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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안주민투표는 효력이 발생한다

김승환( 1) 2004.02.11 22:04 추천:3

부안방폐장에 관한 자율적 주민투표가 임박해 있는 이 때, 부안군수와 주민투표를 반대하는 단체의 구성원들이 전주지법 정읍지원에 청구한 주민투표시행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기각결정이 내려졌다.

이 결정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부안방폐장 문제가 워낙 심각한 사회적 국가적 이슈이고, 그에 따른 국가·지방자치단체와 부안주민들 사이의 갈등의 골도 깊기 때문에,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관계없이, 그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하여 또 다른 다툼이 있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충분히 예견되던 일이었다. 필자는 이 사건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의 기각결정이 가지는 의미와 문제점은 무엇인지 법학적 관점에서 하나하나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사건 기각결정의 요지

신청인들은 이 사건에서 부안방폐장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로 하여금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거나 제3자에게 이를 권유하는 등 주민투표의 시행을 위한 일체의 직·간접적인 조력행위를 하지 말 것'과 '부안군 유권자들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 열람하거나 이를 투표인명부 등에 등재하는 등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구하는 신청을 하였다.

이러한 신청에 대하여 법원이 기각결정의 이유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사건 주민투표 결과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부안군민들은 아무런 참여의무가 없으며, 부안군민들의 참여를 강제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 사건 주민투표는 핵폐기장의 유치에 관한 부안군민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주민투표의 결과는 부안군수와 정부에 대하여 부안군민의 여론을 알리는 역할을 함으로써 정책수립에 참조가 될 수 있고, 여기에 “정치적 의미” 또는 “사실상의 효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 사건 주민투표와 같은 사적 주민투표를 명문으로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부안군수의 주민투표실시권은 주민투표법이 발효되기 전까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권리일 뿐 아니라 신청인(부안군수)이 주민투표실시권을 가진다고 하여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사적 주민투표까지 금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사건 주민투표의 결과와 관계없이 2004. 7. 30. 이후에는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데 아무런 법적 장애가 없으므로, 설사 이 사건 주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2004. 7. 30. 이후에 실시될 수 있었던 주민투표가 무산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 사건 주민투표의 정치적 의미 내지 사실상 효력에 따른 것일 뿐 법적인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째,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주민투표 선전물을 발송하고 투표인명부를 작성하여 이를 일반인에게 열람하게 하는 것은 헌법상의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기는 하지만, 이는 사생활을 침해당한 개인들의 기본권일 뿐, 부안군수나 방폐장유치찬성단체의 구성원 등 제3자에게 보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건 기각결정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이 사건에서 법원은 방폐장 유치 찬반에 관한 부안군민의 자율적인 주민투표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주민투표법상의 주민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이 부분은 헌법재판소 판례를 인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사건 주민투표는 '공적 주민투표'가 아니라 '사적 주민투표'이며, 주민투표의 결과에서 나오는 효력 역시 법적 효력이 아니라 사실적 내지는 정치적 효력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았다.

주민투표의 실시를 반대해 온 사람들이 그 동안 내세워 왔던 주장, 즉 이러한 주민투표는 위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 사건 주민투표(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적 주민투표)를 금지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주민투표의 실시를 금지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물론 입법론적으로 볼
때, 이러한 사적 주민투표를 금지하는 규정을 둘 수 있느냐 역시 문제가 되지만, 이 사건 결정에서는 이에 관한 판단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 사건 기각결정의 문제점

이 사건 기각결정은 중요하고 결정적인 쟁점들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부분에서 법이론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결정문은 “주민투표 결과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 없는 '무효'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은 곧 '무효'를 의미한다는 이해(理解)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법용어의 법적 의미에 대한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과 '무효'는 그 법적 의미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재판부는 마치 두 개의 용어가 같은 뜻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법적으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근거가 되는 명문의 법조항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명문의 법조항이 없이 행해진 행위는 법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에는 어떠한 효력도 없다는 것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한 행위 중에는 이 사건 주민투표처럼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지만, 사실적 정치적으로는 효력 또는 힘을 가지는 행위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러한 효력 또는 힘마저도 가질 수 없는 행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법적인 의미에서 '무효'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행정주체가 행하는 '행정행위'는 법이 정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 법이 규정하는 법적 효과를 발생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행정행위는 하자(흠)있는 행정행위가 된다. 하자있는 행정행위에는 '무효'인 행정행위와 '취소'할 수 있는 행정행위가 있다. ('최소'할 수 있는 행정행위는 물론이고) '무효'인 행정행위에 대하여는 그 행위의 상대방인 국민이 행정주체를 상대로 소송(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인(私人)간의 법률행위는 법이 규정하는 요건들(성립요건과 유효요건)을 갖추고 있으면 법이 정하는 효과를 발생하지만, 그러한 효과를 갖추지 못하면 그것이 '무효'인 법률행위가 되거나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가 된다. 예컨대 10살짜리 어린이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거액의 부동산을 타인에게 매도
하는 계약을 체결했을 때, 그러한 법률행위는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로서 취소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서 누가 보아도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로서 당연히 무효가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수인이 그러한 계약의 이행을 독촉하는 경우 미성년자 또는 그 친권자는 매수인을 상대로 매매계약무효확인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무효인 행정행위'이든 '무효인 법률행위'이든 모두 실정법이 전제로 되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히 '법적 효력이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효'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이 사건 주민투표는 '무효'인 행위가 아니라, '법적으로 효력이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둘째, 결정문은 “이 사건 주민투표는 여론조사 자체와는 다른 것이므로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기초로 주민투표권을 직접 도출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상의 기본권에 관련지워 볼 때, 법원의 이 부분 이유 전개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이 사건 주민투표를 헌법상의 기본권의 각도에서 본다면, 의사표현의 자유에서 그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에 명확한 용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출판의 자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의사표현의 '형식'이다. 한 때 의사표현의 형식과 관련하여 논쟁이 붙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당시에, 대학생들이 반전운동의 의사표현으로 검정 리본을 달고 다닌 적이 있다. 당시 대학생들의 이러한 행위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로 보호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의사표현도 상징적 의사표현(symbolic expression)으로서 보장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 이후 의사표현의 방식에는 원칙적으로 아무런 한계가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로 굳어졌다. 이 사건 주민투표를 의사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부안주민은 부안방폐장에 관한 의사표현의 형식으로 주민투표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주민투표는 적어도 기본권이론적으로는 정당화된다
는 것이다.

셋째, 결정문은 이 사건 주민투표와 헌법상의 지방자치에 관한 중요한 관련성을 놓치고 있다. 헌법은 지방자치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제117조, 118조).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면서 지역행정을 처리해야 한다는 명령을 그 속에 담고 있다. 그러한 헌법상의 명령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법률이나 조례를 제정하여 지역주민의 의사를 지역행정에 반영하는 방식과 절차 및 효과를 규정하기도 한다. 법령에 그러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지역주민은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할 방법과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법령이 금지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지역행정에 관한 자신들의 의사를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형성된 지역주민의 의사를 지역행정에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야 말로 지방자치가 도달해야 하는 이상향(理想鄕)이기도 하다.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국립대학교 총장의 임명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립대학교 총장을 임명한다(헌법 제89조 제16호).

그러나 노태우씨가 대통령직에 있던 시절, 대학민주화와 대학자치의 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각 대학 교수회는 자율적으로 교수들의 투표를 통하여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였고, 대통령에게 교수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교수들이 결정한 총장 후보자를 총장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이러한
교수들의 요구를 반대하는 구실로 내세워졌던 것은, “교수회는 법정기구가 아니라 임의기구다”, “교수회가 그러한 투표를 할 수 있는 실정법적 근거가 없다”, “교수들의 그러한 행위는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등등이었다. 그러나 교수들은 “헌법에는 대학자치도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제31조 제4항), 대통령은 총장임명권을 행사하되 대학자치의 정신을 존중하여 행사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결국 초기의 우여곡절을 지나서 노태우씨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국립대학교 총장은 교수회의 직선을 통해서 결정된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을 밞아오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그러한 총장임명행위를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
역행정에 관한 지역주민들의 자율적 주민투표도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비록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적 정치적 효과를 넘어서서 '헌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지방자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넷째, 법원의 재판권은 '법률상의 쟁송'(법원조직법 제2조 제1항)을 심판하는 작용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주민투표는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이 사건은 '법률상의 쟁송'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가처분신청인들은 법원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것을 심판해 달라고 한 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하여 '기각결정'이 아니라 '각하결정'을 내렸어야 옳다. 또한 재판부는, 이 사건 주민투표가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가처분신청을 낸 부안군수나 방폐장유치추진연맹 구성원들에게 개인정보 수집 등의 금지를 구할 어떠한 민사상의 권리도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부분과 관련해서 신청인들에게는 '당사자적격'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기각결정'의 대상이 아니라 '각하결정'을 내렸어야 맞다.

방폐장유치찬반주민투표를 방해하는 행위는 불법행위이다.

방폐장유치찬반주민투표는 법이 금지하는 행위이거나,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자기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행위이다. 그것은 법질서를 교란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가 아니다. 도리어 헌법이 규정하는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이름으로, 또한 민주주의를 사상적 토대로 하는 지방자치의 실현형식의 하나로 보호받아야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방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불법행위로써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주민투표법의 제정여부와 관계없이, 또는 주민투표법의 발효와 관계없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부안방폐장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국무총리와 주무장관의 공언(公言)이기도 했다. 주민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과연 전체 주민 중 몇 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하고, 투표자 중 몇 퍼센트가 방폐장 유치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가이다. 어느 쪽이 되었건 다수를 얻는 쪽이 그 주장의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고, 그 다수표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정당성은 강화될 것이다. 주민투표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현 정부의 민주주의 의식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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