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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더 이상 죽지 말고 아프지 말자

평화와인권( 1) 2003.05.25 11:37

“공고 막 나와서 배 만드는 데 왔는데, 처음엔 왜들 그렇게 허리를 다친다는 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와~ 이만한 배관을 어깨에 짊어지고 일하는데 몸이 남아날 수가 없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 보면 일주일에 삼일도 일 몬하는 사람이 많아요, 골병 들어가지고 아파 죽갔는데 나와서 일하고 삼일 쉬고 침맞고 그럽니다. 정년이요? 죽지 않고 살아서 퇴직할 수 있으면 다행이죠”

대우조선에서 일하다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을 시작한 노동자의 말이다. 지난 3, 4월에도 현대중공업과 목포 삼호조선소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추락사고, 압착사고로 연이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만 해도 2600명 이상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전 안전장치의 강화로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폭발, 화재, 추락, 감전, 설비불량 등의 재래형 재해율은 줄지 않고 있다.

특히 IMF 구조조정 이후에는 신종 직업병이라 불리는 근골격계 질환, 심혈관계 질환, 과로사 등이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금도 현장은 망치소리, 기계소음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차 있다.

이제는 아파서 신음만 내고 있을 수는 없다. 작년 거제에서 시작된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골병만 만들어내는 현장을 바꿔보려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4월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사측의 끈질긴 탄압에도 불구하고 요양신청투쟁을 통해 전원 산재승인을 쟁취했지만 이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과 공단노조 측의 고발로 3명의 노동자가 구속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노동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공단의 존재의미를 무시한 채 자본의 하수인노릇하수인노릇을 자임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아픈 사람을 꾀병으로 몰아 부치고 걷지도 못하는 산재환자를 강제 퇴원시켜 결국 스스로 목숨까지 끊게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공단의 어용노조까지 가세하여 아프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살인미수,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하여 긴급체포, 구속까지 시킨 것이다.

IMF이후 집단적으로 발병한 근골격계 질환은 노동강도의 강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인력의 감축과 생산량의 증가에 따른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육체적 하중의 증대, 잔업과 철야 확대로 인한 노동시간의 증가, 작업밀도의 증가, 비정규직과 하청의 증가로 인한 고용형태의 변화 등 집단적 작업환경의 변화가 근골격계 직업병 발병의 원인이며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없애는 것이 본질적인 대책이다.

결국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장에서는 작업을 중지할 권리, 나아가 작업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통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을 위시한 자본의 탄압은 현장의 통제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기에 진압하고 전국적인 연대투쟁의 흐름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의 탄압에 지레 움츠러들어 싸움을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사측과 타협하거나 근골격계 투쟁을 단순히 직업병 인정투쟁으로만 한정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자본의 현장통제와 이로 인한 노동 강도의 강화가 본질인 만큼 이를 저지해내는 투쟁이어야 하며, 노동자에 의한 현장의 통제가 가능해져야 승리할 수 있는 투쟁이다.

애당초 노동자들에게 이미 주어져있었던 권리란 없었다. 아프지 않고 죽지 않을 권리도 노동자의 힘으로 얻어내야 한다.



-서소영 / 약사・평등세상을 여는 민중의료연합 회원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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