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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정현의세상보기] 4공구를 뚫어라!

문정현( 1) 2003.06.14 13:47 추천:9

2003년 6월 5일 (목요일)

전북 언론들의 횡포에 견딜 수 없다. 도지사, 도의회 의장, 군산 시장, 천주교 신자라는 이들의 언행에 분노한다. 나는 결심했다. 도청 앞에 가서 단식으로 항의하리라. 저들은 거룩한 기도수행 삼보일배마저 더럽힌 자들이다. 저들의 무리는 삼보일배 기간동안 주요 도시에 나타나 고성으로 우리를 방해하며 삼보일배 수행자들의 인격까지 모독하여왔다. 그래도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새만금 제4공구를 뜷어라! (7분 5초)

2003년 6월 15일 오후 2시/새만금 제4공구 현장



- 관련기사 : [15일 새만금 4공구 해수유통 촉구 국민대회 스케치]


나는 도청 정문에 섰다. 마침 핵 폐기장 유치를 위항 부안지역 유지인 듯한 사람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도청에 이르렀다. 어쩐지 지역 방송사들이 카메라와 촬영기를 들고 나타났다. 저들이 나를 아는 듯 다가와서 인사를 하였다. 나는 말했다.
“전주 KBS, JTV... 지방 방송사, 신문사를 도청이 샀는가?”
“당신들이 언론인이야? 폭력이지.”
“왜 일방적이야.”
노상 침묵 단식농성을 하려던 내가 화가 난 끝에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그 때에 중부서 경찰들이 눈에 띄었다. 나의 입에 손을 대며 침묵 중임을 표했다. 저들은 얼른 알아듣고 접근하지 않았다.
“나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한다.”
“나는 반대할 권리가 있다.”“삼보일배 수행자들이 불순 음해세력이며 끝까지 분쇄되어야 할 사람들인가?”
이것이 나의 단식농성의 이유였다. 특히 강현욱 도지사, 유철갑 도의회 의장, 강근호 군산 시장에게 하는 항의 농성이다.

강현욱 지사는 오래 전부터 면식을 가지고 살았다. 80년 대, 어느 해였던가? 작은 자매의 집이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아니한 때에 불쑥 시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전북 도지사 이후, 중앙에 올라가 오랜 동안 고급관료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주 만난 시기는 내가 94-95년 군산 오룡동 성당 주임 신부로 있을 때다.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다. 나는 강현욱 지사를 한 분의 정치인으로 대할 뿐이었다. 나는 워낙 여당이던 야당이던 정치인을 정치인으로 대하고 살아왔고, 그것이 나의 신조이기도 했다.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파동이 있은 즉시 나는 강현욱 의원에게 책임을 물었다.

“날치기를 자행한 강현욱 의원은 사과하라.”라는 글귀를 성당에 게시하기도 하였다. 몹시 섭섭했을 것이다. 그 전 무렵, 강 의원에게 “당신이 한 나라 당이니 내가 어찌 지지할 수 있겠소.”라고 솔직히 말했다. “반대만 하지 않아도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강 의원이 대답했고 잠시 후 “나도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있는 바, 어찌 민주당으로 적을 옮길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후 한 나라당에서 새천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강근호 시장, 당신은 오래 전부터 나와 상통한 분이오. 내가 어디에서 일하거나 찾아왔던 분이오. 당신은 나를 격려했고, 존경한다는 말도 해왔소. 내가 노상에서 집회할 때 바로 옆에 다가와서 동참했소. 그 뿐 아니라 군산 미군 부대 정문에서 집회 중 발언했던 일도 기억하고 있소.” 아 하! 누가 이 말을 전했던 모양인데 그런 일이 없다고 했소. 당신도 예외는 아니군요. 거짓 말을 밥먹듯하는 인간들!

“처음에는 당신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정치색을 드러냈을 때 나는 멀리하였소. 당신은 힘없는 나에게 정치적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소. 그것은 당신이 나에 대하여 알지 못한 무식의 소치였소. 나는 당신이 이것저것 출마하자 당신을 조심스럽게 멀리하였소. 당신은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을 사람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소.”
이것이 나의 강 시장에 대한 소감이다. 지금은 군산 시민이 뽑은 엄연한 시장님이시다. 그 후 여기저기서 두 번 만났지만 시장의 직분을 잘 수행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저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런데!
무슨 날벼락이냐?
“스님은 절에, 목사는 교회에, 교무는 교당에, 신부는 성당에 가서 기도나 하라.”
이렇게 온 몸으로 열을 뿜으며 열을 내는 강 시장을 보며 나의 속이 타올랐다. 솔직하게 그대로 표현한다.
“저, 저 놈, 제 목적을 위해 못할 일이 없구나!”
정치적 도움이 없으니 막보고 도움을 찾아 한 소리다. 그렇다. 나는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본인이 나의 말을 누구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24시간 도청 현관 앞을 떠나지 않는다. 도청 경비들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누구인지 모르나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아마도 도청 고급간부들)나를 흘깃흘깃 쳐다보고 지나간다. 간혹 목례를 하는 분도 있다.
이렇게 나는 저항하고 있다.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안이라 생각했다.
“실천하는 자원봉사 강한 전북 일등도민의 출발입니다."라고 쓰인 포스트가 주변을 환하게 비춰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김삼용(애향운동본부 본부장)선생이 도청청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뜻 밖에도 심삼석 목사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문 신부님 수고하십니다.”
나는 신 목사의 목소리를 먼저 들었다. 보니 그 분이었다. 나는 기가 찼다. 아무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그냥 물끄러미 처다 볼 수밖에 없었다. 신 목사는 계면쩍은 듯 말없이 도청 청사로 들어갔다. 신 목사는 유신 이후 운동권에서 만난 기독교 장로교회 소속 목사님이다.
도청의 실 국장급이 그 분들과 회의를 가졌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새만금 추진을 주장하는 행사가 성공리에 끝났고 이 후부터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즉각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는 후문이 들린다. 앞으로 우리 앞에 무슨 일이든 저들의 대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도청 현관에 앉아 있는 동안
“새만금은 살려야 한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간척사업 반대는 나의 권리다. 이를 불순 음해 세력으로 몰아가는 도지사의 횡포에 항의하는 노상침묵단식! 문정현 신부”
이렇게 적힌 표시판을 내 옆에 놓았다. 나는 가능하면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들, 시민단체 회원들이 찾아왔다. 내 옆에서 자기들 끼리 모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개나 걸이나 머리를 깍냐?”
“우리가 하던 짓인데!”
“단상에서 말하는 사람들 험상궂더라!”
“그들이 우리를 몰아세우던 것이 바로 그거였어.”
“그런데 우리 노동자나 저들이나 다를 것이 없지?”
“ㅁ ㅣ ㅊ l ㄴ ㄴ ㅗ ㅁ들처럼 광기를 부리며 심각할 정도로 3보1배 수행 성직자들을 모독하고 욕을 하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
이렇게 웃지만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면서 강현욱 지사의 정치행각을 하나하나 꼽아낸다. 저들은 정확한 기억으로 년도를 대가며 말하였다. 나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 군사 독재 정권에서부터 권력에 빌붙어 출세의 가도를 걷던 사람들이 반성도, 참회도 없이 지금도 누리고 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이들이야 말로 사회의 반동이라 생각한다. 반동이 회개하지 않고 남더러 불순세력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한 기자가 귀띔을 한다.
“대공련 새만금주진집회가 만장일치가 아니었습니다. 부안이 대공련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어요. 30분 회의로 끝낼 예정이 이것 때문에 2시간이나 걸렸어요.”

강지사와 새만금 추진 지원단은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함께했나보다. 점심 후에 강지사가 도청 현관에 와서 나를 만났다.
“문신부님, 강현욱입니다.”
내 앞에 놓인 피켓을 둘러보았다. 또
“강현욱입니다. 말씀을 안 하시네? 같이 들어갑시다. 말씀이나 나눕시다.”
나는 강지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아무 말도 응하지 않았다. “건강 조심하세요.”
이 말을 남기고 강지사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도청 안으로 들어갔다. 신삼석 목사는 멀리 떨어져 서 있다가 어느 결에 사라져 가버렸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도리어 내가 측은하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나는 ‘침묵’ 중이다. 저들은 내가 왜 침묵단식농성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입을 열면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규현 신부에게 미안한 생각을 뒤늦게 가지게 되었다. 문규현 신부는 지금 입원 중이었다. 형인 내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요양을 해야 할 그에게 걱정을 주어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온 몸이 흩뜨러져 있어 영양을 잘 섭취하고 쉬어야 할 터인데.

이제 잠을 자야 한다. 나는 닥치는 대로 땅 바닥에 누워 잠을 잘 생각을 하였다. 누구인지 스티로 홈을 자져와 현관 한 편에 깔아 놓고 침낭를 펼쳤다. 노상인지라 비닐지붕을 설치하려 했다. 그러자 도청의 직원들 수 십명이 청사에서 나와 비닐을 치지 못하게 하였다. 서로 실랑이를 버렸다. 내가 나셨다.

“알았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비닐을 치지 않고 덮고 자겠습니다. 침낭 위에 비닐을 덮어야 이슬이라고 필할 수 있지요.”
이렇게 하여 팽팽한 긴장이 풀렸다. 아무 준비도 없이 하늘 아래 잠을 자는데 깔기도 하고덮기도 하여 잠을 청했다. 아~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모기떼가 귀를, 손등을, 팔꿈치를, 발가락을 온통 뜯어먹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마 새벽 한 시가 넘었을까? 신문배달 오토바이가 도청 현관에 까지 올라와 현관에 신문을 쌓 놓고 간다. 배달은 아침 6시 넘어 까지 계속된다. 조 중 동을 비롯하여 지방지까지 배달된다. 한 숨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힘든 나날이었다. 오고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집에 와서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물을 편집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밤을 새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 4시경까지 일하고 아침 미사도 해야했으니 한 두시간 눈을 붙이는 날이 허다했다. 이러기를 두 달을 넘겼다. 길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성직자들의 기도행위(3보1배)가 너무 처절하여 날이면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정신도 지칠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은 지금도 흘리고 있다. 성직자 네 분에 대한 걱정은 각각 달랐다. 이 분을 보아도 걱정, 저 분을 보면 또 다른 걱정을 하게 된다. 문규현 신부는 12일 동안 삼보일배를 했던 동료 신부와 함께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65일 에 비하면 3분의 1밖에 안되는 데도 팔다리, 아니 쑤시는 데가 없었단다. 그런데 문 신부는 아프다는 소리가 없었다니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다. 앓는 소리는 하지 않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 구석 저 구석을 다닌다고 걱정을 한다. 아마 얼마 후에 아프다는 소리를 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다.

나는 작은 신부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난 6월 5일 도청 현관에서 단식을 선언했다. 그것은 나의 과실이었다. 앞당겨 퇴원을 하였다니 큰 걱정을 끼쳤다. 나의 마음이 아팠다. 한 의사 선생이 말했다. 사람은 주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 몸 안에 물질은 물에 떠 있는 것이다. 삼보일배로 65일 동안 물을 흔들어댔다. 그러니 물질도 흩으러져 있다. 물이 가라 않고 물질이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시간이 필요하다. 계속 흔들어대면 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치에 맡는 말이다. 문 신부는 지금 그러한 상태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 치더라도 몸이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나와버렸으니 몸과 마음이 계속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미안하다.

나는 왜 노상에서 살 일만 자꾸 생기는지 모르겠다. 나더러 길 위의 신부라 하더니 길에서 사는 것이 곧 나의 삶인가? 더 늙어 일을 못해도 움직일 수 있다면 여기 저기 찾아다녀야 하겠지? 그러다 보면 객지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않을까? 이것이 나의 삶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싸울 힘이 있는 만큼 싸워야지. 그래야 누가 알아서 마무리 해주지 않을까?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겠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새만금 간척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시민단체들과 함께 역량을 다 했다고 생각된다. 이쯤되면 정치권에서 나설만도 하다. 정치권?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허무감을 느낀다. 기대했던 의원, ‘장’ 본인의 ‘영달’을 위하여 사는 사람일 뿐이다. 누구도 기대할 수 없으니 허무할 수 밖에.

도지사는 삭발을 하고 의기양양하다. ‘불순음해세력’을 ‘분쇄’하려는데 왜 머리를 깎아? 형사고발을 해야지. 공갈협박인가? 이희운 목사님이 체력이 떨어져 혈압이 낮아져 쓸어졌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원광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 그랬다 한다. 병원에서 절도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소식에 더 마음이 상했다. “건강 조심하세요.”하는 도지사의 말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도청에는 공무원이 없다. 왜? 사표를 냈거나 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표를 낸 사람들이 왜 저렇게 큰 소리를 치지? 우리더러 “저 무식한 것들하고 상종하지 말고 들어가자!”라고 하던데 무식한 도민들 때문에 사표소동이 났던가? 독재정권하에서 말한 마디 못하고 몸 사리며 살던 사람들이 이른 바 ‘민주화’에 힘입어 저러는 가보다. 참 가련하다 가련해. 꾹꾹 참는 것이 삼보일배의 정신이다. 참자.


2003년 6월 7일(주일)이다.

도지사 출근, 30분 전에 공무원들이 현관에 대령했다. 경비들은 주차장 정리에 바빴다. 몇 고급 관리들이 출근한다. 부지사와 같은 고급만 현관 앞에 차를 댈 수 있는 모양이다. 모두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침내 도지사가 오나보다.

도청 관리 책임자라 하던 사람이 내 곁에 다가선다.
“신부님, 저 밑에 가서 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친절한 어조로 나에게 청했다. 나는 강한 어조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내 권리요.”
라고 대답했다.
관리책임자는
“그래서 부탁드리는 것이지요.”
라고 말하자 나는 속을 드려다 보듯 속셈을 알아차리고
“나는 그렇게 못하겠소.”
이렇게 대답하니 상당히 언짢은 얼굴을 하였다.
도지사의 차가 현관에 도착했다. 지사가 내렸다. 지사는 허리를 굽히는 듯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작은 목소리로
“수고하십니다.”
라고 말하며 현관에 들어선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신부님이 누구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데..”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도지사가 돌아섰다.
“저게 누구야.”
그 바람에 나의 침묵이 깨졌다.
“무엇 때문에 내가 침묵단식을 하고 있는지 아시지요?”
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지사는 나와 대화를 하려 했었다는 듯
“침묵하신다면서요?”
라고 응답했다.
비서인지 수행하던 사람 하나가 중간에 끼어들어 우리 쪽 사람을 나무랬다.
나는
“너는 뭐야”
“너의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사에게 말했다.
“지사님, 환경운동가들과 대화를 포기했다면서요.”
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청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소란은 지사가 들어간 후 부터다. 도청관리책임자라 했던 이가 혹시 총무과장이 안닌가 짐직된다. 부드러웠던 그가 갑자기 성난 모습으로 둔갑하였다. 우리 쪽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한참 실랑이를 버렸다.
그는 명령조로
“도청은 카메라가 없어?”
“빨리 가져와.”
잠시 후에 방송국에서 쓰는 큰 촬영기가 등장하였다. 촬영기를 이리 대고 저리 대고 설친다. 높은 사람이 명령하니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에게도 초점을 마춘다. 내가 다가가서 촬영기를 빼앗듯 다가가니 도망쳐버렸다.

한 참 시간이 지났다. 구두까지 한얀 색으로 단정한 노인이 성난 목소리로 고함치듯 말하며 도청에서 나왔다. 미리 준비하고 나선 분인 느낌이 든다. 나에게 말한다.
“나 여든 다섯 잘이오.”
“전라북도가 왜 이렇게 발전하지 못한줄 알아.”
“맨날 데모만해서 그런 것야.”
“이제 데모는 그만해.”
나이가 여든 다섯 살이라는 것을 말끝마다 내세운다. 성난 듯 고성으로 쉴새없이 떠들어 대더니 다음에 만나 이야기하자며 도청 안으로 들어가 있다가 나와 시내로 빠져나갔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나에게 고령을 내세워 권위타령만 하고 사라졌다. 유신 때 지역 유지라는 분이 생각났다.

중년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중얼거리듯 말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해?”
“중단해서 뭐하게. 중단하면 전북이 살판난대?”
나에게 눈짓을 주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지나가버렸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한 부인이 아장 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내 앞을 지나간다. 아이에게 말한다.
“신부님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라고 저기 계시다.”
그 아이가 엄마의 말을 알아듯지 못했을 것만 같다.


2003년 6월 8일 일요일

아침 8시 목욕탕에 갔다. 내가 들어서자 세 명의 나이든 사람들이 보였다.
한 사람이 토하듯 말한다.
“삼보일배?”
“그것들 뭐하는 놈들이어?”
또 한사람이
“삼보일배?”
“세 번 걷고 한 번 절하는거여.”
“그거 몰라서 그러는거여?”
“그것이 아니고. 그 놈들 ㅁ ㅣ ㅊ ㅣ ㄴ ㄴ ㅗ ㅁ들이란 말이여.”
나는 들은 척도 할 수 없었다. 꼭 유신 때를 다시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을 다시 상기하였다. 어쩌면 그 때와 같은 분위기인지. 나는 목욕탕을 가도 오래있지 않고 금방 나온다. 내가 나오고 나면 뭐라 욕을 해달지 궁금하다. “저들이 몰라서 저런다.” 이렇게 유신 때 내내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2003년 6월 9일 월요일

도지사는 정문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나 출근할 무렵 김제 어느 공장의 공장장이다.”
“전북대 89학번이다.”
한 친구가 나타나 욕설을 퍼 부으며 말의 난동을 부렸다. 나는 그가 한 욕설을 글에 남기고 싶지 않다. 그는 말했다.
“내 연봉이 4,5백만원이었는데 IMF를 낮아 3,500만원으로 떨어졌다. 전북은 하도 낙후되어 살기가 어렵단말이다.”
그리고 새만금 간척사업 찬성론을 폈다. 욕을 얼마나 해대는지 참기 힘이들었다. 나에게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한 쪽 편에 있던 권태균을 향하여 욕설을 섞어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한다. 권태균도 듣다 못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윤철수가 붙었다. 그 사람이 열을 너무 받았는지 숨이 넘어갈 듯 욕설을 퍼 붙는다. 윤철수가 대든다.
“저 사람이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 맞아?”
그 사람은 더욱 화가 났나보다.
“나 오늘 출근 안해.”
우리 일행을 죽을 듯이 다가서면서 어디엔가 전화를 한다.
“나 오늘 늦게 갈 것이니까 일 좀 잘처리해.”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를 서 있다. 멎적었는지 도청 안 안내소에 들어가 앉아있다. 공무원들이 마실물도 가져다 주었다. 공무원들 자기들 말을 다 해주어서 고마웠던 모양이다. 밖으로 나왔다. 흥분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아무 말없이 서 있다. 쑥스러웠던 모양. 어딘가 또 전화를 한다. 이 번에는 누구에게 원정을 구하는 듯하다.
“나 도청 정문에 있다.”
“너 이리 와. 내가 새만금 반대자들과 싸우고 있어. 이리와라.”
누구를 부르는 것 같다.
어~ 큰 싸움날 모양이다. 그런데. 우두커니 서 있던 그가 혼자 말로 욕을 해대더니.
“오늘은 그냥 간다. 나중에 보자.”
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고 물러나버렸다.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오전 10시 전북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릴레이 단식농성을 시작하였다 나는 젊은 이들의 만류로 단식을 마치고 문규현 신부와 더불어 순천 가롤로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나는 사실 3보1배 내내 동행을 하다가 단식을 하여 사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 사이 긴급전화가 왔다. 새만금 4공구의 방조제 공사가 끝난다는 것이다. 2m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한다. 밤낮 공사를 급하게 하여 새만금 공사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작태가 이제 사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 미군에게 공여하기 위해서라도 그 곳을 빨리 끝냈어야 했다. 6월 말 까지 매립공사도 마칠 계회이었다니 큰 일이다. 싸움은 커지게 생겼다. 정부는 농림부 장관을 통하여 계속해서 거짓말만 해오고 있다. 그리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 거짓 속임수를 우리 국민은 미리 알 수가 없다. 정부와 미군의 관계도 진행 자체가 비밀이 하고 있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알아도 뒤늦게 때를 놓치곤 한다. ㄷ ㅡ ㅇ ㅅ l ㄴ 같은 정부, 행정을 공개적으로 하라! 대통령이 ㄷ ㅡ ㅇ ㅅ l ㄴ 이 되는 것은 제 머리로만 해결하려는 것 때문이다. 군민적 논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늦어져도 탈이 없다.

2003년 6월 10일 화요일

방조제 공사장에 들어가 있는 동지들, 먹을 것도 없이 밤을 지세웠을 것이다. 일교차가 심한 이 절기에 추위를 어떻게 이겼을까? 전화를 해도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메시지만 들린다. 답답하다. 전화연결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도청 앞 단식동성은? 내가 없어도 괜찮을지. 아무래도 내가 있어야할 것만 같은데. 병원에 와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적어도 수요일까지는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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