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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위헌이다

김승환( 1) 2004.02.16 20:51 추천:1

흔히 국회를 가리켜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 국회는 입법을 하는 데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국정통제권을 통해서 정부나 법원에 대한 감시·비판·견제를 하는 데에도 국민의 의사를 고려한다.


1. 국회의 기능과 국회의원선거구제

문제는 국민의 진정한 의사를 어떻게 확인하며, 어떠한 절차를 거쳐서 국민의 의사를 국회의 권한행사에 반영하는가이다. 만약 국민의 의사가 단일한 것이라면, 즉 국민 각자가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이해관계, 가치관 등이 하나로 집약될 수 있다면, 국민의 의사를 국회의 활동에 연결시키는 일이 비교적 단순해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민의 의사는 결코 단일하지가 않다. 매우 다양한 의사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의사들이 상호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일상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상호 충돌하고 경합하는 의사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소수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정치적 방향을, 국회가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 구성방법이고, 그 한 가운데 국회의원선거구제가 있다.


2. 우리나라에서의 비례대표제의 역사

우리나라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5.16쿠데타 이후인 1963년이다. 1962년에 개정된 헌법은 “국회의원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제36조 제4항)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이 조항을 가리켜 비례대표제 도입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63년 국회의원선거법이 비례대표제를 명문화하였다. “의원의 선거구는 지역선거구(이하 지역구라 한다)와 전국선거구(이하 전국구라 한다)의 2종으로 한다.”(제13조)라는 규정과, “전국구의 의원정수는 지역구에 의하여 선출되는 의원정수의 3분의 1로 하되 1미만의 단수가 있을 때에는 1로 한다.”(제15조)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헌법이 비례대표제에 관하여 명문의 근거규정을 둔 것은 1980년 헌법부터이다. 당시 헌법은 “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제77조 제3항)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3. 비례대표제의 폐해와 장점

비례대표제에도 문제점은 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의 구체적 적용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를 잘못 이용하면 정치적으로 많은 해악을 가져오기 쉽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를 매관매직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정당지도부의 사유물화 하는 것 등을 그 대표적인 폐해로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이미 드러난 것들이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를 잘 이용하면 지역선거구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많은 긍정적 효과들을 거둘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 정치적 지향 등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의사결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가 제도권 내에 그 대표를 진출시킬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의 의식 속에 여전히 뿌리박혀 있는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국회에의 진출이 거의 불가능한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사회적 정치적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거의 집단광기에 가까운 국민들의 지역감정으로 인하여 특정지역에서 특정정당이 아예 당선자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특정 지역 출신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통로로도 활용해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가 이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되면, 국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역동적으로 기능하면서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 내는 참다운 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여성전용선거구제 논의의 배경과 내용

이제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합의를 보았다는 여성전용선거구제에 눈을 돌려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처음 있는 일이고, 외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여성전용선거구제의 도입취지는 뭘까? 아마도 그것은 그 동안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국회라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적 활동공간에의 진출은 5%를 넘기기 어려웠던 여성에게 국회 진출하는 쉬운 길을 열어 줌으로써, 정치적 생활영역에서의 남녀평등을 구현해 보자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 헌법이 정치적 생활영역에서의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있음(헌법전문, 제10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국민과 정치인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남녀차별 의식 때문에, 여성이 국회의원이 되는 일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회 내에서의 여성의원과 남성의원 사이의 견제와 감시 및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했더라도, 우리 눈 앞에 드러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추악한 모습들이 훨씬 더 적게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회의석의 남성 독과점은 여성의 정치적 지위만을 약화시켜 온 것이 아니라, 남성 국회의원의 지위가 이상적이고 균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데도 많은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 국회에 많이 진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보고자 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 헌법의 기본가치들을 침해하지 않고, 여성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이미 공표한 것처럼, 여성전용선거구제란 인구 180만명을 기준으로 전국에 26개의 여성전용선거구를 만들어, 여성에게만 입후보할 수 있는 권리, 즉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선거구를 말한다. 현행 국회의원 지역선거구의 인구편차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의 인구편차를 3 : 1까지 합헌이라고 보았는데, 여성전용선거구에서는 선거구인구편차가 그야말로 거의 완전하게 사라지게 되는 것도 이 제도의 하나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5. 여성전용선거구제의 헌법적 문제점

이러한 여성전용선거구제는 헌법상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몇 가지 문제들을 제기해 보기로 한다.

첫째, 여성전용선거구에서의 남성들의 피선거권 제한의 문제가 발생한다. 여성전용선거구에서 남성들이 입후보할 수 있는 권리는 (제한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금지된다.

문제는 남성들에게 전국의 26개 광역선거구에서의 입후보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헌법이 허용하는 합리적 차별의 범위 내에 있는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일종의 역차별(reverse-discriminetion)의 문제가 된다. 역차별의 헌법적 논쟁은 원래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흑인, 히스패닉계 등이 로 스쿨이나 메디컬 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현실을 감안하여, 각 대학에서 그들에게 입학정원의 일정부분을 할당했던 제도를 놓고, 백인 지원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역차별론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이에 관하여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역차별이 합리적인 범위내의 것이라면 합헌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이들 유색인종에게 로 스쿨이나 메디컬 스쿨에 입학하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한 방법으로 입학 할당제 외에 달리 적당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연방대법원은, 입학할당제와 관련하여 헌법상 백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다른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데서, 유색인종 입학 할당제의 합헌성의 근거를 찾았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기본권이론상 '덜 제한적인 다른 대안'(less restrictive alternative)의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 이론을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여성전용선거구제에 적용시켜 보기로 하자. 여성전용선거구제가 헌법적으로 허용되는 '합리적인 범위'내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게 되면, 그것은 매우 추상적인 논쟁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국회에의 진출이라는 부분에서 여성이 받아온 차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남성의 피선거권에 덜 제한을 가하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여성전용선거구제 외에도, 헌법에 합치하는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말하기로 한다.

둘째, 여성전용선거구제가 실시되면 유권자들에게는 해당 선거구에서 남성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를 산술적으로 풀이하면, 적어도 절반의 후보자선택권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헌법이 허용하는 합리적 차별이라고 쉽게 말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전용선거구제가 유권자들의 선거권에 초래하는 문제점은 위 '역차별이론'에서 말한 것이 그대로 적용된다.

셋째,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여성들에게만 피선거권을 줌으로써, 어느 경우에도 여성만이 당선자가 되게 하는 제도이다. 이 경우 국회에는 3종류의 여성 국회의원이 존재하게 된다. 지역구선거에서 성별을 불문하고 출마하는 어느 누구와도 겨루어서 당선된 여성국회의원,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에 따라 유권자가 던진 '정당투표'를 거쳐 당선된 여성국회의원, 그리고 여성들만이 경쟁하여 당선된 여성국회의원이 그것이다.

앞의 두 경우에 관해서는 헌법이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여성전용선거구 출신 국회의원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국회 내에는 상호 이질적인 2종류의 여성국회의원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곧 '국회의 동질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낳는다. 쉽게 말해서 국회 내에는 일류 여성국회의원 또는 메이저리그 여성국회의원과 이류 여성국회의원 또는 마이너리그 여성국회의원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 정당에서 경쟁력있는 여성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여성전용선거구로 밀어내려는 당지도부의 시도에 반발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당당하게 메이저리그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넷째, 여성전용선거구제에 주요 정당들이 쉽게 합의를 끌어낸 본뜻이 법의 테두리내에서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 동안 각 정당은 국회의원의석수 늘리기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그러잖아도 '차 떼기 정당' 등 온갖 부패의 꼬리표로 수세에 내몰린 상태에서, 드러내놓고 의석수를 늘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특정정당이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들고 나오자, 나머지 정당들은 이 안에 반대했다가는 여성유권자들의 표에 신경이 쓰이고, 더 나아가서 여성을 우대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의석수를 교묘하게 늘리는 계책이 되겠다는 계산을 했을 법도 하다.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각 정당이 머리에 넣은 노림수들은 그 어느 것도 법적인 것이 아니었고, 정략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정치적 노림수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 정당은 어떻게 해서든 지역구의석수를 늘리면서 비례대표의석수를 줄이는 데 골몰해 왔다. 현행 지역구의석수 대 비례대표의석수의 비율은 227 : 46이다. 정치개혁특위가 잠정적으로 합의한 선거구인구편차는 최소선거구 10만5천명, 최대선거구 31만5천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역구의석수는 7∼8개가 늘어나면서 비례대표의석수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또는 그것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특위의 안대로 선거가 치러질 경우,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가 정치적 소수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또한 보수정당 일색인 정치개혁특위의 합의 속에는 어떻게 해서든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할 여지를 최대한 좁혀 보겠다는 야합이 들어 있다는 것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6. 여성의 국회진출을 확대시키는 방안

이상에서 볼 때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정치영역에서의 남녀차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결코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합헌성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국회진출 확대는 어떻게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합헌적인가? 그 방법으로는 다음과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비례대표의석수를 현재의 46석보다 더 늘리거나 최소한 현재의 의석수를 유지하면서 각 정당이 여성후보자를 당선가능한 상위 순번에 올려 놓는 것이다. 이 경우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정당투표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경우 남성 유권자의 후보자 선택권이 위헌적으로 제한을 당하고 있다는 시비도 사라질 것이다.

다음으로, 유권자들이 입으로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투표 현장에서는 지역감정에 기대어 투표하는 경향이 아직도 상당히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바로 유권자의 이런 고질병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차기에도 당선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는 안일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지역감정을 각 정당은 도리어 여성의 국회진출을 돕는 방향으로 역이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현재의 선거풍토에서는 특정정당이 누구를 후보자로 내어 놓아도 당선될 지역선거구들이 존재한다. 각 정당은 그러한 지역선거구들을 여성의 국회진출을 확대하는 선거구로 활용해 보는 것이다. 여성의 국회진출은 지금보다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국회를 균형잡힌 민의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치영역에서의 남녀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 남성 국회의원들의 끝간 데 없는 부패·비리를 견제하기 위해서 여성국회의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또 다른 위헌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여성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개혁특위가 합의한 여성전용선거구제는 합헌성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유권자들을 설득시키기도 어렵다. 그 속에는 기득권 정치인들과 정당들 그리고 남성국회의원들의 추악한 정치적 이해득실이 깔려 있다.



- 김 승 환 / 전북대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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