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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980년 광주 그리고 2003년 부안

염경석( 1) 2003.09.20 00:58 추천:5

1980년 5월 광주는 연일 수많은 민중이 '반독재' '반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했다. 전두환일당은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언론을 동원하여 민중들의 투쟁을 폭도로 왜곡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총칼로 수천명의 민주을 살상함으로써 자주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마침내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역사는 폭도를 진압한 전두환일당을 반역범죄자로 규정하고 폭도로 불리던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도록 하였다.


23년이 지난 지금, 부안은...

23년이 지난 2003년 9월 부안은 연일 적게는 3천에서 많게는 1만5천의 주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반핵' '반독재'를 외치고 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던 노무현정권은 수천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투쟁하는 주민을 탄압하고 언론은 주민들의 폭력성만을 부각시킨다. 20년 후에 노무현정권 그리고 부안군민의 투쟁에 대해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23년의 세월이 흘렀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총칼을 앞세워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일당들의 비민주적이고 반민중적 행동이나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핵쓰레기장 유치지정을 신청한 군수놈을 감싸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부안군민의 생존권을 짖밟는 노무현정권은 본질이 같다.

군부의 총칼에 맞서 투쟁하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한 80년 당시의 언론이나 '군수의 독재행정'과 '핵쓰레기의 위험성' 그리고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폭력'은 말하지 않고 군수의 독재와 공권력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 부안 주민들을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작금의 언론도 그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공권력을 통한 독재는 전쟁 다음으로 무서운 국가폭력

도대체 누가 더 폭력적이란 말인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부안 군민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또 대의기구인 군의회의 결정에 반해서 군수놈 혼자 독단적으로 핵쓰레기장을 신청해서 부안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는 데 민주공화국에서 독재행정을 잘못됐다고 질타하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두둔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부안군민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노무현정권이야말로 폭력정권이 아닌가?

대통령 당선직후 '국민이 대통령이다'라며 전국을 순회하던 그 정신은 어디 가고 군수와 정권의 독재에 맞서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국민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하는 노무현정권이야 말로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러고도 참여정부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가? 지금 부안에서 민주주의는 죽었다. 공권력을 통한 독재라는 국가폭력이야 말로 전쟁 다음으로 가장 크고 무서운 폭력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노무현대통령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기억하라. 또 '국민이 대통령이다'는 당선직후의 초심으로 돌아가라.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라.

하나, 노무현정권은 공권력을 통하여 소수의 생존권을 짓밟는 국가폭력을 즉각 중단하라.

둘, 부안군수의 핵폐기장 지정신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반한 중대한 문제가 있는 만큼 전면 백지화 하라.

셋, 다른 발전방식보다 사후처리비용을 감안했을 때 비경제성과 그 위험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핵 발전을 중단하는 추세를 직시하고 핵 중심 에너지정책을 재생가능한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라.

이것이 부안 주민의 요구요 권력의 근원인 국민의 명령이다


- 염경석/민주노총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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