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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허철희의포토갤러리] 새만금갯벌 백합의 운명

허철희( 1) 2003.04.19 11:08 추천:1

새만금갯벌 백합의 운명

부안사람들은 조개류 중에서 전복 다음으로는 백합을 꼽는다. 조선시대에는 왕실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일테면 조개 중의 조개, 조개의 귀족인 셈이다.

백합은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 일본 등지에서 나는데, 그 중에서도 부안의 계화도나 김제의 거전에서 나는 백합의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나는 백합이 우리나라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백합은 육상기원 퇴적물이 유입되는 하구역 갯벌의 모래펄갯벌을 선호하는데, 계화도와 거전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유입되고,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하구역 갯벌이 건강하게 발달되어 있다.

▲백합은 3~5센티미터 깊이의 모래펄갯벌에 묻혀 사는데 특수설계된 <그리>라는 기구를 이용해 잡는다

석패목(石貝目) 백합과에 속하는 백합은 큰 것의 경우 어른 주먹만한 크기로 조개류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백합이란 이름은 껍데기 둘레가 1백㎜이란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껍데기 표면에 100여개의 각기 다른 무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나, 부안에서는 '생합'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부안사람들은 백합을 문지방에 놔두고 밟고 다니며 먹었다고 한다. 백합은 입을 꽉 다문 채, 한 달(겨울철)이 지다도 죽지 않고 오래 산다. ‘생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백합이 입을 벌리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백합이 입을 벌리지 못하게 문지방에 놔두고 들며나며 밟아서 자극을 줬던 것이다. 자극을 줄때마다 더욱 움츠리기 때문에 백합의 수명은 길어진다.

▲백합(Meretrix lusoria 백합과)은 새만금갯벌의 대표적 특산물로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이 부안의 계화도갯벌이나 김제의 거전 심포갯벌에서 난다.
백합은 하구갯벌이 잘 발달된 고운 모래펄갯벌을 선호하는데 새만금갯벌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유입되고 있어 하구갯벌이 잘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크기는 큰 것의 경우 높이 10 cm 정도, 길이 12 cm 정도이다. 껍데기 표면은 매끈하니 성장선이 없고 갈색 바탕에 ∧∨ 모양의 무늬가 백이면 백 각기 다 다르게 나 있다. 이러한 연유로 백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백합은 아이들 주먹만한 중간 크기가 먹기에는 좋다. 회로 탕으로 죽으로 구이로 찜으로 요리해 먹는데 맛과 향이 아주 뛰어나다. 또한 백합에는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등 40여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다. 예부터 간질환, 특히 황달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백합의 주생산지인 계화도는 이름 그대로 원래 섬이었으나 1960년대에 간척사업을 벌여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계화도가 섬이었을 때 이곳 사람들은 한 물 때에 갯벌에 나가 백합을 잡아 이고지고 부안읍내까지 걸어 나와서 쌀보리 한 됫박과 바꿔가지고, 다음 물때를 기다려 계화도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를 계화도 양지마을에 사시는 이복순(79세) 할머니는 이렇게 회상하신다.

“그때는 여그가 섬이라 장사가 안 들어 와, 갯일 해갔고 얼른 집에 가서 아뜰 밥 챙겨주고는 그길로 부안으로 나가, 저그 중리에 다리 있잖여 거그가 옛날에는 나루여, 거그서 배타고 갯꼬랑 건너서 대벌리로 가지, 곧 물 들어옹게 빨리 가야 혀, 갯바닥이 미끄러운 게 발에다 이렇게 새내끼로 감고..., 고개껏 이고 부안에 가면 쌀보리 한 되나 받어가꼬, 저녁 늦게나 집에 와, 그러고들 살았어,“

▲갯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새만금 어민들1.
전장의 전사들처럼 비장감이 든다. 저들은 대대로 갯벌에 기대어 살면서 백합 잡고 꼬막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사도 시키며 질척이는 삶을 살고 있다.그러나 새만금 방조제 길이가 길어지는 만큼 저들의 한숨도 길어지고 있다.
변산쪽 가력도에서 나가는 방조제와 군산 신시도쪽에서 나오는 방조제가 랑데뷰하는 날저 갯벌은 운명을 다 할 것이고 저 전사들은 내몰려질 것이다.

백합을 고개껏 이었다면 15kg 정도는 될 터인데, 요즈음 시세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백합 1kg이 평균 8~12천 원 정도 하니까 15kg정도면 쌀 한 가마의 가치이다. 그런데 겨우 쌀보리 한 됫박과 바꾸기 위해 하루를 꼬박 노동한 셈이다. 짠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옛날이야기이다.

그래도 계화도나 계화도 인근 돈지사람들의 갯벌사랑은 각별하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도 갯벌에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묻혀 있어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갯벌에서 대학생 난다’는 말도 있듯이, 그들은 이 검은 땅 갯벌을 터전 삼아 백합 잡고, 꼬막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사도 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계화도 주민 김철수 씨는 이렇게 얘기 한다.

“계화도 인근 갯벌은 계화도 사람들의 저금통장이다. 언제라도 그곳에만 가면 돈을 벌어 올 수 있는데, 농사를 지어서는 그 1/10도 안 되는 수익을 올릴 뿐이다.”

▲갯일을 마치고 귀가는 새만금 어민들2

그러나 우리네 미각을 사로잡으며 서해어민들의 삶을 지탱해 준 백합도 머지않아 이 지역에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농지확보를 이유로 갯벌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만금사업이다. 새만금사업은 부안의 변산면 대항리―고군산 신시도―군산 비응도를 잇는 방조제 33km를 축조하여 내해지역 40,100ha(여의도 면적의 140배)를 농지로 만드는 사업이다.

1조원을 들여 시화호를 오염호수로 만든 정부는 현지 어민들, 학계, 종교계, 언론계, 환경단체, 심지어는 해양수산부와 환경부가 반대하는 사업임에도 2001년 5월 25일 식량안보를 이유 들어 이 사업의 강행을 발표했다.

그러나,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식량안보 외치며 새만금 강행을 발표한 정부는 발표 2개월 남짓 무렵인 그해 7월말 경에 쌀과잉 숨기고 새만금 강행했던 사실이 들통이 난다. 단군 이래 최초로 쌀이 남아 처치곤란지경에 이른 것이다. 오죽하면 ‘쌀을 동물 사료로 쓰자’, ‘술 만들어 먹자’. 과자 만들어 먹자‘, ’밥이 보약이다. 밥 많이 먹자‘, ’북한 동포에게 주자‘는 등등 온갖 코미디극을 백출해내더니 백약이 무효했던 모양이다. 급기야는 농업을 포기하고, 이제는 ’돈 줄테니 농사짓지 마라!‘고 한다. 앞으로 3년 동안 벼나 다른 상업작물을 재배하지 않는 농민에게 매년 1㏊당 보조금 300만 원씩 9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휴경지 보상안‘이 그것이다.

▲갯일을 마치고 귀가는 새만금 어민들3

정치권과 개발업자들의 합작 농간에 국토는 누덕누덕 파헤쳐지고, 애꿎은 서해어민들은 내몰려질 판에다, 새만금 갯벌의 백합을 비롯한 뭇생명들은 멸문지화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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