1) 2004.01.07 14:19 추천:13

부안방폐장 논쟁이 해를 넘겼다. 지난 6일에는 대한변호사협회 부안사태 진상조사단(단장 이덕우 변호사)이 조사결과보고서를 공개하였다. 조사단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행정자치부, 산업자원부 등 12개 관련기관을 대상으로 서면조사, 방문조사를 거쳤고, 부안주민 피해자 면담조사 등을 벌였다. 보고서가 밝혀낸 문제점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이다. 부안방폐장 선정절차의 법적 문제점과 부안주민에게 가해진 경찰폭력이다.


법률전문가집단이 확인한 부안방폐장 선정의 절차상 하자

부안방폐장 선정절차의 법적 문제점과 관련하여, 조사결과보고서는 「전원개발(電源開發)에관한특례법」이 문제의 근본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이 법은 방폐장 부지선정을 사업자의 신청에 의하여 주무장관이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근본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밝혀낸 이러한 문제점이 의미하는 것은, 「전원개발에관한특례법」은 적어도 방폐장 부지선정에 관한 한 위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은 국가로 하여금 지역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할 필요없이 방폐장 부지선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행복추구권·환경권 등을 침해하고 있고, 그 때문에 위헌이라는 판단을 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부안주민들에게 자행된 경찰폭력과 관련하여, 보고서는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시위진압 장비의 사용,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의 침해, 압수수색과정과 불심검문 및 체포수사과정에서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였다.

또 하나 소름끼치는 일은 그 동안 부안주민들이 제기해 온 경찰의 음주진압 문제에 대해서도 경찰은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폭력군인들이 광주시민들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고서의 이러한 지적은 바꾸어 말하면 부안주민에 대한 경찰의 음주진압의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가리킨다. 보고서는 경찰력의 위법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알루미늄 방패의 사용금지와 경찰관에 대한 인권교육 등 제도적 장치의 재점검 및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 밖에도 법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현금보상설 유포, 부안군 공무원의 해외견학, 한수원의 금전적 지원계획 등이 주민들의 불신을 키워 사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의 결론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부안방폐장 선정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고,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보호를 파괴했으며, 부안주민에게 불법적으로 행사된 경찰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으로 변질되었고, 국가권력은 총체적으로 부안주민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미 '법적으로'는 종식된 것과 다름없는 부안방폐장 문제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건 작년 12월 10일에 있었던 산업자원부 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부안방폐장 선정에는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 방폐장 후보지를 다시 공모하겠다, 부안군이 낸 방폐장 신청은 이를 예비신청으로 받아들이겠다라는 말을 했다. 산업자원부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은 정부가 부안방폐장 선정의 법적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보고서는, 부안방폐장 선정의 절차상 하자에 대한 정부의 공식자백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법률전문가집단이 확인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부안방폐장 문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 절차상의 하자를 인정한 그 순간에, 적어도 법적으로는 종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러한가? 국회에서의 법률안의결이 되었건, 정부에서의 행정처분이 되었건 거기에 절차상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발생하면 그 자체로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권력의 행사 중 가장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법원의 확정판결에서조차도 그러한 종류의 하자가 발견되면, 이는 재심사유가 된다. 부안방폐장 문제는 법적으로는 사실 그렇게 소멸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부안방폐장 문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온갖 술수를 부린다면 그것은 회생의 가망없는 식물인간에 대한 속절없는 미련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은 부안주민의 진정한 다수의사를 확인하는 것

부안방폐장 문제는 법적으로 이렇게 정리될 수 있고 정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안대책위는 주민투표로 이 문제를 결정하자고 나왔고, 정부도 이 제안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양측의 이러한 태도는 '법적으로' 끝난 문제를 '정치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힐 수 있었다.

주민투표를 위한 근거법률이 국회에서 제정되었는가, 언제 제정될 것인가, 그 내용은 어떻게 규정될 것인가 등은 문제의 본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문제의 본질은 부안방폐장에 관한 부안주민의 진정한 다수의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를 위한 관리기구는 당해 선거관리위원회로 할 수도 있고, 대책위와 정부 및 시민단체의 대표들로 구성할 수도 있다. 주민의 의사는 찬성인가 반대인가를 물으면 된다.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투표자 수는 유권자 수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다음에 다수의 표를 얻은 쪽이 주민의 진정한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놓고 정부는 작년 12월 10일 이후 지금까지 주민투표에 관한 이렇다 할 구체적인 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고, 이 문제를 놓고 대책위와 대화를 나누려는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찬반 양측이 충분한 토론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지금까지 방폐장 건설을 반대하는 부안주민들 중 상당수는 방폐장에 관한 그릇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는 거칠게 표현해서 너무 무식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상호 제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부안방폐장을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반대측의 견해가 전혀 먹혀 들지 않을 것이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도 정부측의 논리가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안방폐장에 관한 토론은 이미 1년 가까이 진행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더 이상의 토론은 주민들간의 갈등만을 확대시키고, 그러한 갈등을 치유불가능한 상처로 남길 뿐이다.

이 즈음에 해괴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느닷없이 부안방폐장에 찬성하는 단체가 등장해서 대책위와 대화를 하자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단체의 구성원들이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부안방폐장 문제가 발생한 이후 일관되게 이 문제에 관하여 상호 대립하는 당사자는 정부와 대책위였다는 것이고, 이 사실은 부안주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하나의 공지의 사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안방폐장에 찬성하는 단체와 그 구성원들이, 부안이 발전하는 데 방폐장이 필요하다고 그토록 확신한다면 그러한 뜻을 정부에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로 그 자리가 그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이다.


부안주민의 파괴된 삶을 법적, 제도적으로 복구해야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에게 부탁한다. 이제 부안주민을 그 삶의 현장으로 돌려 보내라. 부안주민의 파괴된 삶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복구시켜라. 최선의 길은, 정부가 이미 절차상의 하자를 인정했고 대한변호사협회가 그 하자를 확인한 이상, 정부 스스로 깨끗하게 부안과 방폐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물러나기가 억울하고, 그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체면이 너무 구겨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주민투표를 실시하라. 주민투표를 즉각 실시하는 데 법적 사실적 장애물은 아무 것도 없다. 유일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치유하기 어려운 도착증(倒錯症)이다.


- 김 승 환 /전북대 법대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