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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갈등사회 한국, 비책은 따로 없다

김의수( 1) 2003.09.16 12:08 추천:7

희망의 염원을 모아 집권시킨 노무현 정부에서 희망은 안보이고 갈등만 극대화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에서 한국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끝없는 갈등의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전라북도는 대한민국 갈등 현안을 2개씩이나 짊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지자체가 국가적 갈등현안을 스스로 끌어안고 안절부절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강현욱 도지사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핵폐기장 문제에 마치 의기투합이라도 된 듯이 똑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

노무현 정부가 들어 선 이래 사건과 충돌이 끝이 없다. 대통령의 지도력 한계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기회다 하고 이익집단들이 설치기도 한다. 가장 한심한 것은 극우세력이 밑도 끝도 없이 설쳐댄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나날이 하락했다. 취임 100일에 벌써 상당히 떨어진 지지율은 취임 6개월만에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물론 여론이란 쉽게 변하는 속성이 있고, 특히 한 가지 사건만으로도 등락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여론을 형성해 내는 주 요인은 국가적 정책으로서는 사소한 일에 속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말실수나 측근들의 잘못된 언행 등이 여론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그 처리를 신속히 못하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 옷로비 사건에서 그런 것을 익히 경험했다.

그 외에도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지하철 참사나 정몽헌회장 자살 사건 같은 것은 정부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지만, 어쨌든 정부에게는 부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본 정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걱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의 이탈이다. 조중동이나 한나라 지지세력은 처음부터 공격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과거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은 국가주의나 지역주의에 오염된 사람들이 아니다. 군부독재 잔재를 청산하고, 지역대결 구도를 청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했다. 김대중보다도 더 미국에 대해 당당할 수 있다는 기대로 노무현을 지지한 것이다. 서민을 위한 정책에서도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충족되지 않았다. 언론개혁도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분명히 할 것으로 기대했고, 교육정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근본적 언론개혁보다는 자잘한 언론대책에 에너지를 너무 소모한다는 인상이고, 교육부총리는 관리들이 여러 해 동안 준비해 놓은 네이스 덫에 걸려 휘청댔다.

그리고 민주당의 꼴불견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한다. 민주당의 쇄신은 당선 초기에 방향을 확실히 잡았어야 한다. 방향이 어느 쪽이든 저렇게 두고두고 죽을 쑤고 있다는 것은 대통령의 지도력에 한계가 있다는 증거다.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이 안 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데 있다.


새만금과 핵폐기장에 대한 노대통령의 실책

사실 대통령의 실책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지시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최종 책임은 최고지도자가 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전주에 내려와 새만금 문제에 대해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신구상기획단을 구성해 연구하라고 말했다.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강현욱 전북도지사에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에 옮겨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것이 실천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게으른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자율 의지가 근본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기 쉽다. 어쩌면 시간을 끌면서 현재의 방향으로 공사를 조금이라도 더 진척시킨다는 음흉한 계산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갈등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서둘러 합리적인 논의 구조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대화와 논의의 장을 회피하고 공사는 시간과 함께 조용히 진행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운동가들은 사명감으로 헌신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3보1배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고, 그래서 모두가 참여하는 기획단을 서둘러 구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대규모 동원집회를 통해 힘으로 제압해 버리는 바람에 갈등은 극대화된 것이다. 새만금 공사 중단을 위해 대통령보다도 행정법원이 더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핵폐기장 문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엄청난 갈등 사안이 되었다. 대통령으로서는 이것저것 되는 것이 없고, 지도력에 대한 시비나 당하고 있던 판에 17년간이나 묵고 묵은 숙제 하나라도 보란 듯이 박력 있게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참여정부의 방식이 아니다. 국민참여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비록 타지역 사람들이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무관심하여 부안군민들을 간단히 고립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뻔하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밀어붙일 일은 결코 아니었다.


노 대통령이 해야 할 일

기본 방향이 중요하다. 이른바 ‘국정철학’이 확고하다면 그 방향으로 원칙을 세워나가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대세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수들은 끊임없이 돌출한다. 과거에는 한가지 중대한 사건이 터져 위기가 닥치면 또 다른 엄청난 사건이 터져 앞의 위기를 망각하게 해주던 시기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런 단계는 벗어나야 한다. 하나 하나에 대해 성실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핵심은 사람이다. 일 예로 새만금의 경우 대통령이 농림부장관, 전북도지사와 함께 밤새워 토론해보면 답이 보일 것이다. 부처이기주의와 정치논리를 배제시키고 정말 양심적으로 전라북도의 발전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전라북도는 오랜 동안 차별 대우로 힘들었고, 끝없이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또다시 새만금이나 핵폐기장 같은 것으로 갈등의 골을 깊게 해야 하는가? 모든 지역에서 가져가기를 원하는 주요 사업들 중 일부를 우선적으로 전라북도에 배정하라. 그러면 새만금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 모색에 대해 전북도민들이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세력이나 민노당과 개혁 경쟁을 벌여야 한다. 개혁이 국민적 화두가 되어야 하고, 수구세력의 딴지걸기는 주변에 머물게 해야 한다. 정치개혁 문제는 지속적으로 핵심 정치 이슈가 되어야 한다. 지방분권 정책에 대한 논의가 지방에서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해야 한다. 다만 반분권주의자들은 중심에 들어설 수 없어야 하고, 분권주의자들이 분권의 방법론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면서 멋지게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 이렇게 개혁 정책에 대한 논의가 대세를 형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극우세력이 끊임없이 설친다는 사실은 새정부가 개혁드라이브를 성공적으로 걸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전라북도]-강현욱 도지사의 시대적 엇박자

국민의 정부 초기 실세 중 한 사람이었던 유종근 전 도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 비리연루자들 중 하나로 전락하여 도지사를 떠난 후 그의 경쟁자였던 강현욱 도지사가 그 뒤를 이었다. 강지사는 한나라당(신한국당인가) 후보로 경쟁했지만, 지금은 민주당원으로 도지사가 되었다.

유종근 전 도지사는 강현욱 도지사에 비해 개혁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지사는 비리 문제 말고는 도정을 개혁적으로 폈는가? 아니다. 그는 신자유주의자였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모순되게 자신은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권력을 약화시키고 시장의 기능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강화시키되 게다가 경제적 자생력을 기르는 데 관심이 없었다. 투명행정, 투명 재정 대신 밀실 행·재정을 유지했다. 더구나 시민세력을 적대시하였다. 새만금에 집요하게 매달려서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다는 것이 무조건 국가예산 가져오는 일에만 초점을 맞춰서 거대 규모의 소리문화의 전당이나 동학기념관 건립, 김제공항 추진 등 전시행정과 단기적 업적주의에 치우쳐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이나 환경 복지 등 삶의 질 향상에 무관심했다.

강현욱 도지사는 유종근 전 지사의 실정과 구속 이후에 들어왔기 때문에 유지사가 망친 문제들을 깔끔히 정리하고, 안정적이며 내실 있는 도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 상식이다. 더구나 그는 경제관료로, 장관으로, 국회의원으로 대단한 경륜을 쌓은 사람 아닌가. 그런데 강현욱 도지사는 오히려 유지사의 문제점들만 확대해서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열린전북>은 유종근 전 지사의 '새천년새전북인 운동'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런데 그것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 ‘강한전북 일등도민 운동’이다. 더구나 이 운동조직은 관제데모의 핵심으로 동원된다. 이것은 너무도 낡고 낡은 구시대적 통치행위다. 이런 구시대 행태를 유지하면서 지방분권시대 지역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전라북도는 참여정부와 코드가 안 맞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라북도는 지역혁신협의회를 잘못 구성했고, 나는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어가며 그 사실을 폭로했다. 지금 새롭게 조직을 준비하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강현욱 도지사와 전라북도의 도정방향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갈등의 해소도 발전의 전략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안에서 한 발 물러서야 발전 전략이 보인다

새만금은 더 이상 전라북도의 미래도 희망도 아니다. 강현욱 도지사는 이 점을 솔직하게 도민들에게 고백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새만금에만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도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전라북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 전라북도의 지식인들을 최대한 모아내야 한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참여시켜야 한다. 연고 중심으로 이름만 걸었던 자문위원회 같은 것은 이제 다 버려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강현욱 지사로서는 새만금과 핵폐기장이 전북발전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라는 말이 귀에 들어 올 리가 없다. 그러나 전라북도를 살리려면 도지사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 새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내야 한다. 전라북도는 소수 정치인들의 것이 아니다. 전라북도는 소수 토착세력의 것도 아니다. 전라북도는 우리의 미래세대들이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도민들을 더 이상 허상에 잡아두어서는 안 된다.

강현욱 도지사가 마지막 정치인 생활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길은 진정으로 현재와 미래의 전북도민을 생각하면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 김의수/전북대학교 교수
- 열린전북 http://opencb.co.kr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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