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밤에 수협 앞 부안 주민의 ‘반핵 민주의 광장’은 전투경찰의 방폐, 곤봉, 군화발로 짖밟혔다. 맨 손으로 길바닥에 누워 굳게 끌어 안고 엉켜있던 군민을 하나 하나 뜯어 끌어갔다. 저항하면 발로 차고, 곤봉으로 치고, 방폐로 찍었다. 경찰은 무자비했다. 우리의 눈으로 똑똑이 보았다. 가까운 성모병원은 환자로 가득 찼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의 실체다.
부안의 평화를 짓밟을 것인가!
- 2003년 9월 11일 추석날 / 부안 수협 앞
이틀 전 경찰이 ‘반핵 민주의 무대’를 철거했다. 우리는 다시 아름다운 무대를 다시 세웠다. 그래 놓고 울분을 삼키면서 흐뭇해 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앞에서 또 철거했다. 무대는 포크레인의 힘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무대를 발기 발기 뜯어냈다. 쓰레기 차에 싫어 내버렸다.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우리 군민들은 무력감에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통곡하였다. 우리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짐승을 보는 듯했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의 실체다.
무대를 빼앗는다고 우리의 ‘반핵 민주의 광장’이 사라지겠는가? 그럴수록 우리의 피는 솟구친다. 끓는 피로 더 견고한 ‘반핵 민주의 광장’을 만들 것이다. 승리의 길을 따라 꺽이지 않고 나아갈 것다. 문제는 우리가 차를 몇 대나 불태웠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참고 견디느냐 다. “핵은 죽음이다.” 이것은 진리다. 우리의 확고한 명분이다. 이 명분을 앉고 우리의 길을 끝까지 걷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기필코 이길 것이다.
2003년 9월 11일, 핵 없는세상을 위한 ‘제48차 부안 주민 촛불집회’, 한가위, 추석날이다. 부안 군민은 길거리에서 추석을 맞았다. 오전에 부안 성당에서 합동제사를 올렸기에 오후 4시부터 ‘먹걸이 잔치’, ‘나눔의 잔치’를 벌렸다. 추럭 몇 대를 이어서 무대를 설치하였다. 가지 가지 색깔의 고무 풍선으로 무대를 아름답게 꾸몄다. 그 앞에서 제기 차기, 줄넘기, 투호, 윷놀이를 하였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넘처 흘렀다.
새 무대에서 노래 자랑도 하였다. 노랑 샤스, 노랑 모자, 노랑 스카프로 단장을 하고 한 손에 노랑 색 풍선을, 또 한 손에 촛불을 들고 ‘핵없는 세상을 위한 제 48차 부안 촛불집회’, 한가위, 추석을 꾸몄다. 노랑 색은 ‘핵 없는 세상,’ ‘핵 없는 부안’을 상징한다. 우리는 손에 촛불을 들고 환하게 서로의 얼굴을 처다본다. 우리의 자리는 환하다. 서로를 비춘다.
어두움 속에 전투 경찰 수 천 명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경찰대열이 우리를 에워싸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급히 걷고, 서둘러 뛰었다. 촛불집회를 빈틈없이 포위하였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어두움 속의 경찰이 훤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예정대로 할 것을 다 마쳤다. 이제 우리 모두를 잡아가거라.
새끼줄에 돈이 조랑조랑 매달려온다. 저 돈이 얼마나 될까? 경찰이 부수어 철거한 무대를 다시 세울 만큼이다. 이렇게 우리는 투쟁비를 조달하기도 한다.
오늘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비옥한 땅에 감사하고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2003년 추석은 부안 군민이 청정 부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의 핵을 물리치기 위하여 수협 앞 민주의 광장에 모였다. 과거에 없었던 특이한 추석이되었다.
현수막을 떼어 철거하니 우리는 뗄 수 없는 방법을 찾았다. 너 나 할 것없이 길바닥에 페인트로 우리의 주장을 써 놓는다. 경찰들이여, 어서 오라. 이 길을 닥아라. 산자부여, 한수원이여, 너희의 똥 오줌으로 이 길을 닥아라. 상설 무대를 철거하라. 우리는 더 아름다운 무대를 설치한다. 또 철거하라. 우리는 이동식 무대를 설치하여 절대로 더 이상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라! 이 평화를 깨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평화를 방패로, 곤봉으로, 군화발로 짓밟을 것인가?
- 2003년 9월 11일 추석날 / 부안 수협 앞
이틀 전 경찰이 ‘반핵 민주의 무대’를 철거했다. 우리는 다시 아름다운 무대를 다시 세웠다. 그래 놓고 울분을 삼키면서 흐뭇해 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앞에서 또 철거했다. 무대는 포크레인의 힘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무대를 발기 발기 뜯어냈다. 쓰레기 차에 싫어 내버렸다.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우리 군민들은 무력감에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통곡하였다. 우리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짐승을 보는 듯했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의 실체다.
무대를 빼앗는다고 우리의 ‘반핵 민주의 광장’이 사라지겠는가? 그럴수록 우리의 피는 솟구친다. 끓는 피로 더 견고한 ‘반핵 민주의 광장’을 만들 것이다. 승리의 길을 따라 꺽이지 않고 나아갈 것다. 문제는 우리가 차를 몇 대나 불태웠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참고 견디느냐 다. “핵은 죽음이다.” 이것은 진리다. 우리의 확고한 명분이다. 이 명분을 앉고 우리의 길을 끝까지 걷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기필코 이길 것이다.
2003년 9월 11일, 핵 없는세상을 위한 ‘제48차 부안 주민 촛불집회’, 한가위, 추석날이다. 부안 군민은 길거리에서 추석을 맞았다. 오전에 부안 성당에서 합동제사를 올렸기에 오후 4시부터 ‘먹걸이 잔치’, ‘나눔의 잔치’를 벌렸다. 추럭 몇 대를 이어서 무대를 설치하였다. 가지 가지 색깔의 고무 풍선으로 무대를 아름답게 꾸몄다. 그 앞에서 제기 차기, 줄넘기, 투호, 윷놀이를 하였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넘처 흘렀다.
새 무대에서 노래 자랑도 하였다. 노랑 샤스, 노랑 모자, 노랑 스카프로 단장을 하고 한 손에 노랑 색 풍선을, 또 한 손에 촛불을 들고 ‘핵없는 세상을 위한 제 48차 부안 촛불집회’, 한가위, 추석을 꾸몄다. 노랑 색은 ‘핵 없는 세상,’ ‘핵 없는 부안’을 상징한다. 우리는 손에 촛불을 들고 환하게 서로의 얼굴을 처다본다. 우리의 자리는 환하다. 서로를 비춘다.
어두움 속에 전투 경찰 수 천 명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경찰대열이 우리를 에워싸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급히 걷고, 서둘러 뛰었다. 촛불집회를 빈틈없이 포위하였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어두움 속의 경찰이 훤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예정대로 할 것을 다 마쳤다. 이제 우리 모두를 잡아가거라.
새끼줄에 돈이 조랑조랑 매달려온다. 저 돈이 얼마나 될까? 경찰이 부수어 철거한 무대를 다시 세울 만큼이다. 이렇게 우리는 투쟁비를 조달하기도 한다.
오늘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비옥한 땅에 감사하고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2003년 추석은 부안 군민이 청정 부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의 핵을 물리치기 위하여 수협 앞 민주의 광장에 모였다. 과거에 없었던 특이한 추석이되었다.
현수막을 떼어 철거하니 우리는 뗄 수 없는 방법을 찾았다. 너 나 할 것없이 길바닥에 페인트로 우리의 주장을 써 놓는다. 경찰들이여, 어서 오라. 이 길을 닥아라. 산자부여, 한수원이여, 너희의 똥 오줌으로 이 길을 닥아라. 상설 무대를 철거하라. 우리는 더 아름다운 무대를 설치한다. 또 철거하라. 우리는 이동식 무대를 설치하여 절대로 더 이상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라! 이 평화를 깨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평화를 방패로, 곤봉으로, 군화발로 짓밟을 것인가?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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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소리
2014.03.1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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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교육
2014.03.14 12:52
허허 등교거부하고 현장교육한다는게 특정인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대리된 폭력으로 해소하는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교육이었나! 북한어린이가 승냥이그림의 미군모형을 죽창으로 찔러대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것이 그대들의 참교육인가? -
부안의 어머니 들은
2014.03.14 12:52
누가 자식을 학교 안보내는데 맘편할 부모가 ㅜ어디 있겠는가?? 진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해보려 하지않고 그저 겉모습이나 언론의 보도만으로 부안의 어버이들을 매도하는것은 부당하다. 부안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대학가는 방법을 가르키는게 아니라 진정한 절차와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부안에 한번 와 보시지요~~ 부안에 대해 수박 겉핡기 식으로만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린다면 다신들이 바로 우리지역 아니면 그만이라는 진정한 이기주의 입니다. -
참나! 소리
2014.03.14 12:52
어이 참소리 조금있으면 퇴근 시간이다.
이제 퇴근 준비나 해라 임마!! -
부안
2014.03.14 12:52
부안은 지금 공포의 분위기다 전경들이 길 거리마다개미때처럼 길을막고있다 어서빨리 전경들을 복귀시키고 군민들도 평화를 누리도록 말이다 -
푸른솔
2014.03.14 12:52
미군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으니 꺼내지 마시길. 그리고 왜 북한 얘기 꺼내는 지 이해할 수도 없음. 거짓된 평화는 허구적이며 부안인들의 삶은 현실임. -
핵은 나빠!
2014.03.14 12:52
핵은 인명 피해를 입힐수 있고...
땅을황하지로 만든다 -
파수대
2014.03.14 12:52
" 부안 방폐장 반대운동은 자위권이다
- 부안군민들은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선진 시민이다 -
지금, 청정지역 부안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산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위도 방폐장이 확정 발표된 이후 50일간 정부와 부안군민들 간에 극에 달하는 대립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계 유형원이가 은거하였던 부안은 생거부안이라는 말과 같이 바다. 산. 평야가 골고루 이루어져, 부안사는 사람들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여겨질 만큼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가난하지만 안분지족 하면서 살아온 고장이기도 하다
문제는, 17년 전에 안면도에서 거론된 방폐장을 전라북도와 정부가 방폐장 후보지로서 고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군산으로 잡았다가 결국 부안으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과정에서 부안군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안군수와 산자부가 일방적으로 위도를 방폐장 부지로 선정한 것이, 극에 달하는 대립과 갈등의 불씨를 낳게 했다
과거, 전라북도는 경상도에 비하여 산업시설이 낙후되고 국가의 지원이 소외된 것이 사실이다. 70 ~ 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굴툭산업을 경상도 지역에만 유치한 것이 정치문제로 대두되었고 ""지역 갈등""의 원인이 되었으며, 전라도의 낙후된 한으로 야당에게 몰표를 보낸 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 당시, 전라북도의 정책기조는 경상도에 비교했을 때, 잘 보존된 청정 자연을 향후 전개될 ""여가문화""에 대비하여 자연을 보존해야만 우리 전라북도가 살길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지역사회는 물론 공직사회의 기류였다.
그러나, 1991년 지방자치가 시행된 이후 국회의원이든, 자치단체장이든. 자치단체 의원이든, 무차별적인 정책의 남발로 인하여 지금까지 잘 보전 되어온 자연홰손에 손을 뻗치게 되었고, 인기와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한건주의 행태가 오늘의 "" 부안 방폐장"" 문제를 낳게 한 것도 사실이리라.
더불어, 자연홰손 문제는 지역경제의 활성화 측면과 환경보전 측면이 대립될 수밖에 없었으며, 개발과 보전이라는 모순으로서 수많은 갈등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강원도의 동강 개발등 대형 국책사업의 취소를 통하여 경험한바 있다.
그러나, 부안군민들이 주장하는 것은 지역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 청정 부안"" 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오고싶지 않은 고장으로 낙인되고, 방폐장 설치로 자연경관이 영원히 복원될 수 없는 점과, 향후 발생될 만분지 1의 사고가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위도의 방폐장 설치문제는 지역갈등과 반목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를 반대하는 부안군민들의 주장이 이 지역에서 살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납득을 할 수 없는 행위로 보일 수 있겠지만, 자손만대 수려한 자연환경을 보전함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받아드려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부안 방폐장 설치 반대운동은 "" 천부인권인 자위권""으로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필자는 부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남달리 청정지역 부안을 항상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을 느끼며 고향을 찾곤 하는 사람이다. 이번 추석에 부안에 계시는 선조님들의 묘를 벌초 다니면서 보았지만 "" 부안의 방폐장 설치는 물 건너갔다"" 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집마다 핵폐기장 설치 반대 깃발과, 마을마다 걸린 수많은 프랑카드, 자동차 마다 붙인 삼각 깃발, 연일 밤마다 이루어지는 촛불시위는, 정부가 확정한 핵폐기장은 물리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자명했다.
부안군수가 이문제로 폭행을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무슨일이 있어도 폭행의 당위성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부안의 분위기는 다르다. 부안군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전경들로 둘러 쌓여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고, 부안의 골목마다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는 전투경찰병력이 군민들에게는 저항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부안군수는 매일 출근하면서 경찰호송차(일명 닭장차)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가장 가까웁고 친근해야할 군민들이 무섭게 생각되어 자유스럽지 못한 군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은 상황이라 하겠다
그러한 가운데, 왜 하필이면 내소사에 가서 폭행을 당했는가를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자기의 주장이 맞고, 방폐장 유치가 당연 하다하면 왜 닭장차를 타고 출근하겠는가. 내소사를 방문하기 전에 군수는 군민들에게 맞아 죽는 일이 있어도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출근을 해야 했으며, 당당하게 군정을 처리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닭장차로 출근하면서 왜 내소사를 방문하여 내소사 주지와 대화를 시도하려 했는가가 의심이 갈 뿐이다. 부안군민들은 방폐장 반대에 대하여 충분한 대화를 원했을 것이며, 자기들이 표로써 찍어준 군수를 적으로만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과정을 보면 군수는 방패장 유치 당위성만 늘어 놓았으며, 군민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속담에 ""역지사지""란 말이 있듯이 군민들이 주장하는 반대운동에 대하여 다소나마 인정하면서 군수가 하고 싶은 말을 했었드라면 이번 폭행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안의 변산반도는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든 천혜의 보고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지 부안의 변산반도 만큼 아가자기 하면서 자연의 맛이 나는 곳도 드물다. 이러할 진데 부안 방폐장 유치는 의문일 수 밖에 없으며, 방폐장 유치에 역할을 다한 강현욱 도지사와 김종규 군수에게 반문하고 싶다. 어찌하여 자연경관이 뛰어난 천혜의 관광자원을 사장시키게 하면서 까지 부안에 방폐장을 유치하려 했는가? 또한 관광수입과 다른 장소에 유치했을 경우를 비교하고 사회적 비용을 분석 해보았는가?
더불어, 우리 전라북도에 산업시설 유치는 반대하지 않으나, 영원히 복원되지 못할 방폐장 유치결정은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부안군민들이 전개하고 있는 반대운동의 원인을 심도있게 분석하여, 이 문제가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끝으로, 지방자치가 풀뿌리 민주주의로서 발전되고, 자유와 권리와 의무가 상생하는 기반위에 민주적인 기본제도로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자연을 홰손하는 일이 정치인들의 ""한건주의"" 는 물론 "" 인기와 표"" 로서 이용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쓰는 바이다.
" -
부안사랑
2014.03.14 12:52
부안을 고향으로둔 저로서도 무책임한 저들의 행동에 큰 분노를 느낍니다. ㅠ.ㅠ -
눈물의부안
2014.03.14 12:52
우리 부안군민들의 목소리를 정부는들어야한다.
정부- 댁들은 귓구녕을 정녕 막고있단말인가..
이제 정부여 귀를 파거라~
우리 고장 부안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야한다.
김종규-ㅁ- 그대는 요즘 무얼하고 지내는가~
노무현-ㅁ- 그대또한 무얼하며 지내는가~
매미가 불어올때 그대는 정녕 오페라<?>..아니...뭐지??암튼..............놀고있었는가??
후>ㅇ< 망할것들;;;;
답답하기만...오사게.답답하오~_ㅜ 눈물의 부안을 바라보면....................후==3 -
종규놈 졸개 참소
2014.03.14 12:52
넌 빠져라 개보다 못한놈아....너 부안에와서 초등학생한테 삥뜯겻냐? 왜 글마다 돌아다니면서 종규 개노릇하냐 불쌍한넘아
도대체 누가 평화를 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