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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핵]부안 방폐장과 주민투표

김승환( 1) 2003.11.24 12:56 추천:3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을 국민의 의사를 토대로 행사하는 것이고, 지방자치는 지역의 행정을 주민의 의사를 토대로 해서 처리하는 것이다.

박정희 등 군부가 주도하는 5.16쿠데타 이후 등장한 헌법(제5차개정헌법)이 그 부칙에서 지방자치의 실시를 조국의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로 미룸으로써 사실상 지방자치를 폐지시킨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난 '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이 비로소 지방자치의 실시를 강제하면서 사라졌던 지방자치가 부활하게 되었다.


그 후 지방의회선거가 '91년 이후 '02년에 4번째 실시되었고, 자치단체장 선거는 '95년 이후 '02년에 3번째 실시되었다. 지방선거가 해를 더해가는 것은 단순히 나이테를 늘려가는 산술적 의미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방자치가 그만큼 성숙해져 가는 것을 뜻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 뿌리를 깊게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김종규 부안군수의 '주민투표' 관련 발언의 문제점

부안군 방폐장 문제로 인한 부안주민과 김종규 군수, 정부와의 대립과 갈등은 단순히 시민불복종의 단계를 넘어 민란의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종규 부안군수는 25일 방폐장 유치와 관련하여 "주민투표는 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며 투표시기는 17대 총선 이후인 6월까지 반드시 실시하겠다", "정부는 주민투표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부안문제는 부안사람들이 중심이 돼 논의하고 결정할 일이다", "지난 수개월간 일방적인 반대운동으로 부안군민들은 균형있는 정보로부터 차단돼 이제는 군민들이 충분하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자기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대 대책위가 기존의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반대운동을 중단해야 하고 더 이상의 폭력시위와 찬성주민들에 대한 압력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정상적인 부안 군정과 홍보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규 군수의 이러한 주장들이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차례로 짚어 보기로 한다.

첫째, 주민투표는 (위도면 차원이나 전국적 차원이 아니라) 부안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은 지당하다. 그러나 투표시기는 17대 총선 이후인 6월까지 반드시 실시하겠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지방자치의 정신을 짓밟는 독재적 발상이다. 지방자치의 정신적 토대는 주민의 의사이다. 김종규 군수는 정부에 방폐장 유치신청서를 제출할 때에도 주민의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은 채, 심지어 이에 대한 반대결의를 한 부안군의회의 의사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이를 제출해 버렸다. 그 독선적이고 독재적인 행정처리행태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둘째, 김종규 군수는 지난 수개월간 일방적인 반대운동으로 부안군민들은 균형있는 정보로부터 차단돼 있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균형있는 정보제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부안 방폐장에 대한 일방적인 정보제공은 오히려 정부(산업자원부)가 주도했다. 심지어 현행법상 도저히 불가능한, 아니 법률을 개정하더라도 즉각 헌법위반의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위도주민들에 대한 몇 억원대의 현금보상 문제를 정부는 들고 나왔다. 방폐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일방적 홍보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부안군민대책위의 정보제공은 이러한 정부의 일방적 공격을 방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정부는 주민투표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는 주장은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상이다. 지방자치는 자방자치단체장이 지역문제를 법질서와 정부의 의사에서 독립하여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방폐장 문제와 관련하여 최종적인 결정권은 정부가 행사하고 있다. 정부는 방폐장을 부안에 설치할 것인지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갖는 것이고, 부안군수는 주민투표 실시여부와 실시시기에 관한 결정권을 갖는다는 논리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가?

김종규 군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들이대기도 하고, 군수의 권한을 들이대기도 하는 원칙과 방향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민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의사'

부안 방폐장 문제를 주민투표로 해결할 것인지, 주민투표로 처리한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의사이다. 헌법이 규정하고 법률이 실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는 바로 이러한 정신을 담고 있다.

부안군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과 자손들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방폐장 문제에 관한 결정권은 부안 군민의 손에 맡기는 것이 지방자치의 정신을 충실하게 받드는 것이다.

국무총리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려고 해도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는 실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현행법상 지역의 주요현안을 주민투표로 처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이 존재하는가? 주민투표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주요현안을 주민투표로 처리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구현방식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 김승환 / 전북대 법대 교수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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