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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악 집시법에 불복종하자

문만식( 1) 2003.12.14 23:36 추천:1

<편집자주> 올 한해 사회적 쟁점이 됐던 사안들을 가려 뽑아 평가·조명해보는 기획물입니다. 총 3회. ① 집시법 개악 ② 테러방지법 ③ 네이스 논란 ④ 노동권/이주노동자 ⑤ 파병 ⑥ 부안 반핵투쟁




헌법 제21조 2항이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회 허가제를 드러내놓고 실시하게 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코앞에 두고 있다.

먼저 지난 11월 18일 국회 행정자치위 밥안심사소위가 경찰청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집시법 개정안을 작성했고 이어 12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행자위가 제시한 개정안의 골격을 대부분 유지한 채 통과시켰다. 이로써 집시법 개악안은 18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본회의 최종 표결만을 남겨놓게 됐다. 집시법이 기본권 제한과 관련된 인권관련 법안이라는 점에서 인권위원회법상 국가인권위원회와 협의하도록 돼 있지만 협의과정은 물론 입법예고나 공청회 등의 의견수렴 과정조차 결여된 채였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 교통소통 장애시 도심행진 금지 △ 학교나 군사시설 주변 집회 금지 △ 폭력시위시 남은 기간의 당해 집회 금지 △ 소음기준 초과시 확성기 사용중지 및 처벌 등이다. 결국 집회의 허가 여부, 내용과 형식까지 경찰의 개입과 통제를 제도적으로 강화되는 반면, 사회적 약자들은 집회의 자유를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수단들을 상실하게 된다.

집시법 개악안이 이렇게 졸속 처리돼가는 배경 한 가운데 노무현이 있다. 그는 지난 9월초에 이미 "폭력적 불법 행위가 반복되는 집회·시위에 대해 예방적 단속이 가능하도록 행정자치부가 집회·시위 관련법을 면밀히 검토하고 …[법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개악안이 행자위에서 가결되기 직전에는 '불법시위대처 4대원칙'을 지시했다.

한편 재계도 집시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이미 지난 10월 "바람직한 시위 문화" 운운하며 <집시법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12월 1일에는 성명서를 내 "노동계를 포함한 일부 진보시민단체는 …집단이기주의적인 주장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며 "집시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가 집시법 개악에 대해 적극적인 까닭은 그들이 말하는 '집단이기주의적인 주장', 즉 "생존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노무현에게서 나왔다)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노동계의 생존권 투쟁을 엄호하는 '일부진보시민단체'들의 "시장권력"(이 또한 노무현의 표현) 견제가 참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 집시법(개악안 이전)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1989년 3월 29일에 새롭게 제정돼, 대표적인 악법이라는 그동안의 오명을 그 땟자국이나마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 물론 20개가 넘는 신고사항 등 집회 및 시위의 신고제도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되는 등 위헌시비가 불식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10년만에 처음으로 개정된 1999년 5월 24일 집시법과 그 시행령은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10년의 운동을 무색케 하는 개악된 내용이었다. 사생활 보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주거지역 등의 거주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할 때 경찰이 집회·시위의 금지·제한을 통고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됐고, 질서유지선 침범시 징역형을 과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이 때 신설됐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논란 끝에 빠졌지만, 폭력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의 동일 목적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나찌즘적 발상도 공공연하게 부각됐다. 개악안이 나찌즘적 발상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점은 평화적인 시위를 할 자유마저도 공공연하게 부정하고 있는 개악안의 내용들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집회나 시위를 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라는 말 그대로 원칙적으로 자유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보듯이 집회나 시위는 그저 주어지는 단순한 자유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게 확인됐다. 물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완전하게 향유하기 위해서는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고 미국이 앞장서는 '시장권력'에 고삐를 매는 투쟁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노무현은 스스로 말했듯이 그럴 의지가 없고, 능력도 없다. 오히려 '시장권력'의 충실한 앞잡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무현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생존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로부터 더욱 근본적인 인권의 요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민주적인 집시법 개악 기도에 맞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 말할 권리를 요구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투쟁이 필요하다. 경찰폭력 없이 자유롭고 평화적으로 집회하고 시위할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이를 정면으로 억압하는 개악 집시법에 불복종하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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