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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연재]'욕'찾아 방방곡곡(3)

토로( 1) 2003.07.03 18:01 추천:4

어느 나라든 상스럽고 망측한 느낌을 전할 때 부끄러운 신체 부위를 일컫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한다. 어머니와 성(性)을 결부시킨 정도가 심한 것도 있고, ‘지저스’(미국)‘라 마돈나’(이탈리아)‘몽 디외’(프랑스)처럼 신에게 도움을 바라는 구원용어가 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소·낙타·암탉(프랑스), 산양(스페인), 거북이(중국) 등 동물에 빗대어 만들어지기도 한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짐승은 ‘Son of bitch!’(미국·개새끼), ‘카르브’(아랍·개), ‘도초데’(베트남·개새끼) ‘수킨신’(러시아·암캐 새끼) 등 개(犬)다.


대중화 된 욕 '개새끼'

상대는 물론 그의 부모까지 비하시키는 치욕적인 말이지만, 남녀노소 구별 없이 쓰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욕도 ‘개새끼’다. 정을병의 소설(‘개새끼들’·1993) 외에도 많은 문학작품에 여과 없이 등장하며, 가끔 방송위원회 심의를 통과하기도 하는 만큼 얼마나 대중화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욕은 ‘개 같은 새끼’ 등으로 늘여 사용되기도 한다.

억양과 상황에 따라 유쾌하게 쓰이기도 하는 ‘새끼’는 어린 짐승을 가리키는 말. 따라서 ‘새끼’가 붙으면 “넌 인간도 아냐. 짐승이야”란 의미가 덧붙여진다. 본래 우리 고유 욕에는 ‘자식’(子)이 쓰였는데 욕을 먹는 대상을 더 비참하게 만들려다보니 슬그머니 속어인 ‘새끼’(仔)로 바뀌었고, 현재는 ‘놈’‘년’ 등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보다 한술 더 뜬 욕은 ‘개만도 못한 새끼’. 애완견 열풍으로 개보다도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개만도 못하다면 좋을까?


'개'의 두가지 의미

한국에서 욕으로 사용되는 ‘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 민족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지만 만만하다못해 하찮게까지 여기게 된 개과(犬科)에 속하는 짐승, 개(犬)와 개꿈·개꽃·개떡·개피·개머루·개살구·개죽음 등과 같이 명사 앞에 붙어 ‘참 것이 아닌’‘마구 되어서 변변치 못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 ‘개­’다. 특히 개(犬)는 남의 앞잡이가 되어 끄나풀 노릇을 하는 사람(주구·走狗)을 비유하거나 성질이 괴팍하고 망측한 사람을 멸시하여 일컫는 말 등의 풀이가 사전에 적혀 있을 정도로 포괄적 의미를 가졌다.

‘개’를 포함한 욕 언어는 보통 한가지만을 선택해 사용되지만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해도 그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는 예가 많다. 앞서 예로든 ‘개새끼’를 접두사 ‘개­’로 해석하면 욕을 먹는 대상이 부모까지 확장되지 않지만 ‘변변치 못한 새끼’란 의미이기에 듣기 싫은 말이긴 마찬가지.

문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의 생식기를 비꼬아 만들어진 ‘개 좆같은 놈’‘개 보지같은 년’ 등은 발정기에 아무 곳에서나 교미를 하는 개의 특성을 살린 경우다. 발정난 개(犬)들의 행위가 먼저 연상되지만 ‘개’를 접두사로 봐도 큰 차이가 없다. 접두사 ‘개­’는 ‘흔하다’‘함부로’의 뜻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개'+ 욕설='쌍피'급 파워

성미가 고약한 사람을 일컫는 ‘개불쌍놈’도 비슷한 의미다. ‘개의 불알’과 ‘쌍놈’의 합성어. ‘개놈(년)’과 ‘잡놈(년)’ 등 두 가지 욕이 섞인 ‘개잡놈(년)’은 ‘쌍피’급 파워를 가졌다고 할만하다.

'개망나니’‘개백정’ 등은 품위가 없거나 교양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망나니·백정 등 직업에서 유래된 이 욕은 개를 식용으로 하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욕이다. 신분이 붙은 ‘개 쌍놈의 새끼’도 토속적 질감이 살아있는 우리만의 욕 말이다. 겉모양이나 정신이 개 보름 쇠듯 한 사람을 일컫는 ‘개뼈다귀(뼉다귀)같은 놈’ 역시 의미는 엇비슷하다. 그러나 ‘개 같은 놈’에서 ‘뼈다귀’만 추가된 것으로 본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뜻과 보기 흉한 모습을 빗대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참­’의 의미와 반대개념의 접두사인 ‘개­’를 사용한 대표적인 욕이 개나발·개소리·개수작 등이다. ‘개나발’은 함부로 불어대는 나팔소리, ‘개소리’는 함부로 지껄이는 말소리를 말하며, 사리에 맞지 않게 허튼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에게 “개나발 불지 마라”“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등으로 사용한다. 개소리로 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 ‘개수작’. 수작이란 서로 술잔(말)을 주고받거나 다른 사람의 언행을 업신여겨 일컫는 말이다.

같은 3음절인 개차반은 접두어로 오해하기 쉬우나 개(犬)의 뜻을 가졌다. 차반은 예물로 가져가는 맛있는 음식. 쉽게 말해 개가 반길 차반은 똥이다. 그래서 똥을 먹는 개처럼 행동이 지저분한 사람이나 더러운 상황에서 사용된다.


삼복이 코앞인데...

욕은 증오에 차서 남을 저주하고 욕되게 하는 말. 개가 웃을 일이 많아지는 세상 탓에 이 땅의 서글픈 이들이 토해내는 욕설은 먼지처럼 흩날리며 세상 구석구석 파고든다. 못 배우고 못 가진 자들의 외침이 개 방귀 같은 이 땅의 현실에서 욕은 일반언어가 쉽게 담아내지 못하는 행동과 감정을 순발력 있게 묘사하고 있기에 순기능도 있는 셈이다.

눈에 똥만 보이는 정치인들과 개털에 벼룩 끼듯 한 오만시정잡배들이 설쳐대는 이 땅의 노곤함. 검둥개 목욕시켜봐야 헛일. 말없이 오뉴월 개 패듯 하면 오죽 좋으랴. 삼복이 코앞이다. (계속)

※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두 눈을 맑은 물로 씻어주시라.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이 글을 소리내서 읽었다면 당연히 귀를 씻고 양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필자가 1996년부터 6년여 동안 某월간지와 某웹진 등을 떠돌며 연재했던 칼럼을 再수정할 예정입니다. 당시 내용이 대부분 웹망 곳곳을 휘젓고 다니기에 저 역시 욕설을 남발하며 웹 구속구석 쏘댕기고 서적을 뒤적이고… 많은 부분 보완할 계획입니다. E­mail을 통해 많은 욕설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카피레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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