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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편집자주> 올 한해 사회적 쟁점이 됐던 사안들을 가려 뽑아 평가·조명해보는 기획물입니다. 총 3회. ① 집시법 개악 ② 테러방지법 ③ 네이스 논란 ④ 노동권/이주노동자 ⑤ 파병 ⑥ 부안 반핵투쟁



시민사회의 격렬한 저항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일부 국가기구, 그리고 일부 정치권의 반대에도 테러방지법은 끝내 태동하게 될 것인가?


'테러와의 전쟁'의 세계화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먼저 미국 사회에 테러퇴치법(9월 13일)과 반테러법(패트리어트법, 10월 25일), 테러용의자에 대한 특별군사법정 설치(11월 13일), 비밀정보기관과 연방수사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국내안전강화법안'(패트리어트Ⅱ) 입안 등으로 구체화됐다.

한국 정부도 진작부터 '국가 대테러지침'보다 강화된 '테러방지법' 제정을 꿈꾸어왔다(2001년 9월 21일). .급기야 국가정보원이 '테러방지법'을 입법예고한다(2001년 11월 12일). 법률제정 과정에서 정부입법안의 입법예고기간(여론수렴기간)은 통상 적어도 20일 이상이지만, 국정원은 단 열흘 입법예고기간을 두었을 뿐이었다. 11월 22일 차관회의의 1차 법안 검토를 거쳐 26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안은 바로 그 다음날인 27일 국무회의에서 전격적으로 의결되어 곧바로 국회에 상정되었다. 그 신속성은 이례적이었다. 테러방지법을 연내에 제정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이 해에 테러방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은 그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 또한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짧은 잠복기가 지나고 2003년 올해 테러방지법안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법 제정을 정부 여당과 국정원이 다시 추진하고(8월), 한나라, 민주, 열린우리당 '3당연합안'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되기에 이른다(11월 10일). 나흘 뒤 정보위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테러방지법안은 법사위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결국 제2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다(12월 10일). 이렇게 통과된 법안은 대테러센터를 국정원 산하에 설치하고 국정원에 대테러활동의 기획·조정 권한을 부여하는 등 정보위 통과안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곧장 국회에 상정된다. 열린우리당은 "법사위 통과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법안을 연내에 통과시키려는 정부와 국정원의 의지 또한 강력하다.


'대테러센터 설치에 관한 법'

테러방지법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일까?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상시적인 대국민 감시체계 확립" "상설 비상계엄법"(인권·사회단체 성명서) △ "스스로 베일에 싸인 국정원이 역시 비밀조직인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고 대테러대책 전반을 진두지휘할 권한을 갖게 된다"(인권운동사랑방) △ "한마디로 생존을 위한 국정원의 몸부림, 즉 테러라는 가상의 적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사회진보연대) △ "국정원이 수사관할권을 확장하고 다른 국가기관까지 통합지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위상과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최병모 변호사) △ "국정원 산하에 큰 권한을 가진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기 위한 법"(이계수 교수) △ "한마디로 말해 국정원 산하에 설치되는 대테러센터의 권한 및 활동에 관한 법이다"(장주영 변호사)….

요약하건대 테러방지법은 대테러센터 설치법에 다름 아니며, 이를 통해 국정원에게 옛 남산 시절의 통제불능의 권능을 안겨주기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전운동에 힘 실어야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정원을 통제해야 한다. 국정원은 예산과 조직, 구성원을 비밀에 부친 채 법원의 허가도 받지 않고 광범위한 감청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누려왔다. 군사정권 이후 10여년이 흘렀지만 국정원의 제도적 개혁은 국회에 정보위를 설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국정원의 로비창구로 전락함으로써 국정원에 대한 문민적 통제를 스스로 포기해버린 정보위 국회의원들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꼭 10년 전인 지난 93년 여야합의로 박탈됐던 수사권도 97년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로 회복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국정원에게 조화(弔花)를 안겨줘야 한다.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력적 관철'이자 '부시의 전쟁', 곧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를 부른다. 테러를 방지하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다. 국가기관의 정보력과 통제 강화도 아니다.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 빈부격차를 줄이고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을 강력하게 벌여나가면서 '테러와의 전쟁'의 부산물일 뿐인 테러방지법 제정을 저지해야 할 것이다.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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