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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양철학이야기]부안땅을살리자①

최재은( 1) 2003.01.19 10:28

전주에서 부안을 향하다 보면 부안 초입에 동진강휴게소가 보이고 여기서 잠깐 여유로이 차 한잔을 마시고는 휴게소 곁으로 유유히 흘러서 바다물과 씨름하고 있는 동진강 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당신이 조금만 천천히 달리면 부안의 아름다운 경치가 보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표지판은 얼마전 시대를 반영하듯 "새만금의 고장 부안입니다"로 바뀌었읍니다.


라고 쓰여있는 해넘이의 고장답게 해넘이 풍경의 바탕 사진위에 이토록 아름다운 문구를 새겨 넣은 표지판은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 다녀보았어도 경고 문구만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어디 하나 보이지 않던 신선함 그 자체였다.

이 표지판 제안자의 마음만큼이나 너른 벌판과 아름다운 변산 그리고 새만금이라고 불리워져 버린 넓게 펼쳐진 뻘과 그리고 물이 차 오르면 가없는 물결을 자랑하는 바다가 있어서 이땅은 부안(扶安-扶-도울부 安-편안할 안)이라고 불리웠다.

생거부안사거순창(生居扶安死居淳昌)이라고 불리던 아름다운 서해의 항구도시 부안은 이제 더 이상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하여 부안이라는 낙원이 아니게 되었다.

부안은 정말로 부유하고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바다가 풍성하고 들판이 드넓고 거기다가 변산이라는 명산을 끼고 있었으니 삼대삼풍(三大三豊)의 고장이었다. 첫째 들판이 크고 넓어서 농작물이 풍성하였고 둘째 변산이 높고 깊어서 산짐승과 산나물이 풍성하여고 나아가 변산 소나무는 궁궐 건축용으로 쓰이기도 할 정도였으니 임산물이 또한 풍성하였다. 마지막으로 곰소의 소금과 젖깔 그리고 격포에서부터 펼쳐진 커다란 바다는 밖으로 위도의 칠성 앞바다 고군산 열도까지 연결되는 풍부한 어장과 더불어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새만금 갯벌은 풍성한 어산물과 어패류를 사람들 에게 제공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비로소 부안이 되었던 것이다.

▲© 부안21
그런데 지금 부안은 삼대삼풍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보고였던 바다갯벌과 바다어장을 없애버리는 새만금 간척 사업의 진행으로 인하여 바다가 죽고 동진강이 따라서 죽고 나아가 만경강이 죽어가고 산은 산대로 변산은 갯벌 간척사업에 따른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서 변산땜을 만들어서 환경파괴를 불러일으켜 죽어 신음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변산의 몇몇 산봉우리는 새만금댐 건설에 필요한 골재채취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파괴는 바다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산으로 옮아가고 이윽고 그 비옥한 벌판도 따라 죽을 것이 자명한 것이다.

깊은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치만
먼옛날 그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에 붕어두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속엔 아무것도 살수 없게 되었죠
깊은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푸르던 나뭇잎이 한잎 두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뛰우다가 깊은 속에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 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채 한없는 세월속을
말업싱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김민기님의 작은 연못.



한반도는 어미호랑이 변산은 새끼호랑이-변산과 새만금의 풍수지리

조선의 땅덩어리를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풀이할 때 흔히들 중원을 향해 포효하는 한 마리의 커다란 호랑이로 그리기도 한다. 백두산이 호랑이의 머리이고 장백정간은 쳐들은 앞다리 그리고 평안도는 또 다른 앞다리 그리고 백두대간은 호랑이의 척추이고 동해안의 호미곶(虎尾串)이 바로 이름그대로 호랑이의 꼬리로 표현된다. 그리고 경기,충청,전라도는 호랑이의 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포효하는 호랑이가 암호랑이냐 숫호랑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따라서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땅이 어디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숫호랑이로 볼 때에 남근부분이 바로 금북정맥의 끝에 있는 공주의 계룡산이다. 그러나 암호랑이로 볼 때 여근은 다른 부분에 존재하게 된다. 생식기인 성기란 바로 생기가 모이는 곳이기에 그리고 새끼(후대)를 낳을 수 있는 곳이기에 후천개벽을 열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암,숫호랑이와 별개로 중요한 지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호랑이 새끼이다. 호랑이 새끼란 아버지인 숫호랑이도 어머니인 암호랑이도 부모의 사랑으로 보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이러한 호랑이 새끼의 지형이 바로 변산(邊山)이다. 우리 나라 감여비결(堪輿秘訣)에 십승지(十勝地)는 거의 모두가 백두대간 자락에 있다. 이 백두대간에서 벗어난 곳이 두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공주의 마하갑이요 또 다른 하나가 변산 동쪽 호암이다. 공주 마하갑이야 백두대간을 벗어나 금북정맥에 있지만 깊은 내륙에 존재할 뿐 아니라 백두대간자락과 연결되어 인접하고 있지만 변산만은 백두대간 자락을 멀리 벗어나서 서해 바닷가에 있는 산이다.

나아가 어미인 한반도(백두산)의 몸체와 새끼인 변산은 떨어져 있어서 우리 나라 어느 산도 물 건너지 않고 연결되어 있지만 유독 변산만은 물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는 산으로 알려져 왔었다.(사실 변산도 물을 건너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산의 이름이 변산이다. 변산이 이토록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곧 조선의 한반도를 호랑이로 보았을 때 뱃속에 들어있는 호랑이새끼가 바로 변산이었던 것이다.

▲© 부안 21

변산의 중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변산은 동방삼신산으로 불리워 왔다. 삼신산중의 하나인 봉래산으로 불리었으며 고창의 방장산과 고부의 두승산(영주산)과 더불어서 조선삼신산 또는 호남삼신산이라고 불리웠다. 또한 예로부터 호남이산(湖南二山)으로 호남일산(湖南一山)인 지리산과 짝하였으며 경치 좋기로는 춘변산추내장(春邊山秋內藏 봄꽃 경치는 변산 가을단풍은 내장산)으로 내장산과 벗하기도 한 산이다.

이쯤의 이유만 있을까? 아니다. 내가 산천을 두루 쫓아다니다 보니 참으로 신기한 사실들이 많다. 조선팔도에서 지나중국(支那中國)을 넘보고 있는 산이 두산이 있다. 그 하나가 바로 속리산이다. 옛적 지나의 풍수쟁이가 속리산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지나의 인물과 재물이 다 조선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하여 속리산 수정봉에 거북이를 만들어 얹고 그 위에 또다시 무거운 석탑을 쌓고 그것도 불안하여 거북의 머리를 잘라놓았던 산이다. 이러한 속리산보다 더 지나중국에서 두려워한 산이 바로 변산이다.

변산의 정기를 머금은 인물이 태어나면 지나중국이 조선에 복속이 된다는 전설이 어린 산이 바로 변산이다. 이러한 변산의 정기를 끊기 위한 지나의 노력은 지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령한 정기를 지키기는커녕 스스로 말뚝을 박는 것도 모자라서 바닷속의 해룡까지 끊어놓는 어리석은 짓거리를 하다니 참으로 제살 깍아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작태를 이르는 말인줄을 어찌 알았을까?

격포 채석강과 장산곶-바닷물이 뒤집히는 두 곳

우리는 장산곶 매 이야기를 통해서든 장길산을 통해서든 북한에 있는 장산곶을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 이곳은 산적과 수적(해적)들의 은신처이자 민초들의 최후의 저항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남한에도 장산곶과 유사한 지형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그곳이 바로 새만금을 만들고 있는 변산에 위치해 있는 격포이다. 변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로 알려진 격포 채석강과 적벽강이 있다. 이 지형은 변성암의 절애로 바위절벽이 바다에 깍아지른 듯 파도와 싸우고 있는 절경이 있다.

서해 바다는 동해와는 달리 갯벌지형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절벽구조를 가진 곳이 바로 변산의 격포 근방의 지형이다. 왜 이러한 지형을 형성한 것일까? 그것은 바닷속 해저산맥과 물길로 인해 생긴 결과이다. 동해와는 달리 서해는 중국지나대륙과 한반도로 둘러싸인 호수와 같은 바다이다. 옛날에는 한반도는 대륙과 합쳐진 상태였음이 현대지질학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이러한 특수 구조를 갖추고 있기에 서해의 물길은 몇 개의 물길을 만든다. 그중 두 개의 물이 뒤집어지는 지형이 있는데 하나가 북쪽의 장산곶이요 남쪽의 격포이다.

▲격포 채석강 © 부안 21
속설에 애인들이 격포에 놀러가면 헤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자연현상을 감지하고 있는 생활속에서 우러나온 속설이다. 곧 물이 뒤집히듯이 두 사람의 관계가 뒤집힌다는 것이다. 이렇게 뒤집힌 남북의 물길이 합쳐지는 지점이 바로 인천의 월미도이다. 옛부터 전해지는 속설중 하나가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은 월미도로 가라라고 하였다. 두 물길이 만나는 것처럼 연인사이가 긴밀해 진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나타내는 생활속의 속설들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사회심리적인 이야기 말고도 물 뒤집히는 지점에는 반드시 큰 어장이 발달한다. 왜냐하면 물이 뒤집히면서 바닷속의 영양분들이 부양하여 바다는 풍부한 먹이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격포의 물뒤집힘은 칠성앞바다의 조기어장과 위도의 유명한 파시를 만들었다. 이렇듯 물길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서 번성하였던 법성포굴비는 곧 칠성 앞 바다의 조기어장에서 잡힌 조기들이었다. 장산곶의 물 뒤집힘은 곧 연평도 백령도 앞 바다의 큰 어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물길은 반드시 바다만으로는 형성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육지의 지형과 특히 육지의 강과 하천들의 협조 없이는 하나의 협주곡으로 완성되지 못하였다. 바다와 육지 그리고 강의 협주곡의 산물은 바로 넓다란 갯벌까지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거대한 자연의 걸작품 갯벌은 이윽고 인간과 모든 생명체에게 엄청난 은총을 베풀어주었다. 환산할 수 없는 숱한 어류와 그리고 패류를 선사하였고 지구상의 철새의 안식처로 그리고 바닷물과 공기를 정화하는 지구상의 최대의 정화조 역활도 톡톡히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상의 보물을 한순간 인간들은 문명의 기기를 앞세워서 이를 삽시간에 파괴하려하고 있다. 새만금 갯벌에 가면 환경단체들이 세워 놓은 숱한 장승들이 서있다. 이곳의 지형이 옛부터 구합쟁주(九蛤爭珠)의 대명당이 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곧 아홉 마리의 조개가 커다란 진주를 놓고 다툰다는 곳이다. 진정 이곳의 묻힌 진주는 무엇일까?

나의 새만금에 대한 글의 시작은 내가 본 진주를 소개하고 싶어서 이다.


- 雪山 최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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