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기고> 자동차경기 참사의 뜻깊은 교훈

편집팀( 1) 2003.10.30 10:40 추천:5

전주 국제발효식품엑스포 행사장인 월드컵경기장 외곽도로에서 10월 26일 개최된 <전북대총장배 제7회 드래그레이스> 도중에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경주용 자동차가 인도를 덮쳐 졸지에 20대 초반의 젊은이 3명이 죽고 6명이 중경상(2명 위독)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고의 발생 배경과 사고 발생 이후 관련 기관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우선 이 자동차경기가 <전북대총장배> 행사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전북대학교 대학구성원들은 이 경기의 실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반면에 전북대학교의 <총장홈페이지>에는 이른바 <전북대총장배 드래그레이스>가 버젓이 별도 메뉴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자동차경기를 "차종별, 배기량별로 구분하여 400m의 직선경기를 달려 우승자를 결정하는 단거리 스피드 레이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것은 홈페이지 상으로는 이 자동차경기가 2003년 3월 2일, 5월 4일, 7월 6일에 이어 9월 14일과 11월 16일에 개최 예정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자동차경기가 왜 예정된 일정과 달리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기간중인 10월 26일에 개최되었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자동차튜닝협회 측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이번 대회는 협회 자체행사가 아니라 볼거리를 제공해 달라는 <국제발효식품엑스포> 조직위의 협조요청에 따라 성사됐다"는 것이다.

요컨대 <엑스포> 조직위가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분 아래, <엑스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자동차경기를 일정까지 변경하여 <엑스포> 행사장 외곽 도로에서 개최하도록 함으로써 이번 참사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사태 발생 이후 관련 기관들이 내보이고 있는, 서로 발뺌하고 서로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이다.

전주시는 "도로 사용 승인 허가를 내준 적이 없으므로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하고, 자동차튜닝협회는 "이번 대회가 <국제발효식품엑스포>의 부대행사이고 출전팀도 엑스포가 초청한 것이므로 사고 책임이 전적으로 <엑스포> 조직위에 있다"고 하는데, <엑스포> 조직위는 그와 정반대로 "자동차경기가 이번 <엑스포> 행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특히 고(故) 임동준 군(전북대 법대 1학년)의 썰렁한 빈소에 다녀오면서 다음과 같이 자문하고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지역 인사들이 민중 친화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미시 정책은 외면한 채 거대 사업에만 치중하는가. 왜 이런 대형 참사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고 떳떳하게 책임지는 기관(또는 어른)이 없는가. 그리고 왜 경찰마저 관련 기관들 수준의 책임 소재가 아니라 사고 자동차 운전자의 과실에만 초점을 두는가.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은 죽어서도 가난하고 외로워야 하는가...

사실 내가 볼 때 이번 참사의 근원에는 우리 지역의 각급 기관장들(특히 전북대학교 총장)의 무모한 자기현시욕과 이기적인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지역과 대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과 대학을 '수단'으로 삼아 오로지 자기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다 보니 일부 기관장들 스스로 이번과 같은 참사를 자초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지역 일부 기관장들의 이같은 무모한 행태는 핵폐기장 유치를 통해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지사, 부안군수, 그리고 전북대 총장과 일부 교수들이 지역 주민들을 '볼모'로 삼아 거의 영구적인 잠재 재앙시설인 핵폐기장마저 우리 지역에 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않는가!

그런 기관장들의 눈에는 아마 일부 지역 소시민들의 목숨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과 사고 운전자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니, 이번 참사와 관련해서도 자기들의 권위와 기관의 위상을 앞세워 '적당히 얼버무리면' 사태가 무마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관장들에게는 아주 당혹스럽게도 관할 법원이 사고차량 운전자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안전성 확보와 안전 장치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없이)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내가 볼 때 참으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한 소시민으로서 관할 법원에 대한 깊은 신뢰와 더불어 이번 사태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철저하게 규명될 것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내가 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이 기관장들의 도의적인 책임 의식과 미래지향적인 반성이다. 이제라도 관련 기관장들(특히 전북대학교 총장)이 스스로 과실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반성하는 가운데 유족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지역사회 전체를 상대로 떳떳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참사를 지역과 대학을 '수단'이 아니라 진정한 '목적'으로 삼는 의식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기관장들이 이제라도 자기자신을 '죽이고' 지역과 대학을 '살리는' 현명한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유제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